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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Sep 14. 2021

폭우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10)

(사진출처-연합뉴스)


   태풍 '찬투'의 영향으로 지금 부산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 태풍 '찬투'는 17일쯤에 제주도와 여수 사이를 지날 예정으로, 현재 중국 상하이쯤에 머물고 있는데 벌써부터 제주도엔 시간당 300mm 이상의 폭우를 뿌렸다고 한다. 태풍이 오면 예외 없이 따라오는 것이 폭우다. 중국과 일본의 폭우 소식에 이어 우리나라도 태풍으로 인한 폭우가 올 가능성이 있다. 폭우란 말을 들으니 작년이 생각난다. 작년 여름, 부산에선 시간당 80mm의 폭우로 인해 지하차도에 갇힌 승용차에서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현장대응 부실 논란으로 그때 구조활동에 투입되었던 소방관들도 소송에 휘말리는 등, 부산소방은 순탄치 않은 한 해를 보냈다.


(태풍 챤투 예상 경로-기상청 홈페이지 펌)

 

   2020년 7월 23일, 저녁 10시경. 부산에 쏟아진 시간당 80mm의 집중 호우로 순식간에 부산 초량 제1지하차도에 물이 들어찼다. 하지만 처음에는 자동차 바퀴 정도로만 물이 차올랐기 때문에 몇몇 차량들은 그대로 진입했다. 별다른 통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하차도 내부 상황을 알려주는 전광판도 7년 전에 이미 고장 난 상태였다. 하지만 저녁 10시 40분경, 침수 수위는 급격히 높아지며 2.5m에 달하게 되었고 그때 지하차도 안에 있던 6대의 차량들은 그대로 침수되었다. 그 안에 있던 운전자와 탑승자 9명은 탈출을 시도했지만 이중 3명이 목숨을 잃었다.


   물이 자동차에 들어차기 시작하자 운전자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엔진룸 이상으로 물이 차오르면 자동차의 시동이 꺼지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자동차의 전기장치에 물이 들어가면 자동차 도어나 창문이 열리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멘붕'이 오게 된다. 자동차 문은 열리지 않는데 물은 점점 차오른다. 119에 긴급하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이미 폭주 상태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사고 당시 119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피해자가 신고한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은 시간이었다. 부산 곳곳이 폭우의 피해로 신고가 폭주한 데다, 구조대는 이미 모두 다른 사고 현장에 투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아마도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봤던 재난 정보를 떠올리며 자동차의 머리 부분, 헤드레스트를 떼내서 그 뾰족한 부분으로 유리창을 파괴하려 할지도 모르겠다.


내 차 조수석의 헤드레스트

  

   자동차 시트의 머리 부분인데 옆에 있는 단추만 누르면 간단하게 뽑을 수가 있다고 설명하는데 실제로 뽑아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빗물이 들어차는 긴급상황에선 처음 뽑아보면 그것조차 힘들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이걸 뽑았다고 하더라도 창문을 깨기는 쉽지 않다. 헤드레스트 끝부분이 뾰족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나오는 차들은 대부분 차 창이 약간 곡선을 이루면서 비스듬히 내려가 있다. 거기다가 빗물에 젖은 상태라고 해 보자, 웬만히 힘쓰는 남자가 아니라면 그 상황에서 차창을 깨긴 쉽지 않다.

  

https://youtu.be/x0gNp1js1Wg

(tvn 생존끝판왕-중간쯤부터 보셔도 됩니다.)


   위에서 보듯 복싱선수 이시영도 한참 만에야 깼다. 일반 여성이라면 아마 깨다 지쳐 포기했을 것이다. 물이 차오르는 급박한 상황에선 남성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TV나 인터넷에 나오는 재난정보에선 아주 쉽게 얘기한다.

 

   "자동차 침수 시엔 시트 머리 부분인 헤드레스트를 뽑아서 유리창을 깨고 나오면 됩니다. 아니면 창문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길 기다렸다가 자동차 내외의 수위 차가 30cm 이하가 되면 문이 쉽게 열리니 그때 문을 열고 나오면 됩니다."


  이것도 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자동차 내외의 수위 차가 30cm 이하가 되려면 적어도 물이 자동차 창문 중간 높이  이상으로 차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 문을 열고 나가면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렵다. 수영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바닥도 확인하기 어려운 어두운 곳에서 가슴높이까지 찬 물을 헤치고 터널 끝까지 걸어가다가 발이라도 헛디디게 되면 미끄러져 죽을 수도 있다.(실제로 지하차도에서 사망한 여성 1명은 그런 케이스였다.)


레스큐 미-내 자동차 대시보드 안에 휴대중~


   여기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제품명 '레스큐 미'라고 하는데 한 손에 들어갈 크기로 휴대도 간편하다. 위쪽 검은색 부분을 차창에 대고 힘껏 누르기만 하면 차창 유리가 깨진다.(아래쪽 검은 부분은 열쇠고리로 쓸 수도 있고 일종의 안전장치인데 그걸 뽑으면 안쪽의 칼날을 사용해서 안전벨트도 자를 수 있다.) 만약 자동차가 침수되었다면 당황하지 말고 이걸로 차 유리창을 깨고 깨진 유리를 툭툭 털어내고 탈출하면 된다. 인터넷으로도 구입할 수 있고 비용도 생각보다 저렴한 것으로 알고 있다.(약을 대비한 목숨 값 치고는 너무 저렴하다.)


   사고를 당해서 당황하는 것보다 미리미리 알아 놓으면 유용할 때가 있다. 아니, 유용함을 떠나서 자기 목숨을 건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 이상기후와 맞물려 태풍, 폭우, 폭염, 산사태 등의 재난은 더욱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소방관은 점점 더 바빠진다. 그러면 그때마다 119를 찾을 것이 아니라(대형 재난일수록 119가 골든타임 내에 올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각자 개인이 재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스스로 거기에 대비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기다리라'란 말만 믿고 가만히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다 희생되었다. 정확한 재난 지식을 가지고 빠른 판단을 하는 한 사람의 리더만 있었어도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 그런 지식을 사전에 습득하고 연습해서 혹시 모를 재난시에 내 생명과 내 이웃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다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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