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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Sep 09. 2018

우울증 극복기 - 나보다 힘든 사람이 있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내가 힘들지 않은 건 아니야 

우울증을 겪었다. 아직도 완전히 낫지는 않은 듯 하지만, 애초에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우울증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내 마음과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우울증 극복기’를 작성하기로 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있어.

내가 정말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그걸 누가 몰라? 당연히 나보다 힘든 사람들 있지. 누군가 힘들다고 징징거릴 때, ‘너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으니 그 사람을 생각하며 참아라’라고 하는 것은 정말 별로인 반응이다. 그걸 몰라서 징징거리는 게 아니거든. 


나는 아프고 나서 저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내가 몸이 불편해서 우울해하고 힘들어할 때면 엄마는 ‘너도 힘들겠지만, 너보다 더 아래를 봐. 더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더 아픈 사람들도 더 많아.’라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도, 물리치료사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다른 환자들에 비해서 예후가 좋은 편이에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무작정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곧 화가 났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내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야!

라고 모두에게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렇게 따지면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아프지도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왜 나는 아래만 보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글쎄. 매우 긍정적인 사람들은 힘들고 슬플 때 자신보다 더 힘들고 슬플 누군가들을 생각하며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속도 좁고, 그렇게까지 긍정적이지도 않아서 그런 사고방식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힘든 나 자신’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이 우울함에서 벗어나는 것에 더 효과가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니,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렇게, 


그래. 나 진짜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어. 매일같이 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서 진통제를 눈 뜨자마자 먹었고, 주사도 많이 맞았어. 그러다가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종양이 있다고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어. 수술이 잘못될 확률은 매우 낮다고 했는데도 내 수술은 잘못되었어. 수술이 끝나고 눈을 떠 보니 목 아래로 마비가 되어 있었어. 괜찮아지겠지, 시간이 지나고 치료를 열심히 받으면 나아지겠지, 수없이 희망을 가졌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았어. 다른 친구들이 술을 마시고, 체육 대회에 참가하고, 소풍을 가는 동안 20살의 나는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어. 누군가 내가 아픈 걸 아는 것이 싫어서 꽁꽁 숨기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어.


누가 ‘너 왜 이렇게 절뚝거려?’라고 말하면 내가 치료에 쏟은 시간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서,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한 것이 하나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아서 하루 종일 다른 것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 그렇게 나는 견뎌왔어. 모든 순간들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순간들이 힘들었어. 지금도 힘들고, 아마 앞으로도 힘들겠지. 


그런 내 힘듦을 내가 보고 있어. 그런 어려운 시간을 잘 이겨냈어. 아픈 마음을 잘 추려서 여기까지 왔어.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많지만, 나도 분명 힘들었고, 그 힘든 순간들을 나름대로 버텨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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