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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Sep 11. 2018

우울증 극복기 - 니체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수술 이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Kelly Clarkson의 Stronger라는 곡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stand a little taller.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a fighter, footsteps even lighter.

당신을 죽이지 않는 것은 당신을 더 강하게, 더 우뚝 서 있게 만든다.

당신을 죽이지 않는 것은 당신을 투사로, 당신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라는 후렴구의 가사가 꼭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눈을 뜨고 일어났더니 몸의 반이 마비되어있던, 한창 예민할 18세라는 나이에 화장실도 혼자 못 가 기저귀를 차고 침대에 누워 볼일을 봐야 했던, 그런 나에게 '너를 죽이지 않는 것은 너를 더 강하게 할 뿐이야'라는 가사는 꽤나 위로가 되었다.

저 구절이 니체가 한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수술을 하고 나서 거의 6년이 지난 최근이다. 철학이 우울증에 빠진 나를 구해주고 위로해 준다는 것을 느끼고, 그중에서도 니체의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래서 읽게 된 책에서 6년 전 나를 위로해 준 구절을 발견한 순간, 나도 모르게 눈가가 찡해졌다.

니체의 철학이라 하면 '영원 회귀'를 많이들 떠올릴 것이다.



어느 날 낮, 혹은 어느 날 밤에 악령이 너의 가장 깊은 고독 속으로 살며시 찾아들어 이렇게 말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거기에는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모든 것에 네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영원 회귀는 이렇듯, 같은 운명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니체의 세계관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니체가 35세부터 질병으로 인해 죽을 때까지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육체적으로 아픈 자신의 삶이 그대로 반복될 것이라니, 이게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의 세계관이라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현생이 이토록 아프니, 다음 생에는 건강할 것이라는 세계관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게다가, 니체의 결론은 어차피 운명이 반복되니 열심히 사는 것이 무의미하고 허무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고난은 스스로를 성장시키기에 그 속에서 춤추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니체가 자신의 삶의 모든 순간에 본인의 운명을 사랑하며 고통 속에서도 울지 않고 춤추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사람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삶의 방식을 살아가고자 한 그의 의지 자체가 매우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육체적 고통은 정말로 쉽게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그 속에서 춤추며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자 결심한 니체의 정신력은 감탄스러울 뿐이다. 


이미 '당신을 죽이지 않는 것은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구절에서 예측할 수 있겠지만, 니체는 자신의 병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는 본인 내면의 의지삶에 함몰되어가는 자신을 환기시키기 위해 질병을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사실 나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수술을 하고 나서, '만약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수없이 많이 했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할수록 우울해졌다. 아프기 때문에 내가 평생 하지 못 할 달리기, 스키 타기, 그토록 사랑하는 수영 등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니체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만약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조금도 쉬지 않고 평생을 앞만 보고 달렸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18년 동안 그랬듯이 옆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나의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면서 바쁘게 살았을 것이다. 즉, 사회가 만든 틀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면서 무의미한 경쟁에 파묻혀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놓치고 있던 나는, 병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고, 그로 인한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내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이다. 게다가, 6년간 지켜본 결과, 이 병으로 인한 후유증은 사라지지 않고 늘 내 곁에 남아서 내가 일상에 함몰되어갈 때마다 한 번씩 내 인생에 쉼표를 찍어준다. 그 쉼표는 때론 우울증의 모습을 하고 찍혀서 나를 불안하고 슬프게 만들지만, 그런 감정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한 사유를 계속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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