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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연고 Jan 12. 2024

편지

[단어 하나에 꽂힌 이야기 -2-]

저는 지금 당신에게 가고 있습니다. 기차는 얼마나 낭만적인 공간인지요.



무릎에 가방을 올리고 그 위에 두툼한 책을 올리고 또 그 위에 당신에게 쓰는 이 편지지를 올리고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고 있습니다. 앞에 앉아 있는 낯선 이는 제 편지의 내용이 궁금한지 무심한 듯 힐끔거리는 시선을 자꾸 던져댑니다. 별 내용이 적혀있지도 않은 글이니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지만 거꾸로 쓰여있는 글씨들을 눈앞에 들이밀어 주지 않는 이상 읽기는 힘들겠지요.



방금 기차가 흔들려 손에 잡고 굴리고 있던 펜을 떨어뜨렸어요. 펜이 도굴도굴 굴러가 제 앞자리에서 졸고 있는 할머니 신발 사이로 들어가 버렸었지요. 그래서 그 펜을 줍느라 한참 진땀을 흘렸답니다. 할머니를 깨우면 안 되기에 조심스레 움직이기도 했고, 할머니가 갑자기 깨어 눈이라도 마주치면 민망할 거 같았거든요. 다행히 할머니의 노곤노곤 숨 쉬는 소리를 가까이에서 잠시 들으며 펜을 조심히 주워들 수 있었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이 편지에는 설렘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제 그리움 또한 담겨 있습니다. 이 편지가 언제쯤 당신에게 닿을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당신 손에 쥐어지게 될 수 있을지요. 그 또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 당신에게 가고 있지만, 제가 간 그곳에 당신이 있을지 모르기에 드는 마음입니다. 기차의 낭만을 담아 저는 이 편지를 곱게 써 내려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소망해 보는 것이지요. 당신이 내가 도착한 그곳에 있어주기를요. 그러면 저는 이 편지를 당신에게 전해줄 수도 있겠지요. 편지를 그런 마음으로 적어가고 있습니다. 제 마음이 이 편지에 오롯이 담기길 바랄 뿐입니다. 당신이 그곳에 있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당신은 어떠한가요. 기다리고 있는지요. 궁금하지만, 그 마음을 참고 편지를 적어내려 가겠습니다.




상상이 더해진 창작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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