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마살 Aug 18. 2020

엄마랑 살면서 과일을 많이 먹게 되었다


엄마는 과일을 좋아한다. 나는 과일이 있으면 먹지만, 굳이 내가 사 먹지는 않는다. 그래서 ‘과일은 다이어트에 좋지 않대. 과당이 생각보다 엄청 높대’라고 말하면서 다이어트를 위해 과일을 먹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초콜릿과 쿠키, 새콤달콤은 잘도 까먹는다. 얼마 전에는 밤만 되면 장에 가스가 너무 차서 무슨 큰 문제가 있나 하고 대장 내시경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대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장에 가스가 차서 불편하다면 가스를 유발하는 음식 섭취를 제한하는 ‘로우 포드맵’ 식단을 시도해 보라고 하셨다. 그 식단에 의하면 과일도 가스를 유발할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병원에서 그 식단표를 받고서는 과일을 먹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날 밤에 침대에 누워서 마시지 말라는 탄산수며 제로콜라를 참지 못 하고 꿀렁꿀렁 마셨다. 나에게 과일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아마 엄마는 그 반대일 것이다. ‘앞으로 과일을 드시면 안 됩니다 ‘라는 진단을 받으면 아마 엄마는 엄청 슬퍼질 수도 있다. 엄마는 아침에는 주로 사과를 반 쪽 먹고, 사과와 함께 다른 과일도 조금 곁들여서 먹는다. 엄마는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외출할 준비를 하기 때문에 내가 일어나면 이미 아침 식사를 끝내 놓고 나를 위해 약간의 음식을 식탁 위에 남겨 놓는다. 요즘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식탁에 반쯤 잘린 사과가 놓여 있고, 그 옆에 자두나 복숭아가 마찬가지로 반쯤 잘려서 놓여 있다. 나는 아침을 잘 챙겨 먹지는 않는데, 그래도 아침에 식탁에 놓여있는 과일을 보면 조금 입맛이 돈다. 그래서 엄마가 남겨놓은 반쪽짜리 과일들을 내가 마저 다 먹는다. 그러니까 확실히 예전보다 과일을 많이 먹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입덧이 심해서 음식을 잘 못 먹었는데, 그나마 딸기는 많이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근데 넌 딸기를 그렇게 잘 먹지는 않더라’라고 엄마가 덧붙였다. 난 내가 나름 과일 중에서는 딸기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임신하면 딸기를 엄청 먹게 될까, 그게 조금 궁금해졌다. 모녀 사이는 그런 것도 닮나? 어디까지가 유전의 영역일까? 엄마는 가끔 ‘적당히’가 없다. 몇 달 전에는 블루베리 철이라서 블루베리가 엄청 싱싱하고 싸다면서 농장에서 몇 박스나 직접 주문했다. 그래서 블루베리가 졸지에 냉장고에 엄청나게 많이 쌓이게 됐다. 또, 내가 어떤 과일이 맛있다고 한 마디 하면, 그걸 기억했다가 내가 질려서 못 먹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그걸 사 온다. 귤이 맛있다고 하면 집에 오는 길에 손에 귤을 들고 오고, 복숭아가 맛있다고 하면 복숭아를 들고 온다. 한 번은 사파이어 포도가 맛있다고 했다가 엄마가 마트에 갈 때마다 포도를 박스채로 사 왔다. 결국 내가 먹지 않아서 물러진 과일을 엄마가 물러진 부분을 칼로 도려내고 남은 부분을 살려내서 먹은 후에야 그 과일은 우리 집 냉장고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거 진짜 맛있다’는 말을 쉽게 하면 안 되는 이유다. 나는 과일보다는 과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가끔 엄마에게 과자를 사다 준다. 그런데 엄마가 한 번은 내가 사 온 치즈 크래커가 맛있다고 했다. 그 이후로 왠지 마트에 가서 그 크래커가 눈에 띄면 그걸 사서 엄마에게 줘야 할 것 같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난 역시 엄마의 딸이구나 싶다. 이것도 역시 유전의 영역이 맞을까?

작가의 이전글 엄마는 밤에 내가 우는 줄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