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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담 Feb 11. 2021

내 인생의 기적소리


동네에 자주 눈에 띄는 '아저씨'가 있었다.
군복 바지에 여러 가지 조합으로 겹쳐 입은 거친 옷차림과 깡말라서 어느 각도로 보아도 기다란 막대기처럼 보이는 '아저씨'는 폐지 모으는 손수레를 끌고 다녔다.


신출귀몰의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정수리가 탈 것 같은 한여름 정오의 해를 머리에 이고도, 겨울 칼바람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했다.
해가 긴 여름밤엔 거의 자정의 시각까지 분주한 그를 목격할 수 있었고, 토끼 꼬리만큼 짧은 겨울 해는 더욱 아껴 쓰는 듯했다.


그런데 열심히 사는 것은 뭐라 할 수 없으나, 그의 하는 '짓'은 얼마나 밉살맞은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고 쯧쯧 혀가  차졌다.
잘 모아둔 쓰레기 더미를 헤집어서 자기가 필요한 것만 쏙 빼가고 나머지 것들은 널브러뜨린 채 사라지기 일수라  동네 사람들이 질색을 해대도 그는 못 들은 척 또는 적반하장으로 일관하는 걸 보면 아마도 욕먹는 데엔 이미 이골 삼골이 난  듯했다.

동네 무료급식소에서 일주일에 한 번 자원봉사를 했다.
형편 어려운 분들을 도우려는 취지로 운영되는 만큼, 어지간하면 탓을 하지 않는 봉사자 분들도 그 사람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꼭 배식시간 거의 끝무렵에 나타나 급식소 마무리할 시간을 지체시킨 채 독상을 받고 앉았고, 저로 인한 남의 고충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데다가 요구사항은 많았으며, 챙길 거 다 챙기며 늑장을 부려 사람 속을 태우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길바닥 여기저기에서 차도를 점령하고도 당당한 손수레와 운전자와의 시비를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영락없이 주인공은 그 사람이었고, 아... 정말이지 그 사람은  어딜 가나  욕심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미운 짓 일색에 쌈박질을 겸비하여, 사람들로부터 욕과 비난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그 사람을 '아저씨'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은 이웃이, '저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말해주며 본인도 처음엔 남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
세상에... '식스센스'급 반전이다!
어느 모로 보나 여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구석은 조금도 없는데!
신체적 외양은 물론이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폐지가 실린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것으로 짐작되는 체력이 여자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 그 사람이 여자라고?


게다가, 그 사람이 마구 쌓아 놓은 폐지와 고물들로 동네 애물단지로 전락한 허름한 단층 건물에, '무지개'라는 상호로 생뚱맞게 들어앉은 네일숍이  그 사람이 딸에게 차려 준 가게라는 거였다.
남자 같은 엄마가 폐지를 주워 차려준 네일숍이라니ᆢ 뭔가 모순 같은 모정의 스토리를 배경 삼아, 여자이며 엄마인 그 사람의 인생을 혼자 괜히 더듬어 보았다.

그 사람의 삶에도 분명 말랑하고 촉촉했던 시절이 있었을 테지.
연유야 어찌 되었건,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고, 꿈도 꾸며 희망도 품었을 테지.
폐지를 줍고 사니 꿈도 희망도 사라졌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의 현실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그렸을 테니 하는 말이다.


본인은 성별도 구분하지 못할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내 몸 빌어 나온 자식만은 반짝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빛바랜 폐지와 고물로 환산한 가치가 하필이면 색깔도 화려한 블링블링 네일숍이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이 힘듦을 자초하고 싶겠나.
어느 누가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기름기 없는 몸으로 손수레와 한 덩어리가 되어 남이 버린 것들로 연명을 하고 싶겠나.
세상천지에 나를 도울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걸 인정한 순간,  쌈박질과 악다구니는 필수 아이템이 아니었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내게 있는 것은 다른 이에게도 있고 다른 이가 가진 것은 내게도 반드시 있는, 인간이라는 동일한 '종'이 가진 공통된 특징을 나 또한 가지고 있을 것이다.
분명 내게도 장착이 되어 있을 텐데, 내게는  절대로 내장되어 있지 않을 거라 확신했기에 눈 흘기고 손사래 쳤던, 살기 위해 휘두르는 그 사람의 무기들.
내가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았다면 과연 나는 여전히 평온하고 고상하게, 의연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상상해 보니 정신이 화딱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고상한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천박하다는 단어로 폄훼되는 그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인과관계를 찾을 수 있는가?
내게 없어서가 아니라, 똑같이 탑재되어 있으나 그 '무기'같은 표현방식들을 사용할 '전쟁' 같은 상황들이 내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것 그리고
나의 '천박한 기능'들을 스스로 확인할 '험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뿐임을 깨닫는 순간 심연 같은 감사가 뜨겁게 올라다.

'기적 같은 기적'만 자꾸 바라다보니 진짜 '기적'을 놓치며 살아간다.
어떠한 선발기준도 없이, 오로지 '랜덤'으로 지정받은  '삶의 기본 틀'에서 시작된 인생인 거라면,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기적일 수 있을까!


내가 딛고 선 이 자리, 연속되어 이어지는 '호흡'이 '기적'이다.
그리고 내가 거저 받은 축복을 기준 삼아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감히 판단하고 정죄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리고 해야 하는 건, 지금 이 삶을 허락한 신께 대한 뜨거운 '감사'뿐 - 거기서 부터 모든 것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의 정거장마다 반가운 기적소리가 울릴 것이다.


조만간 '무지개' 네일숍에 가서  감사한 마음으로 손가락을 내밀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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