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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Jun 29. 2018

잔해 속 새로이 시작하는 영화 <데몰리션>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때 비로소

장 마크 발레 감독의 영화 <데몰리션>은 우연한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데이비드(제이크 질렌할)가 서서히 부서져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감독은 전작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HIV 감염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의 7년을 그리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해당 작품의 주연 매튜 매커너히는 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영화 <데몰리션>은 국내에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상실로 인한 아픔을 외면하며 점차 무너져가는 이의 모습을 플롯과 인물, 시청각적으로 유려하게 담아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좋아하는 영화이기에 다른 작품과는 차별화된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학교 과제로 제출했습니다.



영화는 데이비드와 그의 아내 줄리아(린드 헤더)가 운전 중인 차량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데이비드는 아내의 말에 다소 무심하게 반응하다가도 그녀의 재치에 웃어 보이기도 하며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이들을 덮친 교통사고는 갑작스럽게 달려든 신호위반 차량처럼 상실의 아픔이 데이비드를 잠식하도록 만듭니다.



사고 후 데이비드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하고 태연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데이비드의 모순적인 감정표현은 아내가 수술 중인 병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피가 묻은 구두를 닦아낸 그는 곧바로 일상에 복귀하며 동료들이 당황할 정도의 의연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의 모순적 태도는 초콜릿 자판기가 고장 났을 때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병원에서 그는 코앞에 닥친 아내의 죽음보다 자판기에 걸린 초콜릿에 더욱 크게 반응하고 장례식에서는 자판기 업체에 컴플레인 편지를 쓰기도 합니다. 이 같은 데이비드의 행동은 아내의 죽음 이후 상실감, 공허함 등을 억누르며 감정을 외면하다가 다른 문제사건-자판기 고장-에 관심을 돌리며 나타낸 행동으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결국 컴플레인 편지는 새로운 인물 캐런(나오미 왓츠)을 극에 끌어들이는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 데이비드는 가족도 친구도 아닌 완벽한 타인인 고객센터 직원 캐런에게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내며 점차 감정을 드러내고 아픔을 마주합니다.



데이비드 외 극 전반에 걸쳐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인물 크리스(유다 르위스)도 주목할 만합니다. 캐런의 아들 크리스는 14-15세 정도의 외모지만 거칠고 날카로운 말을 쏟아내며 제 나름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입니다. 그저 ‘중2병’으로 치부될 법한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드럼을 치거나 홀로 방에서 노래를 즐기며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크리스는 데이비드에게 좋은 곡을 알려주며 취향을 공유하고,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하는 등 어른-아이가 아닌 친구 관계로서 깊은 교감을 합니다.



크리스는 데이비드의 감정 표출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크리스의 음악파일을 받은 데이비드가 헤드폰을 착용한 채로 회색빛 도시를 무대 삼아 춤추는 장면은 정적이던 극의 흐름이 역동적인 전개를 맞게 되는 명장면입니다. 해당 장면은 개봉 당시 ‘제이크 질렌할 길매기춤 영상’으로 영화홍보에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 <데몰리션>은 단어가 주는 의미 그대로 데이비드가 상처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모든 기계의 부속품을 분해하고, 급기야는 아내와 함께한 집을 ‘해체’하는 영화입니다. 상황이나 물건을 파괴하고 부수는 행위로써 치유되는 과정이 최선의 방법인지 의문점이 남지만, 영화 속 데이비드의 행동은 새로운 길로 향할 수 있는 돌파구인 셈입니다. 덧붙여 데이비드의 파괴적인 행동은 “무엇인가를 고치려면 모든 것을 뜯어내야만 해.”라는 장인 필(크리스 쿠퍼)의 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필 또한 자신의 딸 줄리아를 잃고 아파하는 인물이지만 함께 상처를 겪은 데이비드를 대하는 태도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알 수 있듯 포용력 있고 성숙한 인물입니다. 그는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로서 느낀 상실의 아픔을 데이비드에게 공유하며 함께 극복하자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냅니다. 이후 일련의 사건들로 자신의 아픔을 인지하고 무너져 내린 데이비드가 필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은 필 말마따나 이전의 삶-감정을 마주하는데 솔직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건 차를 고치는 것과 같은 거야.
무언가를 고치고 싶다면 모든 것을 뜯어내야만 해.
모든 것을 검토하고 나서 다시 조립해야지.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고 있는 데이비드에게 크리스가 선물한 거대한 ‘데몰리션’은 영화 전반에 스며있던 공허함을 해소해주고, 데이비드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영화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사진=다음 영화, 예고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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