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해안을 스쳐 지나간 태풍 '루핏'의 영향으로 더위가 좀 수그러졌나 싶었는데 낮에는 여전히 덥다. 짧았던 장마 때문인지 한 달 가까이 이어진 폭염은 소방관들의 하루를 더 뜨겁게 만들고 있다. 소방관을 영어로 하면 firefighter, 직역하면 불과 싸우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름에 불과 싸우려니 얼마나 덥겠는가?
(불과 싸우는 firefighter-네이버 블로그 공상자 후원회 펌)
내가 초임 소방관 시절에는 겨울에 불이 많이 났고 여름 소방서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였다. 불이 안 나니 소방관들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요즘은?, 사실 여름이 더 바쁘다, 그때 소방관들은 단순히 불만 끄는 수준이었다면 요즘은 그 외에도 교통사고 구조출동, 개 포획 등 동물구조, 말벌집 제거, 자살 등 긴급상황 시 방화문 시건개방, 태풍 등 자연재해시 아파트 베란다 안전조치, 집중호우 시 인명 구조... 등 셀 수 없이 많은 출동을 해야 한다.(하수구 열쇠 수거 등 잡다한 대민지원(?) 출동은 제외하고도 말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요즘은 여름에도 불이 많이 난다는 것이다!
20년 전에는 겨울에 추위를 막기 위해 화목, 연탄 등으로 난방을 했고 목조 건축물도 많아 겨울에 불이 많이 났었다. 하지만 요즘은 대다수 난방시설이 가스로 되어 있고 콘크리트 건축물이 많아 계절에 영향을 덜 받는다. 오히려 냉방기를 많이 쓰는 여름에 전력 과부하로 전기화재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여름 소방서는 불과의 사투를 벌이면서 한편으론 여러 구조 출동벨 소리로 쉴 틈이 없다. 문제는 요즘 같은 여름에는 움직이기만 하면 땀인데 대다수의 출동이 입기만 하면 땀이 나는 두꺼운 방화복을 입고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소방관 개인 장비-다음 까페 펌)
소방관 1명이 지녀야 하는 개인장비 무게를 더해 보니 27.5kg이었다. 거기다 화재진압의 필수인 소방호스를 끌고 다니면서 물을 뿌리고 작업을 해야 하니 실제로 소방관 1인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는 40~50kg에 육박할 것이다. 게다가 요즘 같은 폭염에 700~800도가 넘는 불과 맞서다 보면 방화복 내부의 온도는 50도를 훌쩍 넘어버리고 소방관의 체내 온도도 40도를 넘게 된다. 이런 옷을 입고 장비를 차고 불과의 사투를 벌이다 보면 어느새 얼굴은 벌겋게 익어버리고 온몸이 땀으로 흘러내린다. 화재진압 시간이 길어질수록 탈진한 소방관이 생겨나게 되고 몇년 전에는 탈진으로 순직한 동료들도 있었다.
(방호복을 입고 현장에서 고생하는 구급대원-SBS 뉴스 갈무리)
덥기는 구급대원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공포로 다가오는 요즘, 구급차를 타고 환자를 이송해야 하는 구급대원들은 코로나 의료진과 마찬가지로 방호복을 입고 출동한다. 구급차 안이나 병원은 냉방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구급 현장에서는 냉방시설이 전무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방호복은 전혀 통풍이 되지 않는다.) 그런 현장에서 몸이 불편한 환자를 구급차까지 옮기다 보면 역시 온몸을 땀으로 샤워하게 된다. 숨이 턱턱 막히고 고글에 땀이 차서 물이 고이기도 하지만 환자를 무사히 병원에 이송하기 전까지는 방호복을 벗을 수도 없다.
이렇게 뜨거운 여름을 더 뜨겁게 보내야 하는 소방관들에게 화재현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소방관 회복 차량이 도입되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회복 차량을 다 합쳐봐야 3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트레일러형은 2대, 그보다 작은 버스형은 6대 밖에 없다고 하니, 아직 모든 소방관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결국 올해도 그 유명한 솔로몬의 명구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이 여름을 보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쉽긴 하지만 내년에는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지구 온난화가 느려져서 좀 더 시원한 여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전국의 소방관님들~모두 각자의 건강 잘 지키면서 올해 남은 여름도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