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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뚠뚠 Aug 24. 2021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어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서른네 번째 이야기

도대체 왜 그렇게 수학이 싫었던 걸까? 싫어서 못하는 건지 못해서 싫은 건지... 아님 이도 저도 아닌 둘 다인 건지. 국민학교 시절 산수서부터 고등학교 시절 수학까지 진짜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싫었었다. 왜 고등학교까지만 싫었느냐고? 그야 당연히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수학의 '수'자도 쳐다보지 않았으니까 싫고 말고 가 없던 거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에피소드 하나. 고3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한동안 30점대(물론 100점 만점)를 맴도는 나의 수학 성적을 보시더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집에서 수학 과외라도 받는 게 어떠냐는 말씀을 하셨다. 부모님께 한번 말씀드려보라며. 선생님이 학원도 아닌 과외를 권하다니... 그만큼 내 수학 성적이 처참했단 얘기다. 물론 다른 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당연히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이실직고했고 당시 약대를 다니던, 누나 친구의 동생인 형을 소개받아 약 3개월 동안 수학 과외를 받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본 수능 시험의 결과는... 대성공! 얼마나 대성공이었냐 하면 무려 '반타작'을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내가 수학시험을 절반이나 맞히다니! 그전까지의 성적을 미루어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인 거였다. 물론 그 뒤로는 앞서 말했다시피 수학 근처에도 가지 않았기에 수학과의 이별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걸 박수 칠 때 떠났다고 해야 하나?


지금까지 장황하게 수학 얘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지금부터 더욱 장황하게 내 자랑을 하기 위함이다. 그 자랑은 바로 수학 성적에 비해 국어나 영어 성적은 좋았다는 거다. 특히 국어는 잘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 과목이었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등학교 때 무슨 적성 테스트인가를 했는데 어휘력이 100%가 나와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다른 능력에 비해 어휘력이 유달리 높았던 거다.     


어휘력의 바탕은 단어 쪼개기 놀이    

 

나의 어휘 실력의 바탕은 무엇이었을까? 곰곰 생각해본 적이 있는 데 비결은 다름 아닌 단어를 쪼개는 버릇이 아닐까 싶다. 단어를 쪼개는 버릇이 뭐냐고? 우리말 단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어 단어를 말 그대로 한 글자씩 쪼개서 곱씹어보는 거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소를 뜻하는 우(牛) 자가 있다고 하면 우시장(牛市場)은 소를 파는 시장, 우골(牛骨)은 소의 뼈, 우둔(牛臀)살은 소의 엉덩이살이란 뜻이겠구나. 우설(牛舌)은 소의 혓바닥, 우낭(牛囊)은 소의 주머니? 그럼...? 아~ 그거구나. 그거치고 이름이 되게 우아하네. 여기서 낭(囊) 자가 주머니를 뜻하니까 배낭(背囊)은 등 배(背) 자에 주머니 낭(囊)! 등에 짊어지는 주머니란 뜻이구나. 배낭이 그런 뜻이었어??

   

사자성어로까지 넘어가 볼 수도 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주머니 속에 송곳이란 뜻일 테고,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을 들었는데 우보(牛步)는 소의 걸음이니 느릿느릿 걷는 거 겠고, 그런 걸음으로 천리를 간단 뜻이니 천천히 서두르지 않는 걸 뜻하겠네.  잠깐! 그럼 경보(競步)는 걷기 경주고, 활보(闊步)는 대놓고 막 걸어 다니는 거? 아~ 그래서 만보(萬步)가 만 걸음이구나. 큰일이네 오늘 만보 채우려면 30분은 더 걸어야겠네...     


‘이런 연습을 통해서 어휘력을 늘려야지!’라는 생각으로, 그러니까 이걸 공부라고 생각해서 한 건 절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그냥 혼자 멍 때릴 때도 이런 놀이 아닌 놀이를 자주 했던 것 같다. 덕분에 국어뿐만 아니라 한자 실력 향상에도 큰 도움을 받은 건 물론이고.   


공부인 듯 공부 아닌 놀이 같은 습관


아빠가 되고 나서도 나의 이러한 습관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딸아이에게도 이런 습관을 자연스럽게 전해주려고 하는 편이다. 가끔 어린이 신문을 같이 읽다가 특정 단어가 나오면 앞서 와 같은 방법을 적용시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역시 예를 들어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치면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국(國) 자는 나라를 뜻해. 그럼 생각해보자 국기(國旗)는 뭘까? 힌트는 우리가 얼마 전에도 달았던 태극기(太極旗)야. 그래 맞아! 나라의 깃발을 뜻해. 그럼 국가(國歌)는? 나라의 노래! 여기서 가(歌)는 가요(歌謠), 가수(歌手)할 때 가(歌) 자야. 노래를 뜻해. 그럼 국화(國花)는? 나라의 꽃. 우리나라의 꽃은 무궁화(無窮花)야. 여기도 꽃 화(花) 자가 들어가지? 근데 여기서 말하는 국화는 하얀색 꽃 국화 하고는 다른 거야. 그건 나중에 설명해줄게. 이런 식으로 국민(國民) 국사(國史) 국왕(國王) 국내(國內) 국외(國外)등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나선 이번엔 슬쩍 국(國)을 뒤로도 보내보기도 한다.     

자 그럼 전국(全國)이라는 말은 뭘까? 맞아 나라 전체라는 뜻이야. 또 뭐가 있더라... 맞다. 우리 재작년에 중국(中國) 가봤지? 중(中) 자는 가운데 중(中) 자거든. 중국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세계의 중심(中心)이라고 생각했나 보네. 무슨 자신감이지?? 그리고 미국(美國)할 때 미(美) 자는 아름다울 미(美) 자거든?  미인(美人)할 때 미(美)이기도 해. 옛날 사람들은 미국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나 봐. 근데 신기한 게 뭐냐면 북한하고 일본에서는 미국의 한자를 아름다울 미(美)가 아니라 쌀 미(米) 자를 써서 미국(米國)으로 쓴대. 재밌다. 그치?     


이런 식으로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단어를 확장해나가는 거다. 여기서 주의할 점! 아이가 조금이라도 지루해한다 싶으면 바로 멈춰야 한다는 것. 사실 여기에 이렇게 길게 풀어써서 그렇지 우리 집의 경우도 실생활에서는 두세 개만 설명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의 집중력이 길지 않다는 걸 감안해 흥미를 잃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몇 년 동안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하는 건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나서부터 지금까지 아이는 종종 국어 공부가 재밌다는 말을 한다. 물론 아이가 나중에 국어 점수를 100점을 받게 하기 위해서만 이러한 노력을 하는 건 아니다. 성적은 나빠도 좋으니 이러한 단어들을 많이 익히고 배워서 자신의 생각을 아낌없이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주기를 바란다. 당연히 상대방의 표현도 잘 알아들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딸아이의 인생이 조금은 더 반짝거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최근 수학책만 들여다보면 한숨을 팍팍 내쉬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 걱정이 들기도 한다. 아빠를 닮아 수학 머리가 없으면 어쩌나 하고. 엄마 닮았다는 핑계를 대려고 해도 아내는 수학을 좋아하고 잘했다고 주장하니 그러지도 못하고.     


하기야 수학 그거 좀 못한다고 인생 뭐 얼마나 바뀌겠어?! 다만 이런 조그마한 바람은 있단다. 아빠처럼 수포자가 되어도 좋으니... 부디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만이라도 수학을 포기하지 말아 주겠니? 기본은 해야 하잖아 기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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