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용담 Jul 04. 2020

안국역 안국이

"안국이는 잘 살고 있을까?"
딸의 혼잣말 비슷한 물음에 꼭 일 년 전 이맘때의 일이 생각났다.

몇 해 만에 한국에 온 딸과 인사동 데이트를 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차도 마시며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했다.
이상하게 한국에 오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다른 사람의 이목이 신경 쓰인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본인 의지대로 입고 먹고 행동함에 거리낌이 없었는데, 한국에서 마주치는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보면 다 비슷한 외모에 인생의 진도 또한 엇비슷해서, 본인만  동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딸의 이야기를 들으니 약간 걱정이 되어 이런저런 말로 위로도 해보고 용기도 주려 했지만, 생각보다 많이 위축이 되었는지 자꾸  자기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 인사동부터 안국역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져서 주위가 캄캄해진 길을 걷고 있는데, 안국역 거의 다 와 갈 때쯤 길가 나무 수풀 사이에서 무언가가 화닥닥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깜짝 놀라 멈춰 서서 보니 정말이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것 같은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폴짝 뛰어나왔다.
서울 시내 한복판 거리에서 맞닥뜨린 아기 고양이라니!!


신기하고 너무도 귀여워서 쪼그리고 앉아 고양이 구경을 했다.
그 아기 고양이는 언제 봤다고 우리 앞에서 발라당 배를 뒤집고 눕더니 온갖 귀여운 자태를 모두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는 짓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스스럼이 없던지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우리는 그 고양이를 '안국이'라고 이름 지어주었다.

딸과 내가 길가에 쪼그려 앉아  감탄사를 연발하며 안국이를 보고 있자니 많은 사람들이 안국이를 보느라 잠시 머물다 떠나고 또 잠시 머물곤 했다.
그때, 삼십 대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계속 우리 옆에 같이 앉아 안국이의 교태를 보고 있다가 우리에게 물었다.

"저... 이 고양이 데려가실 거예요?"
딸이 집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한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아니에요~ 저희는 이미 한 마리를 키우고 있어서요"
"아! 그러시면 제가 데려가려고요"
"어머~ 지켜보니 어딘가에 어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두고 가기에 마음이 좀 아팠는데 정말 잘 됐네요! 안국이랑 오래도록 행복하세요^^"
그녀는 안국이를 재킷으로 싸안고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 타고 갔다.

안국이가 입양되는 것을 보고 난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안국역을 향해 다시 걸으며 딸에게 이야기했다.
"안국이를 보고 느낀 점이 많네... 역시 어필을 해야 해! 안국이 봐라~ 나무 수풀 속에서 숨어만 있었다면 입양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겠니? 자기 자신을 뽐내고 어필해야 해! 그래야 기회가 온다.
딸아! 너도 안국이처럼 수풀에서 나와 세상에 어필을 하렴!!"

안국이는 지금 어디서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어필하고 있을까...?

#안국역 #고양이 #입양 #어필

작가의 이전글 도끼 같은 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