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1)를 보고
배우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을 남겼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마치 대배우의 명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외견으로 보면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성공한 연극배우 겸 연출가다. 하지만 그의 개인사를 들여다보면 아버지와 남편 역할에서는 실패한 남자다.
이 영화는 179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강렬한 액션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전경도 없다. 오히려 씁쓸한 배신과 자책감, 가족을 잃은 고통스러운 상실에 대한 서사로 가득하다. 그러나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이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를 극의 표면에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대신 한 남자의 삶을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와 아내 오토가 지어낸 이야기에 중첩시켜 보여줌으로써 그의 상처받은 내면을 간접적으로 비춘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원제는 영어 ‘Drive my car’를 일본 가타카나로 옮겨 쓴 <ドライ ブ・マイ・カー>다. 이는 운전하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차를 운전하는 주체가 자신이라면 제목은 ‘내가 나의 차를 운전한다’가 되고, 내 차를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경우에는 ‘네가 내 차를 운전한다’라는 뜻이 된다.
사람들이 차를 운전하는 이유는 대체로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함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도 각자 나름의 방향을 정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삶을 움직이는 주체는 자신 스스로가 될 수도 있지만, 타인의 차를 대신 운전해 주거나 다른 사람의 차에 실려가듯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 아래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미사키와 가후쿠는 늘 자신이 운전하는 차를 탔지만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아직도 두 사람 모두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미사키는 애증의 대상이던 어머니를 눈사태로 잃고 홋카이도를 떠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늘 고향에 묶여있다. 자신이 일하는 히로시마 소각장에서도 미사키는 자연스레 홋카이도의 눈을 떠올린다.
미사키는 그녀의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가후쿠를 태우고 히로시마에서 홋카이도로 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죄책감과 외로움,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털어놓는다. 밤새 달려 도착한 미사키의 고향 집 앞에서, 항상 무표정하던 가후쿠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그는 아내와 함께 딸을 잃었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외면했던,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깨닫는다.
이에 미사키는 오히려 담담한 어투로 어른인 그를 달랜다. 마치 죽은 가후쿠의 딸이 살아 돌아와 가후쿠를 위로하는 것처럼. 가후쿠와 미사키는 서로를 보듬으며 위로한다. “우리는 틀 림없이 괜찮을 거야.” 이 가후쿠의 대사는 자연스레 연극 <바냐 아저씨>의 소냐와 바냐가 함께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반복된다. 이후 가후쿠와 미사키, 그리고 관객들은 고통 속에서도 삶은 이어진다는 것을, 살아남은 사람은 과거의 상처를 봉합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가후쿠의 빨간 차를 조망한다. 이 스웨덴 출신의 낡은 차량은 가후쿠에게는 단순한 이동수단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에게 빨간 차는 오랜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공간이자, 죽은 아내의 목소리로 녹음된 <바냐 아저씨>의 대사가 울리는 무대이며, 가후쿠의 연기를 듣는 관객이기도 하다. 하지만 히로시마에 도착한 후로 가후쿠의 삶이 바뀌듯, 빨간 사브는 가 후쿠가 미사키와 함께 각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치유의 매개체로 변화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전하고자 한 예술을 통한 치유, 상처받은 사람들이 고통을 함께 극복하는 스토리는 분명 우리가 익히 보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토록 전형적인 주제를 두고 여러 사건과 인물들을 영리하게 배치한 신선한 구조로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그리고 모순투성이인 우리의 삶을 포용할 수 있게 돕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일본을 떠나 한국에서 장을 보는 미사키의 동선을 따라간다. 그녀가 운전하는 빨간 사브의 차창 너머로는 히로시마의 구불구불한 바닷길이 아닌, 일직선의 넓은 도로가 놓여있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DRIVE MY CAR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움직이고 있나요?
1)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드라이브 마이 카(ドライブ・マイ・カー),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