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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뚠뚠 Aug 23. 2021

아빠의 취미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서른세 번째 이야기

예전부터 딱히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취미라는 게 뭐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을 때 하고 싶은 것쯤으로 기준을 낮게 잡아 본다고 해도 마땅히 없다. 코가 삐뚤어지게 잠자기, 스마트폰 보며 시간 때우기 뭐 이런 걸 취미라고 하기에도 창피하고. 영화감상, 음악 감상, 독서 이런 것들은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국민 대다수가 좋아하는 것들이라 너무 성의 없는 취미인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술 먹기, 담배 피우기(참고로 금연 15년 차)를 취미라고 할 수도 없고!     


도대체 나의 취미는 무엇일까?     


내일모레 50을 바라보는 그러니까 반백살을 살고 난 지금까지도 취미 하나 없다니! 사실 취미가 없는 게 문제라기보다 취미가 없는 게 문제라고 느끼는 게 문제라고나 할까? 문득문득 이렇게 회사 집 회사 집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나한텐 남는 건 뭔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느낌?     


취미를 갖긴 해야 하는데 낚시는 어쩐지 잔인하고, 등산이 좋은 건 알겠는데 너무 힘들기도 하고 어쩐지 좀 더 나이 들어서 해도 될 것 같고, 자전거도 타보긴 했는데 어릴 때와 달리 너무 못 타는 내가 싫고 게다가 위험하기까지 하고 들어 보니 돈도 많이 든다고 하고, 캠핑은 그나마 취향에 맞았는데 딸아이가 허락을 하지 않고, 최근 유행이라는 서핑은 몇 번 해보긴 했는데 물 공포증이 너무 심해 힘들 것 같고.

     

아니면 실내에서 뭐 할 수 있는 게 없나? PC게임은 워낙에 미와 소질이 없고, 실내 클라이밍? 맞다 나 고소공포증도 있지, 필라테스? 어쩐지 여자들이 주로 하는 운동 같아 꺼려지고, 배구? 예전부터 좋아하긴 하는데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고.. 십자수? 컬러링북? 퍼즐? 아유 벌써부터 머리랑 눈이 아프다.    

 

사실 취미를 갖기 위해 노력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회사에 야구 동호회가 생겼다. 예전부터 야구를 좋아하기도 했고 소싯적에 ‘나도 한번 야구선수나 해볼까’ 란 허황된 꿈도 꿔봤기에 동호회에 가입해 주말마다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살짝 설레기도 했다. 더구나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혼자 껴서 부대끼는 걸 잘 못하는 편인데 주변에 온통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직장동료들이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등번호를 정하고 유니폼 스타일(바지통을 넓고 길게 할지 아니면 소위 농군 스타일로 양말을 종아리까지 올려 신을지 등)을 정하고 글러브를 사고 스파이크 달린 야구화도 사고.. 야구장에 나갈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도 은근히 뭔가 들뜨는 기분이었다. 끼리끼리 모여 낄낄 대며 연습하는 과정도 즐거웠던 것 같다.     


드디어 첫 경기 당일. 경기도 장흥 어딘가에 있는 구장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몇 번 타자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운동신경 탓에 6~8번쯤을 맡았던 것 같다. 수비 위치도 역시 가장 공이 덜 와 부담스럽지 않다는 우익수를 맡게 되었다. 아무리 사회인 야구지만 이것도 실전이라고 경기가 시작되니 꽤 긴장이 되었다. 게다가 첫 수비부터 공이 잘 안 온다는 누군가의 거짓 정보와 달리 장타성 플라이볼이 내 앞으로 날아오는 게 아닌가!‘저게 왜 내 쪽으로 와??’ 하는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자세를 가다듬고 멋지게 캐치 성공!


저 멀리 동료들의 환호. 내가 그 어렵다는 외야 플라이볼을 잡아내다니! 그것도 위치 선정까지 기가 막히게 해서 말이야!!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위치를 잘 선정한 게 아니고 공이 내 위치로 날아온 거였다.  아무튼 그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야구의 매력인 거구나! 나 혹시 야구의 소질이 있는 건가? 이 사실을 30년만 일찍 알았어도... 게다가 한동안 무슨 운이었는지는 몰라도 4할대의 타율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나의 취미는 야구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후. 결과적으로 난 야구를 그만두게 되었다. 왜냐고? 첫 번째 이유는 우선 부상 때문이었다. 부상이라고 하면 마치 메이저리거가 부상을 입고 시즌 아웃된다 뭐 그런 거창한 이야기 같지만 생각보다 야구는 꽤 위험한 종목이었다. 굴러오는 땅볼을 잡지 못해 정강이에라도 맞으면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아픈 데다가 며칠 동안 시퍼렇게 멍이 들 지경이었다. 사실 이름이 공이라 그렇지 그건 날아다니는 돌덩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는 내 저질 체력이었다. 팀에서 야구 좀 잘해보겠다고 선출(선수 출신) 코치를 모셔서 레슨을 한 적이 있는데, 땡볕에 펑고(수비 연습을 위해 쳐주는 타구) 연습을 하다가 거의 기절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홀로 벤치에 누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 나랑 야구는 별로 안 맞는 거 같다.' 게다가 신생아 딸내미를 두고 주말 아침마다 기어나가느라 아내에게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깔끔하게 야구를 포기했다.    

 

두 번째 취미 후보는 골프였다. 나이가 마흔 정도 되었을 때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으니 골프를 배워야지’ 그런 마음은 늘 먹고 있었다. 주변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겸해 골프장에 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운동도 하고 정보도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은근히 폼이 나 보였다. ‘사회생활하려면 골프는 필수‘ 란 말도 엄청 들었던 것 같다. 하기야 예전에는 사회생활하려면 당구가 필수란 얘기를 하곤 했는데 지나고 보니 꼭 그렇지도 않긴 했지만.     


어쨌거나 딱히 계기가 없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장인어른께서 쓰시던 골프채를 풀세트로 주신 거였다. 한번 쳐보라며. 원래 골프는 고가의 장비가 높은 진입장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벽이 사라진 것이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네 스포츠센터에 가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언뜻 생각해보면 골프는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운동이었다. 처음 한참 동안은 7번 아이언을 들고 똑딱이라고 불리는 연습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지루함과 은근히 머리를 써야 하는 복잡함 그리고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멘털이 아주 중요한 스포츠였던 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난 골프에 빠졌다. 고등학교 때 당구에 빠진 친구들이 학교에서 칠판을 봐도 집에서 자려고 누워 천장을 봐도 온통 당구 다이(어쩐지 이렇게 불러야 맛이 산다)로 보인다고 했는데 불과 몇 달 만에 내 경우가 그랬다. 좀 넓은 공터만 나가도 ‘여기서 저기까지가 몇 미터 되려나’ 하며 ‘몇 번 아이언이 좋을까’ 생각하게 됐고 지하철을 기다리면서도 괜히 허리를 돌리면서 스윙 자세를 교정하곤 했다. 나도 안다 그러는 아저씨들 되게 비호감으로 보이는 거. 여하튼 그때는 급기야 뭐든 절대 혼자 안 하는 성격을 무릅쓰고 홀로 스크린골프장을 찾아 연습을 하기도 했다.


골프가 뭐 그리 좋았을까. 우선 해도 해도 실력이 눈에 띄게 늘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사실 이건 고수 분들이 많이 하는 얘기인데 골프란 게 1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계속 어렵다는 거였다. 정복할 수 없는 산과 같은? 그 점이 참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것보다 더 솔직한 이유는 골프장에 가는 행위 자체가 참 좋았다. 보통 골프는 주말 새벽에 하기 마련인데 어느 골프장을 가나 아침 공기는 상쾌하기만 했다. 탁 트인 그린을 보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도 같았다. 심지어 모든 레포츠가 그렇긴 하겠지만 끝나고 나서 지인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었다. 그맘때쯤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업무 미팅을 하다가도 골프 얘기가 나와 한참을 수다 떨 정도였다.     


이제부터 나의 취미는 골프다!!     


하지만 1년이 조금 넘게 지났을 때쯤. 난 골프를 그만두게 되었다. 뜻밖의 복병은 육아였다. 당시 딸아이가 2~3살쯤이라 한창 손이 많이 갈 시기였는데 골프를 치는 날에는 육아에 전혀 참여할 수가 없었다. 보통 주말에 골프를 치게 되는데 아무리 새벽에 나간다고 해도 차를 타고 가서 18홀을 돌고 씻고 밥 먹고 다시 교통체증을 뚫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날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독박 육아를 하는 아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만을 가질 만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시간이 늦을 까 봐 끝나자마자 밥도 먹지 않고 혼자 먼저 오게 되고 심지어 샤워도 안 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근데 몇 번 그러고 나니 취미라는 게 즐겁자고 하는 건데 늦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세상 가장 소중한 딸내미의 육아를 내팽개칠 수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골프란 건 은근히 경제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운동이었다. 한번 칠 때마다 최소 20~30만 원씩은 깨지니 그것도 영 부담스러웠다. 경제적인 부담을 그나마 덜려면 평일에 치면 되긴 하는데 회사원 입장에서는 언감생심. 골프를 하기에는 아직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깔끔하게 골프도 포기했다.

    

그 뒤로 몇 년이 흘렀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아직도 마땅한 취미는 없다. 아니 취미가 있긴 하다. 요즘 내 취미는 바로 육아다. 딸아이와 놀기를 취미로 삼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아빠로서 딸과 잘 놀아줘야 되는 건 당연한 임무이고 그렇다면 이왕 노는 거 아빠도 즐겁게 놀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즐거워야 아이도 즐거운 건 당연한 사실. 그래서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재밌고 다양하게 놀 수 있을까 더 고민을 한 것 같다. 딸아이와 놀면서 나도 즐겁고 아이가 재밌어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기도 하고. 이쯤 되면 취미라 불러도 무방한 거 아닌가?     


이제 어디를 가든 당당하게 말해야겠다.


제 취미는 아이와 놀기입니다.
그리고 특기는 아이와 '재밌게' 놀기입니다.      


딸!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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