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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Jun 30. 2021

소방관은 슈퍼맨이 아니다.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6)

(사진출처 - 울산 소방본부)


(고) 노명래 소방사의 명복을 빕니다.


   요즘 왜 이렇게 소방관들이 많이 죽어나가는지 모르겠다. 지난주에 김동식 구조대장님의 비보에 이어 오늘 아침 다시 새내기 소방관의 부고가 들렸다. (고) 노명래 소방사, 그는 임용된 지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는 새내기 소방관이었다. 그리고 10월에 결혼을 앞둔 새신랑이었다. 아직 서른도 안 된 새내기 소방관...




   내가 처음에 소방에 입문했을 때도 내 나이 28 살이었다. 모든 게 처음이라 서툴기만 했던 소방조직속에서 시간은 출동과 업무의 연속으로 정신없이 흘러갔다. 당시에는 근무형태가 지금 3교대와는 달리 24시간 맞교대 근무였기 때문에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보다 소방서에서 동료들과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다. 게다가 비번날에도 훈련등 여러가지 행사가 있어서 당번날 24시간을 꼬박 근무하고 비번날에 있는 행사에 참석하고 나서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오는 식이었다. 하지만 구급출동이나 화재출동을 가면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보람으로 힘든 줄 모르고 하루하루를 견뎌냈었다. 긴장의 연속인 소방서 생활과 잠깐의 휴식이 있는 집의 생활을 챗바퀴 돌 듯 하다보니 어느새 이십년이란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소방관으로서 내가 걸어온 길-많은 것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노 소방사도 아마 이런 생활을 일이년 정도 했으리라, 선배들의 지시, 혹은 따끔한 지적을 받고서 항상 모자라다고 생각되는 자신을 채찍질 했으리라. 그리고 언젠가는 저런 선배들처럼 베테랑이 되어 화재 현장에서 멋지게 사람을 구해내는 상상도 했으리라... 하지만 어제의 화마는 이런 새내기 소방관의 막 피어나는 꿈을 짓밟아 버렸다. 고막과 심장이 터질 듯 방망이질 하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도착한 화재현장, 3층 건물에서는 연기와 불꽃이 막 피어나고 있었다. 화재진압과 인명검색을 동시에 실시해야 하는 구조대는 구조대장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건물로 진입했을 것이다. 3층에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건물 내부 계단으로 진입한 구조대원들, 하지만 갑자기 화세는 격렬해졌고 그들이 들어왔던 건물 내부 계단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여 버렸다.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버린 진퇴양난의 상황, 퇴로는 3층 미용실 창문뿐이었다. 선배들이 하나씩 그 창을 깨뜨리고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것을 보면서 1년 6개월의 신임 소방관은 무엇을 느꼈을까? 아니, 무엇을 느끼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자신도 선배들을 따라 그 유리창으로 뛰어내려야 했을 것이다. 뜨거운 불길이 자신의 등과 목을 핧아 들어오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kg 정도의 화재 진압장비를 메고 3층 건물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이미 그것만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중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가기에는 너무 뜨거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날개가 있어서 하늘을 날아오를 수도 없었다. 그렇다!, 소방관은 결코 슈퍼맨이 아닌 것이다.

   

   처음에 뉴스를 보고 5명의 소방관이 부상을 당한 줄 알았다. '3층에서 떨어져 살아나다니... 대단한 사람들이야'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노 소방사가 결국 우리 곁을 떠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소방관도 결국 사람일 뿐이라는 뻔한 명제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소방관이 순직할 때마다 언론에서는 영웅이라고 치켜세운다. 목숨을 바쳐  사회를 구한 영웅이라고... 하지만 소방관도 화재 앞에서 너무나도 연약한 한 인간일 뿐이다. 공기호흡기가 연기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고 하지만 기껏해야 30분용일 뿐이다. 30분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안전하게 호흡할 공기가 없어진다. 방화복과 헬멧이 화염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잠시 임시방편일 뿐이다. 뜨거운 화염속에 들어가면 헬멧은 녹아버리고 방화복도 허무하게 타버린다. 아니, 그보다 먼저 재가 되는 것은 우리의 육체다. 인간의 피부는 50도가 넘어가면 세포의 변화를 일으키고 밀폐된 공간에서 뜨거운 연기를 마심으로서 기도에 흡입화상을 입게 되면 결국 호흡장애로 사망하게 된다. 이런 우리에게 영웅이라고, 슈퍼맨이라고 치켜 세우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다. 우리도 결국 일반인과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보다 조금 더 훈련을 받아 화재현장에 익숙하고 공기호흡기나 방화복으로 무장하고 있어도 결국 불과 연기 앞에서는 너무도 연약한 사람인 것이다.

 

그림과 달리 소방관은 슈퍼맨이 아니다.


   오늘 또 한명의 소방관의 죽음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야 할까?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지만 마땅한 재발방지 대책은 없고 이 사회는 영웅의 순직으로 미화하기 급급하다. 소방관이니까 불을 끄다가 죽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나 보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안타까운 죽음은 없어야 한다고 앳된 소방관의 영정사진을 보며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2021년 6월의 마지막 날에 나지막히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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