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제 제조하기 1

상징적 상호작용론

by muzi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논평은?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불안정한 고용 시장이나 늘어나는 사교육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왕따, 기후변화, 가뭄, 총기 폭력, 노숙자, 이민, 또는 성희롱 문제에 대한 온라인 문서나 블로그 포스트를 정독하는가? 활동가나 정치인이 범죄, 이민, 빈곤, 경찰의 총기 사용, 테러리즘에 대해 말하는 것을 경청하는가?

어느 날이건 우리는 사회 문제에 대한 정보나 주장에 우연히 노출되기 마련이다. 살면서 그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그 문제들을 별개로 한 번에 하나씩 고려했을 것이다.

이 글은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평가하는 것에 관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접근에 대해 다룬다. 상징적 상호작용 이론은 꿀벌 서식지 파괴, 인터넷 중독, “크리스마스 전쟁(war on Christmas)”에서부터 아동 학대, 총기 폭력, 그리고 다른 사회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회 문제의 전 범위를 분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과학이다. 이 틀은 어떤 문제에 우리의 시간, 노력, 경제적 지원을 들여야 하는지 결정해야 할 때 매우 유용할 것이다.


사회 문제에 대한 객관론적 접근과 상호작용론적 접근

사회 문제란 무엇인가? 객관적 시각에서 보면 답은 분명하다. 사회 문제란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조건 또는 행동이다. 수많은 과일, 야채, 견과류의 번식에 결정적인 꽃가루받이로서 꿀벌의 멸종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다양성과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 인터넷 중독 또한 엄청난 규모의 위협을 함의한다. 많은 사람들의 "진짜" 세상을 항해하는 능력--면대면으로 커뮤니케이션하기, 친밀한 관계 유지하기, 학교나 직장 일에 집중하기--을 손상시킬 수 있다. 뉴스 보도에서는 인터넷 중독을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들이 끼칠 수 있는 심각한 위험도 포함한다. "크리스마스 전쟁"은 널리 신봉되는 종교적 전통을 훼손할 수 있다.


사회 문제의 객관주의적 정의는 매혹적이다. 우리의 상식적 기대에 딱 맞고 그렇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번 더 생각해 보라. "많은 수의 사람들"이라는 구절을 보자. 꿀벌이 없어지는 것은 사실상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 이용자의 1-10%는 인터넷에 중독되어 있다. "수백 수천만의" 미국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대한 공격에 상처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더 많은 사람들은 그런 피해가 있었는지 조차 전혀 모르고 있다.

하나의 이슈가 사회 문제라는 수준으로 올라서려면 정확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아야만 하는가. 백 명? 천 명? 만 명? 백만 명? 절대적 수치 말고 비율에 주목할 수도 있다. 인구의 1%가 영향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5%? 미국 인구 1%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3백만 명이 훌쩍 넘는 개인들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문제 상황이 우리가 우려할 만한 가치가 있을 만큼 "충분히 널리 퍼진" 것인지 결정하기가 반드시 쉬운 것은 아니다. "작고 사소한" 이슈와, 반대로 "크고 중대한" 이슈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은 주관적인 행동이다. 종종, 어떤 문제는 영향을 받는 사람이 적지만 상당한 관심과 자원을 끌어들인다. 테러리즘을 생각해 보자. 1970년과 2010년 사이에, 테러리스트 공격으로 미국인 500명보다 적은 사람들이 죽었다. 9/11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 공격을 제외한 숫자다.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임에도 테러리즘은 미국 사람들과 정책 입안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해(harm)"라는 관념도 언뜻 보기보다 복잡하다. 부정적 상황이나 행동은 사람들의 건강(육체적, 정신적), 재정, 관계, 기회 등등을 해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해가 사회 문제를 구성하는가? 그리고 그 해는 얼마나 커야 하는가? 누가 그 해를 측정하고, 애초 누가 무언가를 해롭다고 결정할 권리를 갖는가? 사람들은 자주 해로움의 정도는 물론 그것의 존재에 대해서 조차 서로 다르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마리화나나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것은 사회에 해롭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정확히 반대로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헬멧을 쓰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사회 문제라고 공언하는데, 사고가 났을 경우 승차자는 심각한 뇌 손상을 입게 되고, 그러면 그 의료 비용을 사회가 떠안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 중에서는, 반대로, 진짜 문제는 (헬멧 법과 같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부의 규제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물론, 소위 "크리스마스 전쟁"이라는 것은 오히려 포용을 향한 긍정적이고 평화적인 운동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객관주의자의 정의는 충분히 그럴듯해 보인다. 우리가 조금 깊게 파고들어 해석의 복잡함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렇다. 이러한 딜레마는 상호작용 이론가들에게 의미-만들기와 주관성을 강조하는 대안적 접근이 필요한 타당한 이유가 된다.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관점에서 사회 문제는 해석이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문제가 있다고 규정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사회 문제를 만들거나 구성한다는 뜻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상황이 인식되기라도 한다면 말이다. 문제라는 것은 그것의 존재 여부뿐만 아니라 원인, 결과, 해결책과 같은 형세 또한 그것을 보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상징적 상호작용 이론가들은 사회 문제를 객관적 상태가 아닌 해석이라고 정의한다. 어떤 곤란한 상황도 무시하거나 정상이라고 보거나 또는 다양한 이유나 방식으로 문제라고 여길 수 있다. 문제라는 "주장(claims)"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상호작용 이론가들은 이런 주장들을 모으고 비교하며 그 주장들의 기원과 결과를 연구한다. 주장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것을 특정한 종류의 문제(예: 질병, 죄악, 범죄 등)라고 묘사함으로써 이슈를 구성하거나 틀지운다.


"주목하기"라는 행동은 핵심적인 첫 단계이다. 많은 잠재적인 사회 문제들은 주목 끌기에 실패한다. 우리는 바쁘다. 우리의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수 천 개의 잠재적인 사회 문제들 중에서 우리는 관심의 초점을 어디에 둘 지 선택해야 한다. 개인, 뉴스, 그리고 심지어 정부도 절대 골치 아픈 모든 상황에 주목할 수 없다. 설사 우리에게 시간이 있다고 해도, 잠재하고 있는 사회 문제를 알아챌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우리에게 상황을 이해할 지적 능력이나 사회화가 부족할 수도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거나, 내가 속한 지역 사람들이 기후 변화라는 개념에 대해 콧방귀를 뀐다면, 그것의 징후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여성을 시중드는 사람, 심지어 남성의 소유물로 여기도록 사회화된 사람이라면 성차별적 언어, 성희롱, 가정 폭력, 또는 여성의 투표권에 대해 인지하거나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꿀벌 멸종(beepocalypse)" 또는 "크리스마스 전쟁"에 대해 들어보기 전에 우리는 길거리에 죽어 있는 꿀벌 또는 "Happy holidays!"라는 인사(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함)를 무언가 달갑지 않은 추세의 작은 신호는 아닌지 생각하기보다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주목을 끌었다면, 그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해석되어야 문제가 된다. 어떤 상황도 하나 이상의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문제제조자(claimsmaker)들은, 예를 들어, 길에서 술 취해 있는 것을 죄, 범죄, 또는 질병으로 보거나 완전히 정상이라 주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갈라지는 의미들은 갈라지는 해결 방안과 정책을 낳는다: 성경 공부, 기도, 벌금, 징역형, 약물 치료, 심리 치료, 또는 무관심. 문화에 따라 단일한 해석이 지배하여, 특정 집단이나 제도가 단독 관할권을 갖거나(예: 교회), 다수의 관점들과 처리 계획이 단체로 또는 경쟁적으로 섞일 수도 있다. 판사는 종교 기반의 상담과 치료에 등록하겠다고 약속한 범법자에 대한 처벌을 경감하고, 한 편에서 의료 전문가들은 보다 과학적인 예방과 치료 전략을 위해 로비한다.

완전한 합의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문제의 크기, 효과, 원인, 해결책은 물론 문제의 이름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이 다르다. 그럼에도, 주어진 상황이 심각하다고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 정책, 제도 안에서 점점 더 타당해진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주술이나 악령과 같은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제 그 어떤 활동가, 정치인, 기자, 교사, 또는 일반 시민도 한 때는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한 위협이었던 그런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반대로, 지금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아이를 때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해악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1960년대 이전에는 체벌이 그렇게 일관되게 인식되거나 널리 비난받지 않았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였다. 수 세기 동안, 어린 사람을 의도적으로 때리는 것은 훈육 및 교육적, 종교적 복종을 위해 필요하다는 신념에서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문제의 정당성의 정도는 그것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양이 아니라 질에 달려있다. 대통령이나 상원의원이 마리화나를 비난하는 것은 시시한 블로거의 비슷한 코멘트보다 더 큰 비중을 가진다. 그 사람들은 약물 소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법과 프로그램을 제정함으로써 그 행위의 의미를 법률화하거나 제도화하하기 더 좋은 위치에 있다. 유명세, 특권, 부와 같은 자원들은 어떤 문제제조자들을 다른 이들보다 더 영향력 있게 만들어 준다. 유명인, 종교 지도자, CEO, 성공한 작가, 기타 저명한 개인들은 경각심을 일으키고 정책을 변경하기 위해 로비를 할 수 있다. 예컨대, 유명인 제니 맥카시는 의학자들이 그 어떤 연관성도 강력히 부인함에도 불구하고 백신이 아이들에게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생각을 널리 퍼트렸다.


사회 문제는 문제제조자가 문제 상황이라고 틀지운 것을 사람들이 지지할 때 정당성을 얻는다. 정당성은 정도의 문제이고 특정 공동체 안에서만 존재한다. 완전한 합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강력하고 유명한 개인들은 문제를 정당화하는 것과 그 문제를 예방하거나 줄이기 위해 고안된 법률과 정책, 제도를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위 글은 Kathy Charmaz, Scott R. Harris, Leslie Irvine이 저술한 "The Social Self and Everyday Life: Understanding the World Through Symbolic Interactionism"이라는 책의 9장 Amplifying Social Problems 중 일부를 해석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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