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를 인정할 용기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1)를 읽고

by 다라미

룰루 밀러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처음 마주친 장소는 대형 서점이었다. 이 도서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되어 있는 모습에 내 눈을 의심했다.


‘과학책이 잘 나가고 있다니!’


우리나라에서 과학 도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일은 드물다. 과학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선전이 너무도 반갑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도 잠시. 이 책을 읽으며 점차 혼란에 빠졌다. 서점에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분명히 과학책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혼돈’을 주제로 삼은 에세이에 가까웠다. 책은 과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와 함께 저자의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 책이 생물학에서 종을 구별하는 ‘분기학 분야’를 다룬다는 점이었다.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삶의 궁지에 몰린 저자가 우연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추적하며 시작된다. 조던은 스승인 루이 아가시를 따라 과학자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는 스승과는 달리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였고, 미 대륙을 넘어 새로운 어류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탐험한다. 이후 조던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이 되었고, 대학의 지원과 많은 제자들의 도움을 통해 2500마리에 달하는 어류를 발견했다.






※ 아래 글에는 책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밀러는 성공한 과학자의 삶을 살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어두운 이면도 낱낱이 파헤친다. 조던은 대학 학장직을 내려놓은 후 우생학을 열렬히 지지하다 생을 마감했다. 그와 같은 우생학자들의 잘못된 믿음과 주장 때문에 무고한 미국인들이 불임 수술을 강요받거나 병원에 감금되는 비극을 겪었다.


이러한 조던의 행적에 저자는 분노와 실망감을 느끼고, 여러 역사적 사실을 참고해 조던이 스탠퍼드의 설립자인 제인 스탠퍼드를 살해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당시 기록과 조던의 정황을 볼 때 이러한 추리는 개연성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은 보다 조심스럽게 언급했어야 한다. 책에 드러난 저자의 의견은 자칫 읽는 이로 하여금 조던이 제인을 독살했다고 단정 짓기 쉽게 쓰여있기 때문이다.


한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평생을 자연의 혼돈을 바로잡아 질서를 부여하는 분류학자로 살았다면, 룰루 밀러의 아버지 역시 과학자였지만 혼돈을 숭배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일곱 살이던 저자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녀의 아버지는 가혹한 일침을 날렸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중략)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p.54)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p.55)

어린 저자는 존경하는 아버지가 보인 삶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보며 혼란에 빠진다. 그녀는 긴 방황 끝에 고등학생 시절 자살 시도를 했다는 사실과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이 책을 통해 담담하게 고백하기에 이른다.


룰루 밀러는 혼돈 투성이인 자신의 삶을 극복하기 위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를 쫓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영웅이 아닌 악당에 가까운 한 과학자의 실체와 혼돈 그 자체였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는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p.236)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은 이 책이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는 학계 밖으로 퍼져나가지 못했다. 사람들의 직관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 센 적수는 바로 직관이다. 그는 사람들이 결코 편안함을 진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p.244)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어류는 직관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았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혼돈 속에도 희망이 있고 모든 일은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지극히 간단하지만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기존에 우리가 정립해온 과학적 사실은 물론 사회가 제시해온 모든 기준과 척도들에 대해 의심을 품어볼 것을 권유한다.


이러한 그녀의 깨달음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무지의 지(無知의 知)’와도 닮았다. 이는 스스로가 세상을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이를 인정하는 용기이자 세상을 탐구할 동력이며, 새로운 발견의 기회이기도 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금 고민에 빠졌다. 마치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이 책은 철학책인가 에세이인가 과학 도서인가. 책의 범주는 분류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나는 철학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또 나름의 기준을 세워 분류를 시도하는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났다. 철학, 과학, 그리고 에세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의 삶은 혼돈 속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1)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지인 옮김, 곰출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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