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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Jun 16. 2020

탄수화물 중독과 폭식

탄수화물 중독이라는 말, 다들 한 번 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폭식증 치료의 일환으로 콘트라브라는 이름의 약을 복용했다. Contrave라는 이름의 이 약은 CONtrol + cRAVE (조절 + 갈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 이름대로 음식에 대한 갈망, 특히, 탄수화물에 대한 갈망을 어느 정도 조절하는 것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폭식의 트리거가 되는 음식이 주로 빵, 과자, 초콜릿 등의 탄수화물 종류였기 때문에 더욱이 이 약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탄수화물 중독 체크 리스트'에 의하면 나는 심각한 탄수화물 중독자라고 나온다. 도대체 탄수화물 중독이 뭐길래 폭식의 방아쇠를 당기고, 내 이성이 힘을 잃게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우선, 중독이란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여러 자료들을 참고한 결과, 공통적으로 다음의 현상을 보일 때 우리는 무언가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1. Bingeing (한 번에 많은 양을 섭취함)

- 특히 스스로, 혹은 주변에 의해 욕구가 통제된 후 더 많이 섭취하는 현상을 보인다.

2. withdrawal (중독된 것을 섭취하지 못하게 했을 때의 반응)

- 우울, 불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3. Craving (갈망)

- 중독된 것을 섭취하기 위한 노력을 보인다.

- 중독된 것을 섭취하기 위한 동기가 뚜렷하고 섭취에의 의지가 굉장하다.

4. Cross - sensitization (다른 것에의 중독 가능성)

- 뇌를 비슷하게 자극하는 다른 것에 중독되었다. (예: 설탕과 알코올은 뇌를 비슷하게 자극해서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을 끊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설탕에 중독될 수 있다)


1-4를 보면 이게 약물 중독에 대한 설명인 듯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경우에도 위의 4가지 특징이 적용되며, 약물과 음식에 중독된 사람들의 뇌는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탄수화물 중독에의 원인에는 무엇이 있을까? 탄수화물 중독의 원인은 한 가지로 밝혀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그중 몇 개는 다음과 같다.


1. 세로토닌

- 단백질과 달리 탄수화물은 섭취 시 뇌의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시키고, 그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2. 유전

- 유전적으로 단 맛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고탄수화물 음식을 섭취하면 미각의 자극으로 인해 두뇌의 일정 부분이 활성화되어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 유전적으로 '배고픔'이라는 상태를 다른 상태와 잘 구분하지 뭇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에 노출되면 부정적 감정 해소를 위해 탄수화물을 찾게 될 수 있다.

3. 도파민

- 탄수화물은 마약과 비슷하게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따라서 기분을 좋게 만든다. 탄수화물 섭취로 인해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면 뇌의 구조가 변화하며 (마약 중독자처럼) 뇌가 고탄수화물 섭취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

4. 스트레스 호르몬

- 탄수화물 섭취로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감소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탄수화물은 빠르게 우리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기분을 나아지게 하며, 탄수화물의 이런 효과를 우리 뇌가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되면 결국 탄수화물에 중독되고, 탄수화물에 의존하게 되는 뇌로 변화한다는 내용이다. 이와는 별개로, 같은 연구에서 폭식증을 한 번 앓게 된 사람이 평생 폭식증을 고치지 못할 확률은 2.6% 정도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100 명 중 3 명은 평생 폭식증을 고치지 못한다는 얘기다. 정말 무서운 얘기다. 평생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니.


마약, 담배 등은 사회적으로 관리가 가능한 중독 물질이지만, 탄수화물 역시 뇌에 비슷한 영향을 줌에도 불구하고 탄수화물은 현실적으로 제도적, 사회적 관리가 힘든 물질이기 때문에 이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개인이 탄수화물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고 관리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 몸은 우리 몸은 탄수화물 없이는 힘을 낼 수가 없다. 비슷하게 공복감 자체는 우리 몸에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무작정 굶고 먹고를 반복하는 행위는 식이장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탄수화물 자체는 적이 아니다. 실제로도 탄수화물 자체가 중독을 일으킨다는 것이 연구 결과가 아니라, 탄수화물로 인한 감정의 변화, 기억 등이 원인이 되어 중독을 일으킨다고 한다. 결국, 비슷한 경험으로 인한 강화를 멈춰줘야 한다. 음식이 주는 보상 효과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스트레스 해소와 기분 좋음을 유발할 수 있는, 음식 아닌 대체제를 찾아야 한다.


또 한 가지, 폭식증 극복에 도움이 되었던 훈련 중 하나는 음식을 입에 넣기 전에 이 음식을 먹고 난 후의 나의 기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쾌락에 눈이 멀지 말고 이것이 나의 우울의 원인이 되고 나의 건강을 악화시킬 원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러고 나면 10번 폭식할 것 중 5,6번은 ‘그래, 이거 먹어서 뭐 해’ 라며 먹는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심한 폭식증에는 물론 이 정도 이성을 차리기도 쉽지 않은 것을 알지만 콘트라브 등 약한 약물의 역할이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정신 차리기를 돕는 역할. 무튼, 탄수화물로 인한 강한 쾌락적 감정의 고리를 억지로 끊고 그 사이에 폭식으로 인한 부정적 경험을 밀어 넣어서 그 감정적 고리를 끊는 훈련은 개인적으로는 폭식증 고치기에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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