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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Jan 16. 2023

나의 첫 자전거 라이딩

아침 동산에서(29)


   어제는 옛 친구와 함께 옛길을 걸어보았다. 물론 옛길이라고 무슨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의 옛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중학교 때 친구와 내가 학창 시절에 살던 동네 길을 걸어본 것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에서는 옛 친구이자 옛길이 될 수가 있다. 이제 겨우 나이 50밖에 안되었지만 초중고를 거치며 살았던 동네의 옛길을 옛 친구와 걸어보는 것은 어느덧 나를 아련한 향수에 젖게 했다. 


   물론 딱히 뭔가 이유가 있어서 걸은 건 아니다. 일요일날 교회 갔다가 집에 왔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막둥이와 마눌은 낮잠을 자고, 둘째는 교회에서 하는 겨울 캠프를 갔고, 첫째는 일요임에도 스터디 카페에 갔다. 혼자서 뭘 할까 생각하다가 옛 친구에게 카톡으로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걸었던 길들을 다시 걸어보지 않겠느냐고 말했던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달려서 만난 우리는 비가 우중충하게 오다 그친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하철역에서 한 15분쯤 걷다가 보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보였다. 하지만 내 중학교 친구는 다른 초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 보자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35년이 지났지만 그 앞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전거포를 보니(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듯~) 불현듯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그 옛날의 자전거포-정말 감격적(?) 이게도 이 자리에서 35년을 버텨주었다.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듯(카카오맵 캡처)


   "야, 너 저기 자전거포 생각나나?"


   "그래, 저기서 너랑 나랑 자전거 빌려가지고 영도까지 가서 사고 내고 토낐다 아이가~ㅋ"


   그래, 그러고 보니 그게 벌써 35년이 지난 일이 되어버렸네. 중학교 때 둘이서 서로를 밀어주며 어설프게 자전거를 배운 우리는 어느 봄날 토요일, 학교를 마치고 저기에 있는 자전거포에서 자전거를 빌렸었다. 그때 돈으로 500원인가 했던 거 같은데, 그때는 사람들이 요즘처럼 이렇게 빡빡(?) 하진 않아서 그렇게 빌리면 2시간, 말만 잘하면 3시간 정도 타고 와도 되는 조건이었다.  


   "차 조심 해라, 시간 내에 갖고 오고~"


   자전거포 아저씨의 당부를 뒤로 하고 우리는 페달을 밟았다. 이제 겨우 자전거를 배운 터라 영도까지의 라이딩-그때는 이런 말조차도 없었다.-에 그저 가슴이 설렐 뿐이었다. 당시만 해도 부산에서 가장 큰 섬 영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고 오면 뭔가 대단한 자전거 고수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때 부산에는 지금처럼 차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영도로 들어가려면 나름 차들이 많이 다니는 영도다리와 부산의 간선도로인 중앙대로를 지나야 하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무한반복해야 하는 난코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전거 초심자가 자전거포에서 빌린 고물자전거로는 어림도 없는 코스였다. 그럼에도 영도를 한 바퀴 도는 코스를 무리하게 선택한 것은 중학교 시절의 겁 없는 치기가 발동한 탓이었다. 


(파란 선-라이딩 경로, 빨간 점-사고 지점)


   자전거를 빌린 토성동에서 영도까지 자전거를 타고 들어온 기억은 내 머리에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자전거 초보자로서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으려고 너무 집중하다 보니 그 부분의 기억도 남아있지 않은 탓이리라. 하지만 영도의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길에 서 있는 용달차(?)를 박은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우리는 중앙대로와 영도다리의 난코스를 어찌어찌 절묘하게 피해서 영도로 건너왔다. 그리고 섬 초입의 언덕배기를 자전거를 끌다시피 하며 올랐다. 그 언덕을 올라서자 시원한 바닷바람이 이마의 땀방울을 흩어갔다. 이제부터는 도로를 따라서 영도 가장자리를 돌면 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영도의 명물이 된 흰여울 문화마을-그 땐 이렇게 전국적인 명소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을 따라 여유 있게 라이딩을 이어갔다. 영도 앞바다의 절경을 감상하며 절영로를 한참이나 달렸을 때였다. 갑자기 도로가 지그재그로 트위스트를 추더니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자전거 브레이크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자전거 초심자의 손에 땀이 남과 동시에 힘이 들어갔다. 자전거의 우측은 해안절벽, 좌측은 차가 빵빵거리는 중앙선이 있었다. 브레이크가 제대로 듣지 않는 자전거는 내리막길에서 가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해안절벽을 뚫고 바다로 추락하거나,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에서 오는 차와 충돌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그때 용달차를 박은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지금은 승용차와 활어차가 세워져 있다, 해안가에 도보데크도 생겼다.(카카오맵 캡처))


   "으아아악~!!!"


   나의 외마디 비명이 바닷바람을 타고 섬 전체로 퍼져나갔다. 


   '쾅~!'


(흰여울 문화마을에서 이어지는 영도의 해안도로-저기서 떨어졌다면 아마도 나는?~^^;;)


   내 자전거의 선택은 -이건 결코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길가에 주차해 놓은 어느 용달차를 박는 것이었다.


   "이거 어쩌지?"


   곧 내 뒤를 따라온 친구에게 내가 제일 먼저 한 말은 바로 자전거의 안위를 걱정하는 말이었다. 자전거의 앞바퀴가 용달차와의 충돌로 인해 짜부라져 덜렁거리고 있었고 핸들도 완전히 비틀어져 오른쪽으로 심하게 틀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달차의 백밀러는 반쯤 부서져 플라스틱 조각과 거울이 도로에 떨어져 있었고 운전석 문짝은 움푹 들어간 채로 자전거 바퀴 크기만큼 긁힌 자국이 나 있었다. 


   "어?, 니 여기 피 나내?"


   그제야 나는 따끔거리는 내 오른손을 올려보았다. 핸들을 쥐었던 중지와 약지 두 번째 마디 살점이 떨어져 나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왼쪽 다리 허벅지 부분은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깔렸는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오른쪽 눈두덩이도 심하게 긁혀 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니 내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괜히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포 아저씨에게 야단 맞은 생각을 하니 더 그랬던 것 같다. 금방이라도 용달차 주인이 나타나서 이거 누가 이랬냐고 소리칠 것만 같았다.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을 것 같은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자전거 안장에 올라앉으면 금방이라도 바퀴가 빠져 달아날 것만 같았다. 손가락에서 계속 나는 피는 다음 일이었다. 이 용달차 주인이 오기 전에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용달차 주인아저씨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렇게 완전범죄를 저질렀다. 그때는 cctv나 블랙박스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현행범을 잡지 않으면 범인을 잡기가 어려웠으리라. 아마도 그 용달차 주인아저씨는 금요일 밤에 영업을 하고 토요일 낮에는 집에서 쉬는 사람이리라. 나는 손에 그렇게 피범벅을 해가지고 바퀴가 덜렁거리는 자전거를 끌고서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갔다. 영도다리를 건너 토성동에 있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맞은편 자전거포에 다다랐을 때 주위는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자전거포에는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아저씨는 여전히 자전거포 문을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붉은색 알다마 전구가 자전거포 안을 밝히고 있었고 아저씨는 그 안에서 자전거 체인을 분리해 가며 자전거를 수리하고 계셨다.  


   "아저씨~"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저씨를 불렀다. 아저씨는 우리 둘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더니 나와 짜부라진 자전거 바퀴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는 이미 감을 잡으셨는지


   "그거 타고 어디까지 갔다왔노?"


   하고 물으셨다. 난 차마 영도까지 갔다 왔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쩌어기요~"


   하고 피딱지가 굳어서 앉은 손을 들어 대답했다. 아저씨가 자전거를 변상해 놓으라느니, 시간을 넘겼으니 추가 요금을 내라느니 하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거기 놔놓고 가라, 집에 가서 좀 씻어라, 그리고 다음부터는 조심해서 타래이~"


   아저씨는 그렇게만 말씀하시고 다시 자전거 쪽으로 몸을 돌려 체인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기뻐서 '진짜요?, 고맙습니다.'하고 말했지만 아저씨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체인을 만질 뿐이었다. 자전거포를 나와서 나와 그 친구는 서로를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그 친구의 얼굴이 알다마 전구 불빛에 비쳐 붉게 빛났다. 내 얼굴도 아마 그렇게 빛나고 있었으리라.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자전거를 타고 영도를 한 바퀴 돌 생각도, 사고가 나고 여기까지 다시 걸어서 올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빙긋 웃었다. 둘 다 오늘 정말 재수가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손을 흔들고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그 친구와 계속 자전거를 탄 기억은 없다. 아마도 그날의 기억 때문에 서로 자전거에 '자'자도 꺼내지 않았던 것 같다. 직장에 들어와 취미로 자전거를 타면서 그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만하길 다행이지, 잘못했으면 영원히 자전거를 타지 못할 뻔했다. 그래도 그 친구가 있었기에, 또 맘씨 좋은 자전거포 아저씨가 있었기에 뒤늦게나마 이렇게 자전거에 맛을 들여 타고 다닐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비 오다가 그친 거리를 걷던 우리는 동네 어귀, 초등학교 맞은 편의 그 자전거포를 보며 서로 빙긋 웃었다. 35년 된 그 친구의 웃음이 비 온 뒤의 햇살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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