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적 상호작용론
앞의 글에서는 사회적 이슈의 해석적 측면을 강조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상황을 무시하거나,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라고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해석과 주장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적 맥락이 어떤 해석을 가능하게 하거나 못하게 막기도 한다.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이 문제제조자의 사회 문제 증폭을 도와주거나 좌절시킨다. 그들은 때때로 공포나 동정심, 분노를 유발하고자 할 것이고, 이는 문제가 제조되는 조건에 따라 성공하기도 한다.
우선, 지난 100년 동안 인간이 사회 문제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증가했는지 보라. 외딴섬에 사는 사람들이나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도 언제든 수많은 사회 문제를 주장하거나 들을 수 있다. 20세기에는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이 차례로 대중화되었다. 각 매체는 작게 시작했지만 빠르게 성장했다. 처음 시작은 라디오 방송국 몇 개였다. 이것이 도시마다 생겨나고, 이제 수백 개의 위성 채널과 수천 개의 팟캐스트가 되었다. 지상파 방송국 몇몇 개에서, 수백여 개의 케이블과 위성 채널로, 그리고 이제 거의 무한한 수의 온라인 스트리밍이 방송된다. 소수의 조악한 인터넷 뉴스 사이트와 블로그들은 수백만 개가 되었으며, 타자기와 고가의 인쇄기는 저렴한 개인 프린터, 인화, 디지털 문서가 되었다.
물론, 우리는 사회 문제에 대해 가족, 친구, 이웃, 지역 대표자 등 사람들과 직접 만나 얘기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면대면으로 언제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변한 것은 문제제조의 장소와 기술이 엄청나게 증대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당신은 불법 이민에 대해 성토하는 트윗 여러 개를 훑고, 설탕이 우리를 어떻게 죽이는지에 대한 의학 토크 쇼를 시청하고, 우편함에 들어있는 “이웃 감시” 범죄 관련 전단지를 보고, 엄마가 보낸 개인정보 도용에 관한 무시무시한 이메일을 받고,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문제를 다룬 뉴스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증거는 분명하다: 사회 문제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할 기회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따라서, 문제제조는 역사적 차원을 갖는다. 우리가 문제를 만들고 소비하는 역량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형식과 양에 달려있다. 현재, 그 역량은 어마어마하다. 동시에, 문제제조의 장소와 기술은 우리 행동을 제약할 수 있다. 이러한 제약은 어떤 때에는 생각을 짧게 조각조각 표현하도록 요구하거나 유도한다. 트위터의 280자 제한이 한 예다. 또 다른 예로, 정치인은 인상적인 짧은 어구로 말함으로써 신문과 뉴스 방송이 자신의 핵심 메시지를 잡아내고 반복하거나 다시 틀기 좋게 만든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장황한 논쟁을 인내할 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블로거들에게 눈에 띄는 “낚시성” 제목을 달고 내용은 비교적 간결하게 작성하기를 권장한다. 인상적인 시각적 증거가 있고 없고에 따라 문제제조자가 자신의 염려를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을 받거나 그렇지 못하게 된다. 뉴스 방송은 문제제조자의 이야기가 단순하고 심심한 언어적 주장일 때보다, 이야기에 설득력 있는 영상이나 시각 자료가 결합된 것을 더 좋아한다. 또한, 이슈를 최근의 재앙이나 스캔들과 연결할 수 있는 문제제조자들은 그렇지 않은 제조자보다 미디어에서 다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언론은 (연속극처럼) 몇 주 또는 몇 달에 걸쳐 새로운 이야기가 서서히 전개됨에 따라 기본 스토리가 많이 반복되는 “윤리적 드라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맥락은 문제제조에 영향을 미친다. 문화적 맥락은 만들어질 수 있는 주장의 수와 종류를 늘이거나 인도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 문제제조는 당대의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장소, 주장을 지지하는 제도와 직업, 공유된 문화적 신념과 전통, 그리고 청중이 잘 속는 정도에 영향을 받는다.
주장을 퍼트릴 수 있는 옵션의 수는 문제제조자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압력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문제제조자는 사회 문제 시장에서 경쟁해야만 한다. 수많은 시리얼과 음료 브랜드가 소비자의 관심과 자원을 위해 (광고 캠페인, 포장, 다른 노력 등을 통해) 경쟁하는 것처럼, 문제 상황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고 행동을 촉구하고자 하는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문제제조자들은 같은 시도를 하는 수많은 경쟁자들과 함께 자신의 관점에서 다른 사람들을 "판매"함으로써 세상을 개선하고 싶은 도덕적 기업가이다.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문제제조자들은 문제를 최대한 보이고 들리게 만들기 위해 과장, 전쟁 메타포, 무시무시한 숫자, 끔찍한 이야기 등의 전략들을 총동원하게 된다. 따라서 기술과 장소의 급격한 증대는 일련의 가능성과 제약 조건을 조성하면서 경쟁적인 아이디어 시장의 존속에 기여한다.
시장 비유를 더 정교화하면, 피해자 산업도 문제제조와 나란히 함께 태어난다. 피해자 산업은 사회 문제의 피해자를 만들고 규정하는 것을 촉진하는 기관(제도)과 직업들을 한 데 엮는다. 예를 들어, 법률, 의학, 교육 분야는 방대한 범위의 직책과 전문 분야를 제공하면서 성장해 왔다. 각 영역 내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희생자를 창조하고 옹호함으로써 혜택을 입을 수 있다. 활동가들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법률안 제정을 위해 로비하고, 변호사들은 그들을 대리하여 소송을 제기한다. 국회의원들은 (학교 폭력, 스토킹 등의) 피해자들을 지지함으로써 유권자들 사이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미국에서 공화당원들은 그들이 "범죄에 엄격함"을 보여줌으로써 이득을 얻을 수 있고, 민주당원들은 같은 이유에서 여성, 아동, 소수 커뮤니티에 대한 배려를 표출한다. 경찰 간부들은 불법 약물 이용자를 "국내 테러리스트"(즉, 마약 밀매자)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관심을 끌고 경찰의 활동을 지지하도록 동원한다. 동시에 그들은 자신의 이력과 경력을 쌓아간다.
의료와 교육은 유사하게 작동한다. 의사와 치료사들은 새로운 종류의 피해자(예, PTSD, 인터넷 중독)를 규정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의 직업적 위상을 높이고, 문제제조자의 경력을 발전시키며, 비즈니스를 창출한다. 학계 연구자들도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논문, 책, 연구비 지원 신청서 등을 씀으로써 비슷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정리하면, 문제를 찾아내는 기관과 직업의 존재는 문제제조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국가나 어떤 시대에는 피해자 산업이 작아서 문제제조의 기회가 제한될 수 있다. 잘 발달한 제도와 경력은 완전히 반대로 작용하여, 점점 더 많은 문제 상황을 찾아내고 비난하도록 조장한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해서 사회문제에 관한 이슈나 주장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과 전문가들은 저마다 문제를 찾아내고 비판할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러한 문제들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주장자들이 진지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글의 목적은 단지 사회적 맥락이 문제제조의 정도, 형태, 효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문화적 자원도 문제제조에 영향을 미치는 맥락 요소이다. 앞서 언급했듯, 문제제조자의 관점은 그전에 이루어진 사회화의 산물이다. 이것이 바로 어떤 문제 조건들은 무시되고, 다른 조건들은 이렇게가 아니라 저렇게 해석되는 중요한 이유이다. 이는 청중도 마찬가지다. 문제 상황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성공하려면, 문제제조자는 우세한 가치, 개념, 상징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마틴 루터 킹 박사가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사회 운동을 이끌면서 독립 선언문을 이용한 것은 유명하다. 선언문에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고 되어있다. 킹은 미국이 흑인에 대해서는 건국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모두가 알고 떠받드는 언어를 성공적으로 인용했다.
다른 유형의 문화적 자원은 동기의 용어이다. 사람들은 행동을 설명하는 로직의 종류들을 학습하고 인정한다. 문제가 되는 행동을 가능한 여러 가지의 원인들과 연결시킬 수 있다. 알코올 중독, 괴롭히기, 외도를 생각해 보자. 이 중 어떤 행동이라도 부모가 나쁜 모델이었기 때문임을 암시하면서 어린 시절 양육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인간에게는 중독과 폭력, 짝짓기에 대한 선천적인 성향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유전을 탓할 수 있다. 또, 또래 압력, 업무 스트레스, 넘쳐나는 유혹들이 나쁜 행동을 유도한다고 주장하면서 외부 요인들을 강조할 수 있다. 또는, "악마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처럼 주술이나 마법적 행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단순하게 자유 의지 또는 나쁜 판단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동기에 대한 이러한 어휘들은 문화적 맥락에 따라 수용되는 정도가 다르고 전혀 용납되지 않기도 한다. 어떤 이슈에 대해 주목하기 원하는 문제제조자는 청중에게 확신을 주는 주장의 종류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세속적이고 과학적 이해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주술적 설명에 콧방귀를 뀔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전적인 동기나 선천적인 특성이 알코올 중독이나 폭력, 외도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근대 이전의 시대에는 이해될 수 없었고, 오늘날 개인의 책임을 중시하는 곳에서는 변명이나 회피로 여겨질 수 있다.
문제제조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요인의 또 다른 요소는 청중이 잘 속는 정도이다. 문제제조자가 교육 수준이 낮고 잘 믿는, 상대적으로 순진한 청중에게 초점을 맞추면 저항이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제조자는 어떤 의문이나 반대 없이도 과장된 주장을 이어갈 수 있다. 냉소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어려운 청중이다. 냉소주의자들은 어떤 주장이건 정직성과 정확성을 의심한다. 그러나 그들은 비일관적인 경향이 있다. 정보가 없는, 즉 어느 것도 진실이 아닌, 세상에서 살기 어렵다. 따라서 냉소주의자는 자신의 선입견과 반대되는 주장은 무시하고 자신의 것과 동일한 이념적 신념을 주장하는 문제제조자에게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사회 문제에 대한 모든 주장의 장점과 단점을 따져보려고 한다. 그들은 구체성을 추구하고, 증거를 평가하며, 경쟁하는 관점들을 비교한다.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같은 이념을 공유하더라도 문제제조자에게 속는 것을 싫어한다. 비판적 청중은 냉소주의자 보다 문제제조자에게 더 많은 제약을 두는 경향이 있다. 눈치 챘겠지만 사실 사회문제제조에 관한 글 전체는 비판적 태도를 장려하는 것이 목적이다!
위 글은 Kathy Charmaz, Scott R. Harris, Leslie Irvine이 저술한 "The Social Self and Everyday Life: Understanding the World Through Symbolic Interactionism"이라는 책의 9장 Amplifying Social Problems 중 일부를 해석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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