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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담 Jun 11. 2020

'지나침'의 미학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음식점 하나를 알게 되었다. 가격 대비 양이 엄청 푸짐해서 가성비 갑이라고 소개된 그 식당은 마침 우리 집과 그리 멀지도 않아서 조만간 들러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블로그에 올려진 음식 사진들을 보니 양이 정말 많겠구나 생각은 들었다.

궁금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이 제공되길래 다녀온 사람들마다 음식의 양에 대해 언급을 하는 건지!


지인과 점심 식사할 일이 생겼고, 허물없는 사이라 미리 검증해보지 않은 그곳이지만 선뜻 제안할 수 있었다.

식당은 주택가 골목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장소로만 본다면 장사를 하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다.

감질나는 비도 추적거리며 오고 있는, 그렇다고 한창 점심 식사들을 하는 피크타임도 아닌 때에 그 식당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메뉴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잘 모를 때는 파는 사람이 추천하는 것을 선택하는 게 안전하므로 그 식당의 대표 메뉴라는 '스테이크 샐러드'와 '조개탕멘'을 주문했다. 힐끔힐끔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이 먹고 있는 거대한 음식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드디어 '조개탕멘' 이 먼저 나왔다.

우와! 이게 뭐야 하하하! 대중목욕탕에 비치된 바가지만 한 그릇 위로 마치 팥빙수 고명 쌓아 올리듯 조개들이 수북이 얹혀있고, 그 위에서 청경채 여러 잎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청경채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며 우리는 바지락조개를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했다.

호록 호록 호록... 아무리 먹어도 조개무지는 줄어들지를 않았다.

조금 더 파내려 가야 원유 터지듯 얼큰한 국물이 나올 텐데, 좀처럼 줄지 않는 조개들을 적군 무찌르듯 먹어치워 가며 저 깊숙이 있을 면을 향해 열심히 젓가락을 놀렸다.

드디어 면이 나왔다! 그러나 면이 반갑지 않도록 이미 우린 조개 토핑만으로 배가 차 버린듯했다. 참패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맨 앞줄 적군들에게 져버린 듯한 기분...


황당함을 수습할 새도 없이 '스테이크 샐러드 나왔습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건 또 뭐냐... 또 다른 바가지에 야채와 포도알, 베리들 그리고 망고 빙수처럼 치쌓아 올려진, 그라인더에 박박 갈아낸 노란 체다치즈 무더기!

이번엔 치즈 놈들과 사투를 벌였다.

이놈들을 거둬내야 그릇 밑바닥에 엎드린 스테이크와 발사믹 글레이즈를 만날 수 있다. 아... 난항이 예상된다...


그때 마침 혼자 오신, 우리와 거의 붙은 옆 테이블에서 소고기 마늘 볶음밥을 주문하신 나이 많은 아저씨의 음식이 나왔다. 볶음밥을 받아 든 그 아저씨의 흐업... 하는 작은 신음 소리를 나는 들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우린 같이 마구 웃었다.


그 식당은 아예 남은 음식은 포장해 가라고 한쪽에 살림을 차려놓았다. 양은 많지만 1인 1 주문 원칙인 그곳은 포장대가 매우 바빴다.

처음 식당에 들어와 메뉴만을 볼 땐 다음을 기약했었다. 다음번엔 와서 볶음밥과 꿔바로우를 먹어보자고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음식과의 치열한 전쟁 후 우린... 당분간 오고 싶진 않을 것 같아. 아... 질. 려. 버. 렸. 어...


그 식당이 잘 되는 이유는 뭘까! 음식 맛도 나쁘진 않았다. 그러나 흔하디 흔한 메뉴요 흔하디 흔한 맛으로 요새 같은 코로나 시대를 순항할 수는 없는 거다.

나는 그 이유를 '지나침의 미학'이라고 부르고 싶어 졌다!


우리 마음속 어딘가엔 '끝장'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갈 데까지 가 볼 용기가 없을 뿐, 갈 데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억눌러 절제하며 살아갈 뿐, 어느 방면으로는 도가 지나치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막장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욕을 욕을 해 대면서도 본방 사수를 하게 되는 이중적인 자세가 나오는 것 같다.

그 안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선택한 '도가 지나침'에 집중하며, 나를 대신 해 '도가 지나친' 방법으로 인생을 풀어 나가는 스토리보다보면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도 된다.


그 음식들은 도가 지나쳤다. 양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러나 우린 그 지나침을 기대했고, 지나침에 열광했고, 기어이 그 지나침에 질려버렸다. 만일 그 식당이 너무 많이 남는 음식물에 대한 자각이라도 해서 음식의 양을 적정량으로 바꾼다면, 사람들은 그 식당을 외면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원한 건 어쩌면 그 음식이 가진 '지나침'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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