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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Mar 17. 2020

음식 남기기 연습

폭식증이 생기고 나서는 음식을 남기지 못하게 되었다. 

콘트라브를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들끓던 식탐이 조금은 잠잠해졌다. 그렇다고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다. 아직도 과식을 하고 나면 배가 부른데도 과자,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생각난다.  배가 살짝 고픈 듯하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식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오히려 배가 부르면 정신을 놓고 입에 음식을 넣게 된다. 음식이 한 번 입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끊기가 어려워진다. 


폭식증이 생기고 나서 나는 음식을 남기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할 때는 강박적으로 음식을 남겼다. 왠지 내 앞의 음식을 다 먹으면 내가 과식을, 폭식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들키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자 음식 앞에 남겨지면, 장소가 내 방이든 식당이든, 그 음식을 무조건 다 먹었다. 


분명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집에 몽쉘 한 박스가 있으면 몇 주는 남아 있었고, 초콜릿 한 박스가 있으면 또 몇 주는 두고두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음식을 서랍이나 냉장고에 남기고 오면 다른 것에 전혀 집중을 하지 못 하고 그 음식을 모두 먹을 때까지 음식 생각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이스크림 작은 컵 네 개를 묶음으로 사서 냉동실에 넣어 놓고 한 개를 먹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남아있는 세 개가 나를 부르는 느낌. 자석처럼 냉동실로 끌려가서 또 하나를 꺼내서 먹었다. 그렇게 또 하나, 마지막까지 또 하나. 


이제 내게는 혼자 음식을 남기는 것이 너무 어렵고 부자연스러워졌다.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음식 남기기 연습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이스크림 파인트 한 개가 냉동실에 있으면 꺼내서 반 통만 먹고 나머지 반은 남겨 놓기. 아직은 어렵지만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예전처럼 내가 먹고 싶을 때 음식을 적당량 먹는 자유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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