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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Jul 23. 2021

벌집 제거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7)

(사진출처-전국 의용소방대 다음 까페)


   장마철도 끝나고 점점 날씨가 뜨거워져 가고 있다. 이런 폭염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말벌집 제거 신고다. 바로 요즘이 어른 주먹만하던 말벌집이 어른 머리만큼 커지는 시기다. 9, 10월이 되면 가끔 축구공, 농구공보다 더 큰 벌집도 만나게 된다. 더운 날씨에 벌들이 왱왱거리기 시작하고 집 주변을 살펴보면 지붕 처마나, 아파트 베란다 위, 창문틀 등에 둥그렇고 누런 벌집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러면 119 대원들의 일거리가 또 하나 늘어나는 것이다. 벌집 제거는 7~9월 사이에 1년 동안 출동건수의 80% 이상이 집중되고 지구 온난화에 따라 해마다 그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높아진 기온 탓에 꽃들의 개화시기가 일찍 시작되면서 벌의 활동 시기가 빨라지고 번식이 왕성해진다고 한다.)




   꿀벌은 요즘 신고가 들어와도 출동하지 않는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4년 내에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신고 전화는 양봉업자들에게 연결시켜 준다. 그러면 전문가인 양봉업자들이 여왕벌을 비롯한 벌들을 자기 농장으로 데려가 양봉농사에 쓴다. 말 그대로 '윈~윈~윈'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벌집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말벌은 꿀벌집을 공격해서 꿀벌을 초토화시키기도 하지만 사람이 말벌에 쏘이면 아나필락시스 쇼크, 즉 격렬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 심한 경우,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즉시 제거를 위해 출동한다. 하지만 소방관도 사람인지라 말벌에 쏘이면 안 되기 때문에 완전무장을 하고 작업에 임한다.


   예전에는 벌집 제거 시에도 불 끌 때 입는 방화복을 입고 많이 했지만 요즘은 전용 보호복이 나와서 그것을 입고 한다. 보통 2인 1조로 하게 되는데 말벌집은 대부분 높은 곳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한 명은 밑에서 사다리를 지지하고 다른 한 명이 올라가 작업을 하는 식이다. 그런데 여름 땡볕에 보호복을 입으면 숨이 턱턱 막힌다. 입는 순간 땀이 나고 자신이 숨을 내쉬는 열기로 안면부 고글이 흐려지기 일쑤다. 그렇다고 그것을 닦아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안면부 고글은 보호복과 일체형으로 되어 있어서 보호복을 모두 벗지 않으면 고글을 닦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윙윙거리는 벌들의 날갯짓 소리를 들으면 공포감이 밀려온다. 보호복으로 중무장했지만 소매 깃이라든가 발목 부위 등 살이 드러난 곳으로 벌들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하게 된다. 벌들은 조그만 틈만 있으면 그곳으로 비집고 들어와서 침을 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빠르게 올라가 신속하게 작업을 끝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다리에서 미끄러진다든지, 중심을 잃게 되면 추락의 위험도 있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한 번은 아파트 옥상에 커다란 벌집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었다. 정말 아파트 옥상 벽면에 선풍기 머리 만한 벌집이 매달려 있었다. 사다리를 다 펴도 매달린 높이가 높아서 닿지 않았다. 스프레이와 토치를 장대와 연결한 벌집 전용 제거 장비를 써서 일단 겨우 떼어내기는 했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자기네들의 집을 잃은 벌들이 아직 그곳에 남아 주위를 윙윙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녀석들을 제거하러 후임인 김반장이 살충제 스프레이를 들고 사다리를 다시 올라갔다. 살충제 스프레이로 남아있는 녀석들을 거의 다 제거하고 남은 벌집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 사다리 중간쯤까지 내려왔을 때였다.


   '앗, 따거!'


   김반장은 비명을 지르며 사다리 중간쯤에서 뛰어내렸다. 몇 마리의 벌들이 도망치는 그를 쫓아와 그의 소매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우리는 살충제 스프레이로 그 벌들을 쫓아냈다. 그리고는 아파하는 그의 왼쪽 손 장갑을 조심스레 벗겼다.


(벌에 쏘인 손 - 네이버 블로그 펌)

  

   김반장의 손은 마치 고무 풍선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우리는 일단 생리식염수를 부으며 손등에 있는 말벌 침을 찾아 빼냈다. 그리고 옆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대원에게 인계하여 병원에 이송토록 했다. 혹시나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나타나서 응급상황이 생길까 바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그는 병원 진료를 받고 나서 별일 없이 소방서로 복귀했다. 몇일 뒤엔 부었던 손도 다시 정상적으로 되돌아왔다. 보호복에 딸린 벌집제거 전용 장갑을 껴야 하는데 일반 구조 장갑을 끼는 바람에 장갑과 보호복 사이로 틈이 생겨 말벌이 들어와서 손을 쏘인 것이었다.


   "주임님, 죄송합니다, 제가 조심하지 못해서..."


   "괜찮아, 그래도 그만하기 다행이다. 보약 한재 먹었다고 생각해라."


   소방관들 사이에선 벌에 쏘이면 보약 맞았다고 말하곤 한다. 일부러 봉침 맞는 사람도 있는데, 체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알레르기 반응만 없다면 벌에 한방 정도 쏘이는 건 혈액순환에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앞으로 그의 소방서 생활에서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벌집제거 철이 돌아오고 있다. 9, 10월까지 우리는 또 벌집 보호복 속에서 뜨거운 땀방울을 흘릴 것이다. 그리고 가끔 벌에 쏘이거나 사다리에서 떨어져 병원신세를 지는 대원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벌집제거 신고가 들어오면 또다시 출동할 것이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말한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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