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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Sep 13. 2018

OUT in London  

런던, LGBTQ+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한국에 있다면, 당신 주변에는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밝힌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만약 당신이 공공연하게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하고 다닌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성소수자가 단 한 명도 없다면, 그것은 정말로 당신 주변에 성소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남들과는 '다른' 성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불편하기 때문일까.


'주변에 소수자/약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 주위에 소수자/약자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사회적 차별이 심해 자신의 모습을 감춘 것이다'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유럽에 가면 유난히 동성 커플이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이 많이 보이고,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은 유럽에 동성애자와 장애인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그만큼 동성애자와 장애인이 모습을 드러내고 생활하기에 불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23년 동안 내게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인 친구는 단 한 명이었으나, 이 곳에서 단 삼 주만에 내 주위에는 본인이 LGBTQ+라고 밝힌 사람들이 다섯이나 된다. 우연은 아닐 것이다.


우리 학교에는 세 가지 종류의 화장실이 있다. 여자 화장실, 남자 화장실, 그리고 공용 화장실. 남자 화장실을 이용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여자 화장실과 공용 화장실은 모두 철저하게 1인용 화장실이 큰 화장실 안에 여러 개 설치되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화장실 표시가 적혀 있는 문을 밀고 들어가면, 비행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인용 화장실 (변기, 세면대, 거울, 손 드라이어 등이 한 곳에 있는)이 4-5개 정도 설치되어 있다. 각 칸마다 벽이랑 문도 두꺼워서 방음도 완벽하다. 완전한 사생활이 보장되는 공간인 것이다. 이런 화장실은 특히나 공용 화장실에서 좋다. 남자건, 여자건, 자신을 어떻게 정의 내리건, 정의 내리기를 거부하건, 그냥 고민하지 않고, 남들 신경 쓰지 않고 공용 화장실을 사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삼 주 동안 내게 본인이 LGBTQ+라는 것을 밝힌 친구들이 다섯이라고 했다. 삼 주라는 시간이 서로를 잘 알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은 상대의 반응이 긍정적일 것이라고 기대함과 동시에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그 말을 듣는 내가 호모포비아가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라고 믿으며, 혹여나 호모포비아여도 그것은 나의 문제이지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 않을까. 여러 모로 배울 것도, 부러운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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