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호 태풍 오마이스가 남해안에 상륙해 내륙을 관통하고 포항 쪽으로 빠져나갔다. 이번 태풍은 바람의 위력은 크지 않지만 발달한 장마전선과 겹쳐 많은 폭우를 뿌리고 심각한 피해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내가 소방에 입문하여 처음으로 제대로 된 태풍을 맞닥뜨린 것은 2003년 태풍 '매미' 때였다. 2003년 9월 12일. 마침 추석 연휴를 맞아 친척들과 오랜만에 포근한 시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차를 몰고 소방서로 가려는데 너무 강한 바람이 불어 신호등이 막 떨어질 듯이 흔들리고 차에서 내리려 해도 차 문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 바람이 셌던 것이 기억난다. 소방서에 도착해 보니 비번자 모두가 비상소집되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출동의 연속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대형 유리창이 깨져 안전조치를 해달라는 신고가 가장 많았다. 심한 곳은 거실 발코니 창까지 모두 깨져 가족이 거기에 발에 베어 피를 흘리고 있는 집도 있었다. 그 외에도 차량 침수, 고층건물 간판 안전조치, 바람에 날아간 지붕 안전조치 등 밤새 쉴 새 없이 출동을 했는데 하이라이트는 다음날 아침에 있었다.
(간판 안전조치-인천소방본부 제공)
그때 당시 내가 근무했던 소방서는 다대포라는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근처에는 새로 생긴 대형 찜질방이 있었다. 그런데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바닷물이 역류하는 바람에 그 찜질방으로 뻘과 토사가 모두 유입되어 입구가 막혀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사우나와 찜질을 즐기던 손님들은 전기도 물도 모두 끊어진 그곳에 갇혀 하룻밤을 꼬박 지새운 것이다. 게다가 그때만 해도 휴대폰도 잘 터지지 않는 지역들이 많았기 때문에 119에 신고도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찜질방은 밀려든 토사로 인해 거의 매몰 상태였고 내부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입구를 막은 토사와 뻘을 간신히 제거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깨진 유리창에 다친 사람들과 충격으로 실신한 사람들이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 특히나 여자 찜질방이 더 심했는데 왜냐하면 여자 찜질방은 1층에 있었고, 또 추석에 음식 장만하느라 고생한 부녀자들이 몸을 풀기 위해서 많이들 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뻘 구덩이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구조하여 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시켰다. 그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죽는 줄 알았다'는 것과 '살려주셔서 고맙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끝내고 나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태풍의 위력을 제대로 실감한 날이었다.
그 외에도 해년 해마다 태풍이 오는 시기에 많은 출동을 해왔지만 항상 현장에 가면 느끼는 것이 있다.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태풍이 올 때는 무엇보다도 대비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부산은 해안가에 있는 아파트가 많아, 태풍이 오면 아파트 베란다 유리창이 깨져서 출동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일단 태풍이 온다는 예보를 들으면 자기 집 베란다가 안전한가를 확인해 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테이프를 붙이는 것으로 나름 안전조치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내 경험으로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 테이프를 붙이는 것은 유리창이 깨질 때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지지 말라고 붙이는 것이지, 깨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차라리 혹시 걸려있지 않은 잠금장치가 있는지 확인하고 잘 걸리지 않는 잠금장치가 있다면 그것을 수리해서 제대로 걸어 고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샤시 문 사이가 떠서 덜렁거린다면 그 사이에 종이나 뭘 끼우더라도 안 흔들리게 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방법도 한계를 넘어서는 강풍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노후된 아파트라면 문틀 자체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태풍시 베란다 안전조치-인천소방본부 제공)
작년에 태풍 마이삭이 왔을 때 출동한 동료 대원에게 들은 얘기인데 아파트 베란다 창문이 흔들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보니 베란다 문틀 자체가 빠지려고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좀 노후된 아파트라 태풍에 문틀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대원들 모두가 베란다 문틀을 잡고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거의 두 시간 동안을 버텼다는 것이다.
"25층에서 그게 휘청휘청 흔들리는데 잡고 있는 우리까지 흔들리더라, 그걸 놓으면 문틀째 떨어져서 밑에 있는 자동차나 사람들이 맞으면 대형 사고 나겠제, 그렇다고 잡고 있자니 우리까지 같이 떨어질 것 같제, 정말 다리가 다 후들거리더라."
그분도 소방서 생활 20년이 넘은 분인데 이렇게 표현한 걸 보면 정말 그 밤에 진땀깨나 흘리셨나 보다. 태풍이 오기 전에 안전을 확인하는 것은 이렇게나 중요하다. 각자 자기 집에서, 일터에서, 태풍이 온다고 하면 주위를 살펴보는 일명 '비설거지'가 필요하다. 이렇게 대비를 해 놓으면 우리네 속담처럼 가래로 막을 거 호미로 막을 수 있다. 평소에 베란다 창문 잠금장치 정도만 수리해 놓으면 나중에 태풍이 와서 베란다 샤시 전체를 교체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혹시나 깨진 유리창에 부상을 입고 119에 실려가는 일도 피할 수 있을지모른다.
(태풍시 베란다 창틀고정-네이버 블로그 펌)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미미한 존재다. 하지만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다면 그 피해는 줄일 수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안 나왔지만 동일한 강도의 태풍 등 자연재해로 발생한 인명피해가 중국이 100명이라면 한국은 10명, 일본은 1명 정도 되는 것 같다. 같은 재난이지만 그 대응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일본과 그렇지 않은 중국과는 약 100배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고 또 능가하고 있지만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만큼은 아직 못 따라가는 것 같다. 국가차원의 지원은 어느 정도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국민 개개인의 안전에 대한 의식과 행동이 아직 아쉽다. 태풍이 부는 날 찜질방에 간 사람들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려는 경향이 있다. 폭우가 오는데 계곡에서 야영을 하는 사람들이나, 태풍이 예보되어 있는데도 강이나 바다에 들어가 수영이나 해양 레포츠를 즐기려는 사람들...
피아골 폭우로 피서객 구하려다 순직한 (고)김국환 소방교
작년 7월 31일 지리산 피아골에서 폭우로 불어난 물에 수영을 하던 피서객을 구하려다 (고) 김국환 소방교가 순직했다. 우리의 임무가 이런 사람들을 구조하고 살리는 것이지만 그 피서객이 안전의식을 가지고 물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또한 젊은 구조대원의 죽음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사람들 덕분(?)에 소방대원들이 희생하고 국민들의 혈세가 낭비된다. 이제 모두들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은 버리고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자연 재난이 발생하면 정해진 안전수칙에 따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