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마살 Aug 12. 2020

엄마랑 둘이 살게 됐다

사주에 역마살이 3개나 끼었다는 나는, 그래선지 성인이 되고부터 해외에 나갈 기회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결국, 해외 취업을 목표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영국에 있는 대학원으로 떠나게 되었다. 내가 등록한 석사 과정은 2 과정으로서, 1년은 영국에서, 그다음 1년은 중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2 동안  개의 석사 학위를 얻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1 동안 열심히 구직 활동을  결과, 원하던 대로 해외 취업을   있게 되었다. 영국에서의 1 학업을 마치고 인턴으로 일을 하고, 그다음 중국에서 학업을 마무리하고 인턴으로 일을 하던 회사로 돌아가서 풀타임으로 일을 하게  것이었다.  말인즉슨,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가족이랑 지낼 틈도 없이, 유학으로 시작된 자취가 자연스럽게 독립으로 이어지게  것이다. , 계획은 그랬다. 2020 1,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  까지는.   

2019 가을부터 중국에 있었던 나는, 네이버 검색어 1위에 ‘우한 폐렴 올라가던 1 초의 어느 ,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물론, 내가 있던 상하이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리 심각하지 않아서 아무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았고, 공항에서도 통제가 딱히 없었다. 그래서 비록 ‘우한 폐렴이 심하다던데 중국에 있는 너는 괜찮냐 연락들을 받았지만,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는  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이후로   동안 한국과 중국  나라에서 모두 점점 심각해졌다. 슬슬 졸업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중국에 그대로 두고   짐이 걱정됐고,  그대로 나가고 있는 월세가 아까웠다.  와중에 중국 정부에서 외국인들의 비자를 취소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졸지에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가는 상황이 됐다. 졸업이든 뭐든, 어쨌든 중국은 다시 돌아가지    같았다. 그래서 상하이에 계시는 엄마의 지인들께 짐을 한국으로 정리해서 보내고, 월세 계약서도 마무리 지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렇게 갑자기 중국에서의 삶이 뜻하지 않게 4개월 만에 종료됐다. 그리고 무기한의 한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한국에 있는 우리 가족들의 거주 상황에도  가지 변화들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원래 부모님, , 그리고 남동생의  식구가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었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분이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주택의 5층에 살고 계셨다. 그러나 내가 출국한 사이 할아버지의 치매 증세가 심해지셨다. 할아버지께서 집을 나가 번화한 강남 한복판에서 길을 잃으시는 일이   발생했고, 그와 더불어 할머니마저 허리와 다리가 성치 않아 5층의 집까지 계단을 걸어 오르내리시기가 힘들어지신 상황이었다.  분은 결국 이사를 가셨는데, 할아버지의 치매 증세 악화와 할머니의 허리 건강 악화로 인해  분이서 지내시기 어려워지자 아빠가 우리 집과  분의 집을 오가며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중국에 있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할머니 혼자 남으셨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할머니 혼자 사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혼자 사시겠다고 하셨고, 결국 아빠와 할머니 둘이  집에서 지내고, 나머지 가족들이  다른  집에서 지내는 전통적이지 않은 거주 형태의 모습으로 살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의 무기한 한국 생활이 지속된다는 것은 예전과는 달리 아빠, 엄마, 동생, ,  가족이  지붕 아래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 동생, 그리고 , 이렇게 셋이 주로 함께 지내고 아빠는 주말에만 집에 들르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던 와중, 22 나의 동생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얼마  입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는 엄마와 ,  둘이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난생처음으로 온갖 우연과 우연 아닌 것들이 겹쳐 엄마와  둘이 살게  것이다. 모녀의 동거에도 기한이 정해져 있으니, 나는 인터넷 통신 기술 발전이 힘입어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도 학업을 마칠  있게 되었고, 계약서  올해 연말에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생각을 했다. 내가  언제 엄마랑  둘이 살아보겠나.  시간을 십분 활용해서, 우리 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작가의 이전글 탄수화물 중독과 폭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