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와 개인: 포디즘 사례

상징적 상호작용론

by muzi

1908년, 포드 자동차 회사의 창립자 헨리 포드는 모델 T를 출시했다. 850달러 가격표가 붙은 모델 T 덕분에 많은 미국인들이 처음으로 차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모델 T의 인기는 치솟았지만, 포드의 생산량은 그 인기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매우 숙련된 노동자들이 차 한 대 한 대를 모두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자동차 한 대는 장인정신의 결과였고, 노동자들은 하루에 오직 몇 대만 완성할 수 있었다. 부품들은 다른 회사 공장에서 생산되어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노동자들은 각 부품들을 현장에서 차에 끼워 맞추어야 했다. 이 일은 기계적 지식 이외에 고도의 금속 세공 기술을 요했고, 판단력과 의사결정 능력 또한 많이 필요했다.

모델 T에 대한 넘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포드는 표준화되고 상호호환 가능한 부품 사용과 움직이는 조립 라인을 포함하는 대량 생산기술을 도입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차 한 대 전체를 같이 만들지 않게 되었다. 대신에, 한 줄로 늘어선 차들이 움직여 가는 동안, 각자 몇 가지 정형화된 동작만 수행하면 되었다. 몇 년 안에 대량 생산은 차 한 대 만드는 시간을 대폭 줄여 주었고, 이는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다.


탈숙련화

이 새로운 생산 방식은 포드 노동력의 특징 또한 변화시켰다. 이 일은 더 이상 금속 세공이나 기계적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고, 단순화된 생산 공정으로 노동자들은 판단 같은 것을 할 필요도 없었다. 일은 탈숙련화되었다. 누구라도 며칠이면 배울 수 있는 그런 일이 되었다.

일의 탈숙련화는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나 오류를 줄이고 노동력을 조율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계획의 일부였다. 탈숙련화 하에서는, 포드에서건 다른 어느 공장에서건, 생산 과정은 경영진이 통제한다. 노동자들은 인지적 노력이 필요 없는 주어진 일만 하면 된다. 탈숙련화는 막스 베버가 얘기한 근대 사회의 특징인 지속적인 "합리화(rationalization)", 즉 효율성 증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사회학자 조지 리처가 주장한 "맥도널드화(McDonaldization)"로 진화했는데, 패스트푸드점의 원칙이 사회의 수많은 분야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리처에 따르면 맥도널드는 소비자, 노동자, 경영자들에게 효율성, 수치화, 예측가능성, 그리고 통제를 제공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빅맥 또는 스타벅스 커피를 주문하는 고객은 누가 그것을 만들건 간에 같은 제품을 받는다.

이윤의 측면에서 탈숙련화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는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탈숙련화는 일을 반복적이고 재미없게 만든다. 포드의 노동자들은 생산 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거의 모두 상실했고 자신들이 만든 제품으로부터 멀어지고 소외되었다. 그들은 산업용 기계의 톱니바퀴와 다를 바 없었다. 일의 따분함, 멈추지 않는 조립라인, 그리고 더 빨리 더 많은 차를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은 그 일을 위험한 것으로 만들었다. 사고발생률은 생산율과 함께 증가했다.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손가락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부상을 겨우 면한 사람들도 공장의 강한 열기와 나쁜 공기 상태로 고통받았다.


일당이 두 배에 주 5일만 근무!

그런데 포드는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훈련된 노동자들을 충분히 구할 수가 없었다. 당시 포드는 이민자들을 많이 고용했다. 이들 중 다수는 자기 나라에서 소작농이거나 농부였는데, 이들이 일하는 성향은 대량 생산과는 맞지 않았다. 그들은 일이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었고, 단조로움이나 압박감에 대한 불만을 잦은 결근이나 그만두어 버리는 것으로 표출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다 나가버렸고, 그때마다 조립 라인이 멈춰 섰다.

차들을 계속 줄 세워 놓으려면 포드는 믿을 수 있는 일꾼들이 필요했다. 1914년 포드는 직원들이 "대량 생산의 엄격한 요구 사항을 충족할 수 있도록 태도와 습관을 바꾸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임금을 인상하고 근무 시간과 근무 일수를 줄임으로써 미국 산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하루 9시간 일하고 2.34달러를 받던 노동자들은 8시간 일하고 5달러를 벌게 되었다. 그리고 주 5일만 일하면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6일을 일했다.

"일당 5달러"는 직원들이 모델 T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태도와 습관"을 갖추도록 독려하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더 오른 급여는 매출도 끌어올렸는데, 제조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네 달치 월급으로 모델 T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립 라인을 이용하여 제조 공정을 재편하고, 부품을 표준화하고, 노동력을 탈숙련화하는 기획에 노동자를 소비자로 변모시키는 급여 지급 방식이 더해져 "포디즘(Fordism)"이 되었다. 포드 자동차 회사의 성공--세상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회사가 되었다--덕택에 이 실천 방식은 제도화되었다. 자동차 제조뿐만 아니라 모든 유형의 대규모 산업 생산에 적용되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되었다. 전 세계의 제조업체들은 포드의 선례를 따랐다.


"Good Ford Men"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포드의 "일당 5달러"에도 당연히 함정이 있었다. 포드는 5달러의 절반--이전 일당에 해당하는 금액--은 모든 노동자에게 해당하는 급여라고 했다. 나머지 반은 "수익"인데 이것은 오직 "훌륭한 포드맨"만 공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훌륭한 포드맨"은 포디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들이었다. "훌륭한 포드맨"을 선택하고 만드는데 이 회사가 기울인 노력은 제도가 얼마나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지는지 보여준다.

수익 공유 계획에 적합한지 결정하기 위해, 포드 자동차 회사는 유감스럽게도 "사회학부(Sociological Department)"를 만들었다. 이 부서의 조사관들은 직원들의 집을 방문하여 그들이 "훌륭한 포드맨"의 특성인 "절약, 좋은 습관, 좋은 가정환경"을 실제 지니고 있는지 확인했다.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직원에게는 자신을 바꿀 수 있는 6개월의 시간을 주었다. 포드가 원하는 직원이 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직장을 잃었다. 이민자 직원들은 "미국화 캠페인"을 통해 포드 영어 학교에 등록하였고, 식사 예절, 개인 위생, 은행 이용법 등에 대한 수업을 받았다.

헨리 포드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기를 기대했다. ... 구조가 세분화되어 한 부분이 다른 부분에 매우 의존적이라,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방식을 가지도록 허용하는 것을 전혀 고려할 수 없었다." 포드 자동차 회사는 백인 미국 중산층을 준거 집단으로 이용했다. 포드는 자신의 근로자들이 미국 중산층의 규범과 가치를 내면화하도록 사회화시켰고 이는 생산 증대에 기여했다. 사회화는 "훌륭한 포드맨" 즉, 포디즘에 순응하는 노동자들을 재생산했다.


제도와 개인

포드의 방식, 특히 사회학부의 "도덕 경찰"은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가혹해 보이지만, 회사들은 사회화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회사는 직원 오리엔테이션, 온라인 훈련, 핸드북 등과 같은 “탑승(onboarding)"이라 부르는 관행을 이용한다. 신입 직원들이 조직에서 수용하는 행동 방식에 동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채용 관행은 사회성, 열정, 친절 같은 회사 이미지와 연관된 특질을 이미 가지고 있는 지원자들을 선호한다. 오리엔테이션 및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고객들과 상호작용하는 적절한 방식을 훈련시킨다. 매니저와 관리자는 이상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직원들의 능력에 대해 평가하고 칭찬하거나 벌을 준다. 요약하면, 사회화는 조직이 순조롭게 운영될 수 있게 한다. 더구나 조직적인 사회화는 업무상의 필요를 넘어서서 직원의 마음과 정신을 변화시킴으로써, 제도가 개인을 형성하고 제한하는 방식을 구성한다.

사회화는 그러나 절대적 순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우리는 단지 프로그램된 대로 행동하고 절대 변하지 않는 로봇처럼 살았을 것이다. 제도의 한계 안에서 개인들은 주체적 행위자로서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


제약에 대한 저항

엄격하게 통제된 환경에서도 노동자들은 직장의 정책이나 관행의 제약에 저항할 방법을 찾아낸다. 앞서 언급했듯, 일을 견뎌낼 수 없던 많은 포드 직원들은 그냥 관두었다. "일당 5달러"는 조건을 개선했지만, 1929년 주식 시장 붕괴와 이어진 대공황으로 차를 살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적어졌다. 매출이 떨어지자 포드는 임금을 삭감하고 2/3에 해당하는 직원을 해고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노동자들에게 생산량을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1932년 3월 7일, 해고된 사람들을 포함하여 300명의 전현직 노동자들이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요구 사항 목록을 들고 본사 공장으로 행진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경찰과 포드의 경비 병력은 무장하지 않은 군중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고, 네 명의 시위대가 사망하고 60명이 넘는 부상자가 나왔다. "굶주린 사람들의 행진(The Hunger March)"으로 시작된 것이 "포드 대학살(Ford Massacre)"이 되었다.

이 비극은 포드의 노사관계 정책에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노동자들 사이에 연대를 고취시켜, 자신들을 하나의 집단으로서 자각하게 만들었다. 몇 년 후, 자동차 노동자들은 마침내 노조를 결성하여 정당한 급여와 더 나은 근무 조건을 위해 집단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였다.




위 글은 Kathy Charmaz, Scott R. Harris, Leslie Irvine이 저술한 "The Social Self and Everyday Life: Understanding the World Through Symbolic Interactionism"이라는 책의 10장 Individuals and Institutions 중 일부를 해석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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