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목적 없이 일부러 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녀오고 싶을 때가 있다. 흔히 '드라이브'한다고 표현하는 그것 말이다.
출근시간을 피해 한 열 시쯤 도로로 나서면 어느 길을 선택하든 웬만하면 막힘없이 차를 운전할 수 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강화도나 양평, 파주 같은 곳을 목적지 삼아 차를 달리면 한적한 도로 상황과 주변 경치들이 마음을 쉬게 해 준다.
서울 근교로 접어들면 편도 1차선 도로를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런 길일수록 양쪽으로 펼쳐지는 경치는 더 아름다워서 이왕이면 좀 천천히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꼭 그럴 때 얄궂게 내 뒤를 바싹 뒤쫓으며 내게 속도 내기를 종용하는 차가 반드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면 소심한 나는 갑자기 심장이 뛰면서 어떻게든 뒤차가 원하는 속도를 내줘야만 할 것 같아 쫓기는 심정이 된다.
그러다 보면 즐기고 싶었던 풍경들은 어느새 사이드미러 안에서 뒷걸음질치고 나는 괜히 혼자 기분이 잡치곤 한다.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길을 가고 있었다.
보광사를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숲길을 지나 마장 호수까지 이어지는 1차선 도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 하나 멋지지 않은 때가 없어서 내가 자주 가는 길이다.
CBS FM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들으며 구불구불 올라가는 오르막길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평화를 깨는 뒤차가 등장했다. 바싹 얼굴을 들이대며 쫓아오는 뒤차에 또 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나는 그 구불구불한 산길을 쫓기듯 올라갔다.
그렇게 산모퉁이를 휘감아 돌던 바로 그때!
내 앞으로 덤프트럭 한 대가 육중한 몸을 무겁게 이끌고 가까스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트럭에 맞춰 속도를 줄이고 룸미러로 나를 몰아세우던 뒤차를 바라보았다.
뒤차 운전자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내 마음속으로 계속
'어쩌라고~나도 달리고 싶어! 그런데 내 앞에 덤프트럭이 막았잖아? 그래서 나도 못 가는 거야~'
라는 말을 하고 있었고, 어느새 뛰던 심장도 편안해져 있었다.
앞의 덤프트럭이 오늘 내 드라이브의 구원자가 되어 산길을 도는 내내 원하는 속도로 원하는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속도를 늦추고 싶을 때가 있다. 달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지나치게 허락해 버렸던 것들을 돌이켜 보고 싶기도 하고, 지금까지 보다는 좀 천천히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그럴 수 없도록 나를 뒤쫓아오며 채근하는 것들에게, 앞차 때문이라고,
나는 달리고 싶은데 앞차가 가로막아서 못 가는 것이라고 합리화할 덤프트럭이 한 대 나타나 주었으면 싶다.
어느 날 내 인생 길이 꽉 막힌듯하고 답답함이 밀려올 때, 어쩌면 지금의 나날들 속에서 나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련다.
'앞차 때문에 못 가는 거야~~ 좀 있으면 뚫려~~
그러니 속도를 줄이고 창밖 구경이나 좀 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 은 <그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