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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담 Jul 06. 2020

나만의 퀘렌시아

스몰 스텝을 아십니까


겉으로는 아무 일 없어 보였다.
평온했고, 온화했고, 따뜻했고 게다가 고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엄청난 분노와 좌절의 마그마가 꿈틀대는 활화산이었다.

어느 날부터 나의 성향 중 가장 약한 부분이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주축을 이루는 일상을 살게 되었다.
내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가짜 감정의 얼굴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집에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 거다.


어떤 관계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나를 상대로 '인간 본성의 법칙'을 다 실험해 볼 수 있는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나의 옹졸함과 싸우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치사하고 소심하며, 편을 가르고, 이기적이었다니!
하다못해 밥주걱질에서까지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건 정말 에너지가 탈탈 털리는 일이었다.

나랑 싸우는 일은 많이 힘들었다. 나를 어르고 달래는 시간에 비해 약효가 지속되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투우사와 싸우다 지친 소가 심신을 달래려 찾아가는 자기만의 장소가 퀘렌시아라는데, 난 퀘렌시아가 절실히 필요했다.
좋은 경치와 분위기 좋은 곳 같은 일시적인 위로가 아닌, 정신적으로 숨어들어갈 무형의 퀘렌시아가 필요했다.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모른다.
수년 만에 만났어도 수년 전과 똑같은 자식 얘기, 그 자식이 다니는 학원 얘기를 하는 친구들, 시간 죽일 목적으로 모여 앉은 동네 사람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자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던 그러나 정작 기도해 줄 일 생긴 사람에게는 수군거림으로 기도를 대신하던 교회 사람들을 피해 나만의 동굴을 파고 싶었다.


독서모임을 하고 싶어 엄청나게 검색을 해댔다. 풍요 속의 빈곤인 듯 많은 모임이 검색되었지만 마땅한 것이 정말 없었다.
너무 멀거나 폐쇄적이거나, 너무 유치하거나... 어떤 모임은 너무 어려운 책 소개와 어려운 말로 그 모임을 소개하고 있어서 뭘 해보기도 전에  '너 오지 마'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검색된 어떤 모임에 대한 소개를 보았다. 친절하게 URL까지 있어서  암호 같은 문자를 찍고 들어갔다.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들어간 이상한 나라 같은 그곳은... 내가 그토록 찾던 그런 곳이었다!


'스몰 스텝'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 만든, 목적이 다른 여러 가지 모임의 방들이 있었고, 난 아무 검열 없이 그 방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스몰 스텝'을 처음 만든 박요철 작가님은 본인의 저서인 '스몰 스텝'에서 자신이 평범한 사람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평범한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고 당할 수 있는 일들을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쉬운 말도 어렵게 해서 사람을 주눅 들게 하려 작정을 한 듯한 모임이 아닌,  '야나두' 광고처럼 "야! 너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듯, 누구라도 선뜻 들어설 수 있게 방문을 살포시 열어 둔 그런 곳이었다.
 
하루에 두 쪽만 읽으면 된다는 책 읽는 모임 '두 쪽방'이 있었다. 두 쪽이라면 한 장이라는 말인데, 하루에 한 장이라니 못 할 이유가 없었다.
매일 세 줄 이상의 글을 쓰면 되는 '황홀한 글 감옥'방은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나의 글쓰기 욕구를 자극해 주기에 충분했다.
'마음 약차 방'은 또 어떠한가! 습관이 된 커피에 밀려 뒷전이었던 차 마시기의 행복을 알게 해 준 향기로운 방이다.
매일 그림 한 장씩 그려 올리는 '그림방'과  하루하루의 사진을 올리는 '사진', 영어공부의 습관을 만들어 주고 가끔 무료 강의까지 해 주시는 '성봉 영어방'과  EBS 영어 교재로 공부하는, 본 방송을 못 들은 사람을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자료를 올려주시는 고마운 '소피쌤 귀트임 공부방' 등등 매력적인 방이 정말 많았다.

말 그대로 '스몰 스텝'이었다.
뛰라고 하지 않고 많은 양을 해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매일매일 지속하는 것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그동안 뭔가 지속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었다.

그러니까 스몰 스텝은 조금씩만 하라고 한다. 내가 기쁘게 매일 할 수 있는 만큼씩만, 한 걸음씩 만...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고 '나답게 살라'는 것이었다.

이제 내 인생은 스몰 스텝을 모르던 때와 알고 난 후로 나뉜다.
'두쪽 방'을 통해 어느 때보다 다양한 책을 많이  읽었다. 생각을 깊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읽기 편한 책 위주가 아닌 어렵다 싶은 책도 거뜬히 읽어낼 수 있었다.
내가 써 논 글을 마주하기 싫어 쓰지 않고 생각의 파편으로만 날려버렸던 내 감정들을 글로 쓸 수 있던 것은 '황홀한 글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 덕분이었다.
게다가 어떤 분의 권고로 못 이기는 척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가 덜커덕 브런치 작가가 되는 기쁨도 누렸다.
글을 써서 사람들 앞에 스스로 펼쳐 보이다니! 남에게 보이는 글은 학교 다닐 때  일기장이나 독후감 검사가 전부였건만...
'스몰스텝'은 나를 세상 밖으로까지 끌고 나와 주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차 한 잔을 마시고 눈뜨자마자의 내 감정을 공책에 적어 넣는다. 그리고 성경을 읽거나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글도 읽는다.
낮 시간 틈틈이 간식 먹듯 맛있게 책을 읽고,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글로 써 볼까 구상도 한다.
저녁에도 바쁘다. 식사 준비와 식사를 마치면 저녁 산책을 하며 영어 듣기를 하고, 신데렐라처럼 밤 12시가 넘기 전에 글도 한 편 쓰려 정신을 모아 본다.
그렇게 사는 동안 '전혀'라고는 할 수 없으나 아주 많이 '포커페이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어쩌면 '나 상태 괜찮음'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되었던 포커페이스가 진짜 내 모습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스몰 스텝'에서 나는 정신적 퀘렌시아를 찾았고 둥지를 틀었다.
감정싸움으로 누수되던 에너지의 물꼬를 '스몰 스텝'의 방들에게로 돌리자, 내 안의 잠만 자던 거인이 슬금슬금 기지개를 켜려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총총대는 발걸음으로 이것저것을 바삐 해댄다.
여전히 평온하고, 온화하고, 따뜻하고 게다가 고상하기까지 한 모습을 하고, 가슴속엔 예전과 전혀 다른 마그마가 우릉우릉 거린다.
가까스로 버티며 시간을 버려서라도 나의 상황을 빨리 모면하고 싶었던 내 심정이, 매일의 작은 반복으로 가능성을 보게 되고, 무언가를 기대하게 되고, 직면하는 힘을 갖게 됐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걸음을 내딛는다.
평화로운 산책길에서의 한 걸음은 그저 다음 걸음을 이어주는 의미 없을 수도 있는 걸음이다.
그러나 만일 떨어지기 일보 직전, 발바닥이 반만 걸쳐진 낭떠러지에서의 한 걸음은 어떤 의미일까!
그 한 걸음에 사람이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

나는 감정의 벼랑 끝에 서 있었고 기적 같은 한 걸음을 옮겨 평지로 발을 디뎌냈다.

  
내 발을 올려 안전한 땅을 디딜 수 있게 손을 잡아 준 '스몰 스텝'처럼, 나는 벼랑 끝 비스듬히 박혀 있는 약해 보이나 견고한 풀뿌리가 되고 싶다.
 나처럼 스스로를 이기지 못해 벼랑 끝에 발을 걸치고 사는 사람들이 잡고 걸음을 뗄 수 있는 작은 풀이라도 되고 싶다.
'스몰스텝'이라는 나만의 퀘렌시아에서 회복한 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퀘렌시아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내 남은 삶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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