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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Apr 19. 2020

눈을 뜨니 중환자실이었다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누워있었고, 머리 위에서는 밝은 노란 빛이 느껴졌다. 누군가 내 머리 위 쪽에 서서 그 빛을 올려다보라고 말했다.
여길 쳐다봐. 여길 쳐다봐. 여길 쳐다봐.
그 사람은 자신이 있는 쪽을 쳐다보라고 내게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꿈속에서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소리치는 그 사람을 쳐다보기 위해서 고개를 들고 눈을 뜨려고 했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해서 내게 소리치는 그 사람을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눈을 뜨려고 힘을 줬다. 그러다가 꿈에서 깼다. 눈을 떴다.

지나치게 밝은 불빛. 시끄럽게 삑삑거리는 기계 소리.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수술이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술이 잘 끝난 것인지 물을 정신도 없었다. 온몸이 너무 아프고 무거웠다. 몸이 마치 물이 가득 찬 물풍선처럼 무겁게 부풀어 오른 기분이 들었다.

눈 앞에는 엄마가 있었다. 나는
“누가 자꾸 위를 쳐다보라고 해서...”

라는 말을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간호사가 와서 작은 버튼을 손에 쥐어줬다. 무통주사 버튼이니 몸이 심하게 아프면 누르라고 했다. 나는 조금만 통증이 느껴져도 바로 버튼을 눌렀고, 버튼을 누르고 나면 그 다음 통증 때문에 정신이 들 때까지 그냥 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아침인지 밤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있는 곳은 그냥 항상 지나치게 밝았고, 삑삑거리는 내 심장소리가 머리 옆의 기계에서 계속해서 나고 있어서 매우 시끄러웠다. 몇 번 더 자고 일어나면 이 두려움이 가시고 몸의 통증과 내 불안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확실한 건 하나도 없었고, 그 누구도 내게 내 몸 상태에 대해서 확실하게 얘기해 주지 않았지만, 그냥 시간이 지나가야할 것만 같았다.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이 통증이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눈을 뜨고 감았다.


가끔 눈을 뜨면 부모님 얼굴이 눈에 보였다. 또 가끔은 간호사가 깨워서 뭔가를 입에 넣어 주었다. 말을 할 기운도 없었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중환자실에서의 기억은 그렇게 희미하게 남아있다.

나중에 들은 얘기에 의하면, 4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던 수술은 그 배의 시간이 걸렸고, 나는 수술 이후에도 나흘간 깨어나지 못해서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종양의 위치와 상태가 예상보다 심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서 움직이면서 신경을 건드리는 바람에 신경이 손상되었다. 게다가 종양을 완벽하게 제거하면 신경이 완전히 손상되어 전신 마비가 될 것이 확실해서 종양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도 없었다.


그 땐 이렇게 확실하게 나의 상태를 전달받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나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주워 들었다. 중환자실에서의 나는 그냥 수술은 끝난 것 같은데 눈을 떠 보니 내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의사들은 병실로 들어와서 내 몸 구석구석을 찌르고 누르면서 감각이 느껴지냐고 묻고, 발가락을 움직이라는데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 건지 감도 안 잡히고, 그냥 전부 다 혼란스럽고 아프고 피곤했을 뿐이다. 그 때의 나는 내가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마비가 된 줄도, 그 마비가 지속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 했기 때문에, 그저 그 힘든 시간을 조금만 버티고 기다리면 괜찮아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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