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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Oct 03. 2021

산사태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11)

(사진출처-부산일보)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달이 바뀌면 난 작년에, 몇 년 전에 그달, 그날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작년 이맘때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지, 몇 년 전 이 날은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10월로 들어서니 재작년 10월 3일, 개천절에 일어났던 일이 생각난다. 부산 사하구 구평동 산사태...


   그날도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며칠째 비가 내리다 모처럼 오늘같이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역쉬 단군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운 날이라 모처럼 날씨가 좋네, 이름처럼 하늘이 열린 날이니, 날씨가 좋을 수밖에 없지, 간만에 자전거나 타러 나갈까?'


   난 그날 아침, 이불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었더랬다. 일반 사람들에겐 휴일이지만 나는 그날 야간 근무라 낮에 운동을 좀 하고 오후 6시까지 출근하면 됐었기 때문이다. 아침을 챙겨 먹고서 개천절 기념식은 언제 하나 하고 TV를 트는 순간이었다. 뭔가 쿵! 하고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멀리서 진동이 전해져 왔다.


   '또 지진인가?'


   2018년과 2019년에 큰 지진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30분쯤 후에 TV 하단에는 큼직한 글자로 '뉴스 속보, 부산 구평동 산사태 발생, 인근 주민 매몰!'이란 자막이 떴다. 같이 TV를 보고 있던 와이프는


   "구평동이면 여기 부근인데... 자기, 가봐야 되는 거 아냐?"


    라고 불안 섞인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하기야 구평동은 내가 살고 있는 신평동과 붙어있는 동네로 나도 그쪽에 있는 '동매산'이란 산을 등산을 겸해 넘어서 출퇴근하곤 했기 때문에 너무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혹시 산사태가 난 산이 동매산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휴대전화로 비상소집에 응소하라는 연락이 우리 119 안전센터에서 왔다. 몇 시간만 더 늦게 산사태가 발생했더라면 내가 출근하다 저기에 깔렸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잠시, 재빠르게 옷을 챙겨 입고 센터로 갔다.


   센터로 가니 벌써 일찍 온 동료들이 옷을 먼저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소방차에 올라타서 산사태가 난 동매산으로 향했다.  


   "오면서 봤는데 그 일대가 아주 엉망이야, 산에서 토사가 흘러내려 그 밑에 집들을 덮쳤는데 한 대여섯 명 깔렸나 봐, 지금 출동하면 오늘 날밤 깔지도 몰라."


   같이 일하는 동료 소방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처럼 좋은 날씨에 자전거 하이킹을 상상했는데 날밤-실종자나 사망자를 찾는 일은 낮에서부터 시작해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까지 해야 할 수도 있다. 찾을 때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이라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에 깔린 주민들에 비하면 그건 정말 새발에 피였다. 휴일 오전 9시라면 채 잠을 깨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텐데, 느닷없이 산사태가 나면 그게 바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아닌가? 현장에 도착해 보니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은 공장지대로, 몇 채의 가옥이 공장들 사이에 있었는데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에 파묻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삽으로 파다가 도저히 안돼서 포클레인을 불러서 한쪽에선 파고 반대편에선 우리가 삽으로 파 나가는 식으로 작업을 했다. 그런데 그곳에 쌓인 흙들은 산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흙이 아니고 마치 폐기물 처리장에서 나오는 슬러지 같은 것으로 악취도 엄청나게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근처에 있는 화력발전소에서 발전용으로 썼던 석탄재였다. 산 꼭대기에 있는 예비군 훈련장을 만들기 위해서 그 석탄재로 산 사면을 쌓아 올린 것이었다. 그래서 폭우가 쏟아진 다음날, 물을 잔뜩 머금은 석탄재는 슬러지 상태가 되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파도 끈적끈적한 그 슬러지는 제거되지 않았고 포클레인이 와서야 겨우 제거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 동료의 말처럼 우리는 거기서 날밤을 깔 수밖에 없었고 24시간 교대근무로 일주일정도 날밤을 새우고서야 사망자 전원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4구의 시신을 찾는 데는 2,3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시신 1구의 팔을 찾을 수 없어 유가족의 요청으로 그것을 찾기 위해 현장의 모든 슬러지들을 다시 뒤집어가며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매몰된 사람은 주택에 있던 일가족 3명과 식당 가건물에 있던 1명이었는데 모두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매몰된 사람들은 모두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KBS뉴스 캡쳐)


   시신을 찾느라 그 오물 덩어리들을 헤집어 가며 며칠간을 고생하고 나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자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부에서는 이 산사태를 태풍 등에 의한 자연재해라고 했지만 그건 누가 봐도 인재(人災)였다. 예비군 훈련장을 만들기 위해 화력발전을 하고 폐기처리돼야 할 석탄재로 산을 쌓다니... 그것은 그 밑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안전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처사였다. 하기야 관계자들이 알고도 그렇게 했을 리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국민 4명의 생명과 수십억 원의 재산 피해를 낸 인재로 기록될 것이다. -법원은 유족 등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국가의 책임을 90%라고 판단하고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듯 산사태를 비롯한 자연재해는 예상치 않게 다가온다. 국가나 지자체, 또는 어떤 안전기관도 모든 국민의 안전을 완벽하게 책임져 줄 수 없다. 관계 공무원들이나 담당자들은 자신들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사람이 하는 일일 뿐이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100% 안전하게 상황을 관리할 순 없다.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먼저 지켜야 한다는 것이 소방관 생활 20년 동안 내가 내린 결론이다. 119도 마찬가지다. 산사태가 나고 나서 그 밑에 깔린 매몰자를 골든타임 안에 구조해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런저런 관리상의 부실이 더해지면 그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한다.   


   앞으로 가을이 깊어지면 산을 찾는 사람도 많을 텐데 산사태에 대한 안전수칙을 잘 숙지해서 나 자신과 이웃의 안전을 지켜야겠다. 먼저 산사태는 일어나기 전에 징후가 있다는데 그 징후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1. 집 주변이나 산행하려고 하는 산의 산사태 위험요소를 파악한다.

  -산사태가 나기 쉬운 산은 가파른 급경사지에 배수가 잘 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출퇴근길로 이용했던 동매산도 개울이나 계곡이 아닌데도 어디선가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이런 산에는 가급적 접근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처음에는 산사태가 난 길로 다니고 있었는데 악취도 나고 어디선가 졸졸졸 물흐르는 소리도 들리고 해서 기분이 꺼림직해 코스를 바꾸었었다.) 또한 산행 중 산 경사면에 금이 간 곳이 있거나 내려앉은 곳을 발견했다면 서둘러 그 산을 탈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나무가 흔들릴 때, 산울림 또는 땅울림이 들리는 것도 급히 그 산을 빠져나와야 하는 산사태 징후이다.


2. 기상 및 산사태 정보 확인

  -산사태가 나기 쉬운 산 밑에 거주하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 산에 가야 한다면 항상 기상 및 산사태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산사태 정보시스템이란 홈페이지가 있으니 (https://sansatai.forest.go.kr/) 참고해서 기상이 좋지 않거나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은 날에는 대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장마철이나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 산에 물기가 완전히 스며들 때, 가장 위험성이 높다.)

     

3. 산사태 징후가 보이면 급히 그곳을 탈출한다.

  -위에서 말한 징후가 보이면 재빨리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 벗어날 때는 급경사지를 피해 산의 좌우 측면으로 경사가 덜 급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가급적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일단 이 세 가지 정도로 안전수칙을 간추려 보았다. 찾아보면 많이 있겠지만 다 숙지하긴 힘들 테고 몇 가지라도 기억해서 누구라도 자신과 이웃의 안전을 지킬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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