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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담 Jun 20. 2020

나의 찌질함


며칠동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심지어 로그인이 싫어서 글도 못썼다.


처음엔 머릿속이 솜으로 가득 찬 것 같더니 점점 몸으로 확장되어, 오래전에  퀼트로 만들었던 테디베어 인형처럼 온몸이 솜으로 채워진 기분이었다.
몇몇 날은 심지어 물에 푹 젖기까지 한 솜 같아서 에스프레소를 몇 잔씩 마셔도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을 해 보려 해도, 그게 아니라는 건 내가 이미 알고 있다.


며칠간의 무기력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사실, 글쓰기 모임을 계기로 글을 매일 써 보긴 처음인 것 같다. 게다가 내가 쓴 글을 만장 가운데 펼쳐 보인 적은 정말 처음인 것 같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나에게서 과연 매일 쓸 수 있는 소재가 몇 개나 나올 수 있을까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이건 뭐 냉동실에 얼려 놓은 까만 봉다리들처럼 풀면 풀수록 별게 별게 다 나와주었다.

내 글을 읽으신 지인께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 보라며 등을 떠밀어 주셨고, 나는 못이기는척  작가 신청을 했었다.
제출 할 글을 쓰는 것보다 내 소개와 앞으로 글을 어떤 방향으로 쓸 것인가에 대해 쓰는 300자가 더 난감하고 어려웠다.
뭐 몇 번씩 떨어지기도 한다니까 떨어질 생각하고 한번 신청이나 해보자 싶어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그만 덜커덕! 그게 붙어 버린 거다.

몇 해 전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이 처음 생겼을 때, 브런치 잘 하는 식당 검색하다가 우연히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이곳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며 나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진짜 그렇게 되었다!

평생 가족들에게 자랑할 것 없던 나는 친정 동생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고, 동생에게 브런치 작가 된 기념으로 브런치까지 얻어먹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날부터 아~무 것도 쓰기가 싫은 거였다.

허락된 브런치에는 내가 이미 써 놓았던 글들을 올릴 뿐이었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을 랜덤으로 읽어 보았다. 전문성 있는 작가들이 참 많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들을 일관성 있게 써 놓아서 실용적이고 도움이 되는 글들도 많았다.

갑자기 내 브런치가, 꼬질한 가방 들고 지금 막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려 어디가 어딘지 몰라 두리번대는 시골 촌닭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지러웠다.
체한 거다...

평생 콩밭만 매던 칠갑산 아낙네처럼 집구석이 이 세상의 전부인 듯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
체할 만도 하다.

그렇지만 내가 브런치에 내 소개할 때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을 쓸 때 분명히 가닥을 잡지 않았었나?


난 열심히 살림하고 욕심껏 자식 키우다 나이 들어버린 아줌마라고...
이런 것까지도 글이 될 수 있구나 싶도록 일상의 사소함으로 글을 쓰겠다고...
그래서 내 글을 읽은 누군가도  글을 쓸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래놓고 빌딩숲 같은 글들 사이에서 코가 쑥 빠져 보따리나 끌어 안고 있는 꼴이라니ᆢ ㅉㅉ
모든게 그러하듯, 사실 남들은 관심도 없는데 혼자 북을 쳤다가 장구를 치다가 하는거였다.

조금 정신을 가다듬어 어제 내 마음을 살짝 털어놓는 글을  글쓰기 모임 블로그에 써 올렸었다.
공감해 주는 따뜻한 댓글들ᆢ 하트들ᆢ


바늘로 손끝을 따 피를 낸 듯 체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음을 털어 놓는다는 것은 맞창난 집으로 드나드는 시원한 바람처럼 마음속과 밖의 기운을 순환시켜 오감을 회복시켜  준다.


이제 곧 차디 찼던 손발이 따뜻해질거고 답답했던 가슴도 편안해 질거다.
그리고 곧 나는  꼬질한 내 가방보따리를 안고 씩씩하게 브런치 빌딩숲을 헤짚고 다닐 거다, 나만의 보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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