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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담 Jun 19. 2020

한 끗 차이


나는 미용실에 자주 가는 사람은 아니다. 머리 스타일에 많은 비중을 두고 살지는 않아서 그저 머리 길이가 길어졌다 짧아졌다만 반복될 뿐이고, 미용실도 하나 정해지면 계속 이용하는 편이다.



작년에 정해놓고 다니던 미용실이 멀리 이사를 가서 다른 곳을 찾아야 하는 때가 있었다.

여자들에겐 미용실을 고르는 것도 참 난감한 일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음식점처럼 맛을 보고 결정할 수도 없는 일이니 대개 주위 사람에게 소개를 받게 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이 된다.



친정 동생과 통화 중에 미용실 이야기를 했더니 마침 자기가 소개받은 곳이 있어서 가려던 참인데 언니도 함께 가보자고 했다.

원장이 모 미용대학의 교수이고 미용대회 심사위원도 도맡아 하는 사람인데 강의 없는 요일만 혼자 운영하는 미용실이라 반드시 예약은 필수다.

그런데 미용실이 시설이나 서비스적인 면에서는 기대할 것이 없으니 참고하고,

장점이라면 시중에서 비싼 디지털 파마나 세팅 파마를 머리 길이에 상관없이 동일한 가격 십만 원에 할 수 있다고 했다.



엥? 십만 원?

장점이라고 할 만큼 저렴한 건 아닌데... 내가 미용실을 잘 안 다녀서 시세를 너무 모르는 건가..? 약간 마음의 갈등이 일었지만 같이 가겠다고 약속을 정했으니 찜찜한 마음은 숨기고 동생과 함께 미용실에 갔다.



음.......

난생처음 보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졌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와도 될 만큼 세월이 멈춰 있는 건 실내장식뿐만 아니라 벽면 여기저기 붙어있거나 매달려 있는 심사위원 이름표, 원장의 기사가 난 신문을 오려놓은 것들에 쓰여있는 날짜였다.

십 년도 더 지난, 아니 어떤 것은 원장 딸인가 싶어서 들여다보면 젊은 시절의 원장인 사진이 박힌 신문 스크랩을 보고 있으니 기가 막히면서도 원장의 대단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어서 재미도 있었다.

참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구나라고 생각될 만큼의 상장과 상패들도 구석구석에서 못지않은 세월을 자랑하고 있었다.



원장 또한 그 미용실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지만 전혀 미용실 의상 같지 않은,

'응답하라'의 정봉이 엄마쯤으로 보이는 예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고, 학생 가르치는 사람답게 말투에 힘이 있고 자기 색깔이 분명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묘한 것은 그 미용실의 하나뿐인 스태프였다.

최소한 여든 살.. 은 넘으셨을 것 같은 할머니 한 분이 가운도 입혀주시고 어깨에 수건도 둘러 주시고, 노래방 마이크 덮개 같은 일회용 비닐을 양쪽 귀에 씌워도 주셨는데,

이건 뭐 황송해서 입혀주신다고 가만히 입을 수도 씌워주신다고 가만히 귀를 들이밀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정성스레 타다 주신 커피는 벌떡 일어나 배꼽인사를 하며 두 손으로 받아 마셨고, 감사하다는 말을 머리 하는 내내 수도 없이 해야 했다.



간간이 원장이 그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그분은 원장의 어머니였고, 원장이 머리를 하는 동안 온갖 시중을 다 들고 계셨다.

이 기묘한 광경 속에서, 어떻게 생각하면 그분은 참 복 받은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연세까지 정정하셔서 딸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축복이라 여겨졌고, 손님 눈치 안 보고 나이 많은 어머니를 스태프로 둘 수 있는 원장의 대단한 자신감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파마를 다 마친 머리가 너무나 마음에 안 드는... 거다. 나이가 들수록 정수리 부분이 자꾸 가라앉아 그 부분을 살리고 싶었는데, 정수리는 착 가라앉고 머리카락 밑단은 부풀어서 내가 제일 피하고 싶던 삼각김밥 모양이 되어 버렸다...

내가 보기엔 같이 머리를 한 동생 머리도 범상치 않아 보였는데 원장은 학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본인이 만든 웨이브가 치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계속 강조했다. 게다가 본인이 제공하는 파마 가격이 본인 생각에는 말도 안 되게 낮게 형성된 금액임을 몇 번이고 말했다, 십만 원이나 받으면서......



소개받아 간 일들이 거의 그러하듯, 동생과 나는 마음에 쏙 드는듯한 리액션을 하며 공손히 각자 십만 원씩을 내고 미용실 문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원장 앞에서 하지 못한 말들을 시원하게 해대며, 겨우 서로에게 한 위로의 말은 "디지털 파마가 오래가잖아~ 내년에나 다시 할 거니까 비싸게 했다고 생각 말자. 그리고 다음엔 여기 오지 않으면 되지 뭐..."였다.




그때 그 머리가 어느새 수명이 다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미용실을 가야 한다고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여자들은 가끔 어느 날, 오늘 머리를 하지 않으면 누가 죽이기라도 할 듯한 날이 있다.

내겐 며칠 전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꼭 머리를 해야만 하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건 그 기묘한 미용실뿐 더 이상의 리스트가 떠오르지 않았다.



첫째 낳을 때의 아픔을 잊고 또 둘째 낳는 여자처럼 다시는 그곳에 안 가리라던 작년의 다짐을 잊고, 그날 당장 예약이 되냐고 원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바로 와도 된다는 답장을 받고. 차를 운전해서 한 시간은 가야 하는 거리에 있는 그 미용실로 홀린 듯 갔다.

'갑자기' 머리를 하고 싶은데, 나의 그  '갑자기'가 받아들여졌음이 내가 홀린 키포인트였던 것 같다.



작년과 하나도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였다. 작년보다 일 년 더 지난 신문 스크랩들과 심사위원 이름표, 상장들과 상패들 그리고 작년보다 한 살 더 드셨을 할머니 스태프까지.......

원장에게 조심스레 작년 머리의 상태와 현재 나의 원하는 바를 말했고 원장은 무슨 말인지 잘 알겠다고 대답을 한 후 파마는 시작되었다.



아... 결과는, 원장은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지 못했던 거다.

작년보다 더욱 형편없는 컬-왜냐면 컬이 아예 나오지를 않았다. 머리를 하고 온 나를 본 사람들마다 오늘 미용실 간다더니 안 갔었나 보다는 황당한 질문들을 해댔을 정도로......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볼 때마다 마음이 천만 번쯤 오락가락했다. 이렇게 보면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저렇게 보면 더 지저분 해진 것 같기도 해서 정말이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마음에 번뇌가 시작되었다.

내가 사만 원쯤만 주고 한 머리라면 그냥 두 눈도 질끈 감고 머리도 질끈 매고 또 몇 개월을 버텼을 거다. 하지만 십만 원을 또 공손히 내고 왔는데? 이건 아니지 않나?



십만 원어치의 불면의 밤을 보내고 오늘 아침 원장에게 문자를 했다.

'원장님 수십 번 고민 끝에 연락드립니다. 파마가 너무 안 나와서 사람들이 제가 머리 했는지 모를 정도예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행히 바로 답장이 왔다. 시간 되면 오늘 오시라고......

또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기묘한 미용실로 갔다.



원장은 여전히 학술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본인은 이렇게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컬을 선호한다고 했다.

그래서 손님이 원한다면 컬을 더 넣어 주겠으나 그런 컬은 미용대회에서라면 모를까 본인은 개인적으로 안 좋아하는 컬이고, 한 듯 안 한듯함을 좋아해서 '치밀한' 계산에 의해 그 컬이 나온 거라고...

그래서 본인은 지금의 내 머리가 잘 된 거라고 생각한다며 다시 파마를 말았다.



결과는 똑같았다. 원장은 원장 마음에 드는 머리를 또 만들어 놓았다.

여전히 컬은 없었고 머릿결은 또 한 번의 파마로 더욱 부스스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화가 화가 났다.

나는 원장 본인이 아닌데 왜 원장이 원하는 머리를 자꾸 해 주는 걸까!!!

원장 본인 말로도 예전엔 손님 의견보다 자기 생각에 대한 고집이 더 세었었다고, 지금은 많이 고쳐진 거라고는 했다.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어버린 이 머리를 어떻게 손질해서 살려내야 하는 것인지, 내가 그 고민을 왜 해야 하는 것인지 무럭무럭 화가 났다.



나만 이러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원장의 계산법에 의한 결과물에 다 만족하는 걸까?

한번 실패로 모자라 또 같은 실패를 반복한 나의 충동적인 선택에 대한 자책감이 짜증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순간에 모든 것에 대한 생각들이 변질되고 있었다!



주렁주렁 걸린 원장의 과거 프로필은 자만 또는 교만으로,

할머니 스태프는 원장의 본인 기술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 아닌 원장의 아집 또는 손님에 대한 배려 없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모든 것이 한 끗 차이이다.

자부심이 아집이 되는 것,

자만이 오만이 되는 것,

존경이 경시가 되는 것이 한 끗 차이이며 찰나이다.



원장에 대한 내 마음의 한 끗은 줏대 강한 원장의 탓이었을까 줏대 없는 나의 탓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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