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다고 병이 낫지 않는다
후회, 자책을 하다가도 뇌가 터지는 느낌이 들면서 마트에 달려간다. 눈에 보이는 모든 음식을 산다. 집에 와서 음식을 무작정 입에 넣는다. 배가 부르면 씹다가 음식을 뱉는다. 그 날 마트에서 사 온 음식을 다 먹기 전까지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먹기만 한다. 시간이 늦어서 마트가 문을 닫으면 내가 버렸던 음식을 다시 먹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한다… 이건 더 이상 나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이건 병이고, 나는 치료가 필요하다.
지난 8월 즈음, 푸로작(플루옥세틴, 프로작)이 효과가 없는 것 같아 복용을 중단했다고 글을 썼다. 그러나 폭식증은 낫지 않았다. 폭식을 하고 난 후에 나는 늘 나의 의지박약을 탓했다. ‘왜 참지 못하고 또 먹었을까’, ‘대체 왜 미친 사람처럼 배불러도 음식을 입에 쑤셔 넣고 배가 아플 때까지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먹을까’, 등, 음식 하나 조절해서 먹지 못하고 자꾸 살이 쪄버리는 나의 약한 의지를 탓했다. 그러나 폭식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이건 더 이상 나의 의지 문제가 아니며, 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참는다고 병이 낫지 않는다. 병은 치료를 해야 한다.
다시 병원에 찾아갔고, 약을 처방받았다. 용량을 두 배로 늘려서 처방을 받았다. 네 배 까지 늘릴 수도 있으나, 효과가 나타나려면 약을 최소 한 달은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은 푸로작 40mg을 매일 아침 복용하기로 했다. 처음 약을 복용했을 때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서 혹시 이번에도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부작용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약 6주째 약을 다시 복용하고 있다. 효과는…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약과 함께 폭식의 욕구가 확 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잘 느껴지지 않던 배부름이 무엇인지 조금씩 다시 알게 되고, 약이 도움이 되겠지 하는 믿음을 가지고 더 열심히 치료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생각해보면 나는 처음 폭식 증상이 발현된 22살 때부터 완전히 폭식증을 고치지 못했다. 올해는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심리적 여유가 있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내년 여름이 오기 전까지 다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도록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단순히 식습관 개선, 다이어트의 문제가 아닌 나의 병을 치료하는 과정을 열심히 기록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