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

요즘 가수 비의 '깡'이라는 노래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인기이다.
처음 이 노래의 영상을 보았을 때 희한한 춤과 가사가 어찌나 몸을 오글거리게 하는지...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 건가'라는 멘트가 떠올랐다.

나는 이 노래의 제목조차 생소하여 비가 오랜만에 신곡을 냈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 노래는 2017년에 발표되었다가 대단한 혹평을 받은 후 사라지고 말았던 곡이라 한다.
이 곡을 프로듀싱 한 팀에 가수 길 씨도 있어서, 가수 길이 만든 노래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묻혔던 이 노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건 유튜브에 비 춤을 따라 한 여고생의 짧은 영상이 기점이 되었다는데, 이젠 하루에 한번 '깡'노래를 듣는다는 뜻의 '1일 1깡'이라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로  이상한 전성기를 다시 누리고 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비의 노래도 춤도 아닌 비의 영상 아래 달린 끝도 없는 댓글들이다.
내가 비였다면 정말 너무나 상처받았을 종류의 댓글들을 읽고 공감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방식으로 이 노래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중 요새 핫한 것이 '비 시무 20조'라고 이름 붙은, 노래 부르며 비가 하지 말아야 할 20가지를 적어 놓은 것이다.
어떤 한 누리꾼이 비를 걱정한 나머지 만든 것이라는데 그 내용이 얼마나 현실적이면서  맞는 말만 적어 놓았는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공감 버튼을 누르게 만든다.

요즘의 이 상황을 재미있게 지켜보다가 한편 비의 입장이 좀 걱정되었다.
내가 비라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를 비웃는듯한 그 댓글들 퍼레이드에 상처를 엄청 받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라면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와 아무 상관없는 비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유재석이 진행하는 '놀면 뭐 하니' 프로그램에 거짓말처럼 비가 나왔다.
사실 '깡'에 대한 인기나 올라오는 글들이 긍정적인 것들은 아니기 때문에 비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에서 공식적으로 '깡'을 언급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유재석이 '비 시무 20조'에 대한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비에게 질문을 하는데, 보는 사람 마음이 더 아슬 거리고 뭐라고 대답을 하려나 기대가 되었다.
 한 조항 한 조항 들으며 비는 "아! 그래도 꼬만 춤은 포기 못하겠어요!"라든가 "1일 1깡은 부족해요. 최소한 '1일 3깡'으로 해주세요" "화려한 조명은 포기 못하겠으니 여러분이 이해해 주세요 "라는 기발한 대답을 함으로써 너무 큰 웃음을 끌어내었고  '놀면 뭐 하니'프로그램의  시청률을 급등시키는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비는 "깡'을 정말 '깡다구'있게 멋지게 승화시킨 것이다!

어떠한 사건 앞에 우리가 서게 되었을 때 그 사건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따라 그 사건은 비극이 되기도 희극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희극을 만들어 보려 한들 주변의 상황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때도 있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보면 비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사실 '비 시무 20조'의 20가지 조항을 만들려면 비의 춤과 노래, 그리고 비의 모든 것들을 눈여겨보지 않고는 절대 쓸 수 없는 내용들이다.
그 조항을 만든 사람은 정말 비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비의 "깡'을 '깡'있게 만들어 준 유재석과 이효리는 이 사건을 희극으로 만들어 준 좋은 상황의 주역이다.

비의 '깡'사태를 지켜보면서 세상이 많이 변해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한 나라를 넘어서 전 세계가 함께 할 수 있는 영상의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모를 래야 모를 수도 없는 '공유의 시대'에 또한 살아가게 되었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뭔가 나를 리셋하고 싶거나 판을 바꾸고 싶을 땐 멀리 이사라도 가거나 전화번호 바꾸는 것쯤으로도 어느 정도 새 판짜기가 가능하지만,
연예인들은 이름 하나만 검색해보면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인생사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도 그 정보들은 주홍 글씨처럼 그들을 쫓아다닌다.
내 생각에 연예인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자식들이 나의 과거사를 낱낱이 알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자신에 대해 폄하되거나 왜곡된 기사가 더 많은 잔인한 인터넷상의 과거를 숙명처럼 안고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비에게 '깡'은 지울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은 부분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자라나는 자식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페이지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딛고 또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냄으로써 '깡'은 비의 또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정말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라는 말이 맞구나 싶다. 점점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무엇을 놓고 성공과 실패를 확언할 수도 없다.
잘 된 일과 잘못된 일의 범주 또한 모호해진다.
 그 예측할 수 없음이 가끔은 헷갈리고 난감하지만 그러기에 살아볼 만한 것 같기도 하다.
'깡'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