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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May 07. 2020

내 최초의 성공담(최초의 심폐소생술)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 (2)

   내가 소방서에 입사해서 처음 은 보직은 구급대원이었다. 응급구조사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따기까지 꼬박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난 자격증 없이 구급차를 탔다. 지금은 무조건 자격증이 있어야 하지만, 그때는 자격증을 딸 동안 구급차를 타고 다니며 자격증이 있는 선배에게 배우는 일종의 실습기간을 거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식 자격증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규정에 따라 심폐소생술 CPR이나 정맥주사 삽입 등은 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것을 옆에서 보조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일 년간의 수련 끝에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따고 정식 구급대원으로 구급차에 올랐을 때, 내 마음속에는 내가 정말 이 일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지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다른 선배들처럼 멋지게 환자를 소생시키고 무사히 병원 응급실까지 이송할 수 있을까? 이제는 내가 실습을 하는 후배를 데리고 가야 하는 상황에서 모든 일들을 순조롭게 해 낼 수 있을까? 선배를 따라다닐 때는 선배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모든 일들이 내 두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몇 번의 구급출동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내가 제대로 일을 해냈나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많았다. 심폐소생술 CPR을 하고 나서도 조금만 더 압박을 제대로 했다면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어느 날이었다.


  “구급출동!, 구급출동!, 심정지 환자!...”


   소방서 스피커에서 구급 출동벨이 울렸다. 나와 내 후임 K는 잽싸게 구급차에 올랐다.


  “환자는 갑자기 쓰러져서 의식이 없다고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심폐소생술을 지도하고 있는 상황...”


  무전에서 나오는 상황요원의 목소리는 급박했다. 골든타임 4분은 넘기지 않는다면 심폐소생술을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환자였다. 우리는 다른 차들의 양보를 받아가며 최초 신고 장소로 향했다. 내가 AED(자동 제세동기) 가방을 가지고 구급차에서 내렸을 때, 커다란 나무 앞에 담벼락 옆에 모여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비켜주세요!, 비켜요!”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 끝에는 한 남자가 가슴팍을 드러낸 채,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누군가 심폐소생술 CPR을 하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일단 AED 단자를 그 사람의 양 가슴에 붙이고 맥박과 호흡을 확인하였다. 맥박은 무수축(심장 리듬이 없음)이었고 호흡도 느껴지지 않았다. CPR이 필요하다는 AED의 사인을 받고 난 바로 심폐소생술 CPR에 돌입하였다. 일단 기도개방을 하고 앰부 백(Ambubag-수동식 인공호흡기)으로 호흡을 두 번 불어넣었다. 그리고는 양쪽 갈비뼈가 만나는 지점에서 손가락 마디 두 개쯤 위로 압박점을 찾아 가슴압박을 시작했다. 일분에 100회의 속도로 30회,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마치 파도가 해변에 몰려갔다 몰려오는 그 리듬으로, 태곳적 생명이 시작되던 바로 그 리듬으로... 난 이제는 눈감고도 외울 수 있는 프로토콜을 따라 가슴압박을 반복했다. 너무 깊지도, 앝지도 않게, 심장의 피가 뇌로 충분이 도달할 수 있는 깊이로... 난 30회의 압박을 마치고 다시 두 번의 호흡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두세 번의 사이클을 반복한 후, 다시 압박점에 손을 올려 가슴압박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눈을 뜨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AED 모니터는 정상적인 그의 심장리듬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생명은  리듬(좌측), 죽음은 직선(우측)이다.


  “현두야!, 이놈아!”


   그때 갑자기 소리를 지른 이는 담벼락 한구석에서 애처롭게 앉아 있던 백발의 노파였다. 그녀는 남자가 눈을 뜨자마자 그에게로 가서 그의 얼굴을 품에 안고 흔들어댔다.


   “평생 모자란 놈 때문에 고생하더만  이제는 다 키아 놔도 마음 편할 날이 없네...”


   누군가 조그맣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야 난 그 남자가 온전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는 것이나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말하는 것이 어눌한 것으로 보아 다운 증후군 환자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가 다시 의식이 다운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우린 재빨리 환자를 구급차에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의 가슴에 붙여놓은 AED 단자는 떼지 않고 차속에서도 그의 맥박과 호흡을 체크했다. 구급차 속에서는 그의 손을 부여 쥔 어머니의 손이 풀어질 줄 몰랐다.


   우리 구급차가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 그를 당직의사에게 인계하고 나서야 나는 그의 모친이 내미는, 검은 봉다리에 든 박카스 두병을 받을 수 있었다.


   “선상님, 고맙심니더...”


   “아닙니다, 이게 우리가 할 일 인걸요...”


    그녀는 자기 아들보다 어린 우리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우리는 그 인사를 받고 있을 수가 없어서 다시 구급차를 타고 소방서로 향했다. 하지만 구급차 안에서는 내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는 뿌듯함이 가슴으로 전해져 왔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어머니의 아들이었던 그는,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아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내가 진짜 정식 구급대원이 되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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