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형의 <어머니>
왜 그랬을까?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마음에 알 수 없는 탄성이 터졌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색감은 아니었다. 선명하지도 예쁜 지도 않았다. 유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걸려 있는 채색이 화려하고 형태가 선명한 그림과 분명 달랐다. 종교화나 르네상스시대의 그림에 익숙하다 보니, 그림이 불편하고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작가의 시점은 위쪽이었다. 하늘에서 새처럼 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등산을 하듯이 그림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산 중턱에 있는 집 두 채를 보자 숨이 턱 막혔다. 집으로 가는 길이 험난해 보여서일까. 집의 위치가 아슬아슬해서 그랬을까. 초라한 오두막집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까지 더해졌다면, 더 울적했을 것 같다. 한동안 노트북 화면에 그림을 띄워놓고 멍하니 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바라볼수록 산 능선으로 빠져들었다.
‘광부화가’ 황재형의 그림이다. 작품명이 왜 “어머니” 일까? 얼른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눈이 녹으면서 패인 주름 같은 산세와 거무튀튀한 흙이 어머니의 얼굴에 새겨진 거친 세월 같기도 하다. 산골짜기의 투박한 살결은 흙과 물감을 섞어 그렸다고 한다. 희끗희끗한 눈과 흙 때문일까. 그림을 보면서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모태신앙인인 나는 크리스마스 때면 분주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매일 성당에 나가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도 썼고, 원하는 선물도 받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단어의 의미도 몰랐을 만큼 어렸던 어느 해, 12월 24일 밤에 함박눈이 내렸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은 대단한 선물이라도 받은 것 마냥 그냥 좋았다. 일어나자마자 앞마당을 보니, 눈은 소복하게 쌓였다. 하얀 눈밭에 내딛는 첫 발자국의 설렘은 아직도 그대로 있다. 25일 성탄미사가 끝나고, 눈과 흙이 뒤섞인 눈사람을 만들며 종일 놀았다. 다음 날이 되자, 눈은 대부분 녹아내렸다. 눈은 녹으면서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흙과 만나 살얼음이 되어 거칠어졌다. 맨손으로 잡아도 부드럽기만 했던 눈의 촉감은 사라지고, 손끝이 아리도록 차갑고 날카로웠다. 마음이 아팠다. 재미있게 보냈던 크리스마스 다음날이어서인지 유난히 심심하고 쓸쓸했다. 며칠 후, 골목길에 설치된 교회의 크리스마스 전구가 치워졌다.
이렇게 나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끝이 났다. 그림에서 눈과 흙이 섞인 능선은 어릴 적 집 앞마당에 소복했던, 눈이 녹으면서 흙과 엉켜있던 모습이 보였다. 눈을 잃어버린 후 헛헛하게 바라보았던 마당의 화단이 그림과 교차했다.
이 기억 때문일까. 가슴 깊이 탄성이 터진 것은. 만약 <어머니>의 제목을 다시 붙여보라고 한다면, 나는 “화이트크리스마스 다음날”이라 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