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공적으로 위탁된 존재인 것을 보여라. 그 결과는 무엇인가
우리가 샬롯 메이슨 전집을 읽는 목표는 부모가 먼저 공부하며 인식을 전환하기 위함이다. 또한 주변환경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우리 가정만의 교육방침이 필요하기도 했다. 우리는 아빠로서, 엄마로서 함께 공부하는 것이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 가장 우선임을 깨닫고 진리 앞에 바로서며 올바른 교육 철학을 가지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우리가 답하는 질문은 샬롯메이슨의 살아있는 교육 1 '9세 이하 어린이들의 훈련과 교육 가정교육'의 질문을 바탕으로 부부간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 작성되었음을 알린다.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가 되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마음을 점검하는 것이다. 어떤 마음? 바로 자신이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는 그런 겸손한 마음 말이다. 나도 부모가 되고 보니 어린 아기 때부터 아이가 1년, 2년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아이에게서 더 보게 되었다. 어떤 의미인가? 바로 아이는 부모를 닮아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에게서 부모 이상의 어떤 것을 기대하는 건 지나친 기대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고 성장한다.
어떻게 겸손한 마음을 가질까? 이 질문에는 아이의 소유권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즉, 아이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물론 호적 상에는 그렇게 등록이 되지만) 아이는 하나님에게서 맡겨진 존재로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이다. 샬롯 메이슨의 가정 교육이라는 책에서는 '제 1 대리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부모는 소유권자라기 보다는 대리인으로서 아이가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이 될 때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양육해야 하는 사람이다. 사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누군가의 소유 - 심지어 부모도 포함하여서 - 가 되기에는 너무나 가치있는 존재이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강조하며 한 생명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다고 인정한다.
이렇게 부모가 아이를 소유하지 않았다는 개념을 가진다면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태도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부모가 마음대로 통제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존재이다. 나의 소유가 아니기에 좀 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육아에 있어서 부모의 행동과 말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기에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행동과 말에 신중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이가 부모에게서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할 때 국가는 혹은 사회는 공공의 힘을 발휘해서 제제를 가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부모의 경제적 상황 때문이든 혹은 고의적인 학대적인 결과이든, 국가는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정책도 이러한 방향으로 만들어졌다고 본다. 한편으로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부모의 소유적 태도에서 아이가 학대받고 고통받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본다. 엄마의 학대로 인해서 사망한 '정인이'와 같은 사건을 보면서 같은 나이대의 아이를 둔 부모로서 가슴이 찢어진다. 국가의 시스템은, 그래서, 아이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더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적극적인 필요를 제공해야 한다.
나도 아빠로서 아이를 대할 때 많은 경우 아이의 인격을 고려하지 않을 때가 있음을 고백한다. 지능과 육체적 발달이 낮은 아이를 대할 때 어른으로서 하찮게 생각될 때가 있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아이들은 어른이 갖지 못한 호기심과 창의성 그리고 무엇이든 새롭게 보는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말 그대로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에게 있는 아직 여물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 무한한 가능성을 함께 탐구하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부모는 그런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세계를 함께 누리는 동반자로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세계를 걸어가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부모는 결단 그리고 마음의 변화를 바탕으로 이런 일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육아가 힘들다. 그건 성격 유형 진단검사인 버크만 분석을 통해서도 확인이 되었다. 체계적이면서 규율에 맞추는 성향과 아이들의 어수선함을 인정하는 것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매우 힘들어 한다. 세 아이를 연년생으로 출산하면서 정신적으로 회복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또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 쪽 구석에서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키울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다. 아직 미취학 아동인 아이들을 어떻게 바르게 키우면서 나도 힘들지 않는 육아를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할 때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요즘 남편과 샬롯메이슨의 교육철학을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
현재 남편과 살아있는 가정교육을 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변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스스로 정의 내리기엔 이미 어릴 적 내가 받았던 교육방식과 현대의 잘못된 육아지침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잘못된 가정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말하는 공적으로 위탁된 아이들의 가정교육은 부모의 인지의 변화에서 시작되므로 이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내가 귀한 세 아이들을 '공적으로 위탁된 존재'로 인정하는 것은 행동으로 옮기기에 힘든 부분이 많다. 단순하지만 어려운 질문이다. 공적으로 위탁된 존재는 어떻게 대하는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하게 된다. 그렇게 자라오지 못한 나는 그 개념부터가 매우 생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서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조금 더 쉬워질 것 같다. 서두에 내가 말했 듯이 나는 육아가 힘들다. 하지만 이제는 전제를 바꿔야 할 거 같다. 나는 육아가 힘든 것이 아니라, 그 만큼의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기 위한 사명감의 무게인 것이다.
다음으로 아이를 내 마음대로 휘두르려 하지 않으려는 결단이다. 우리는 요즘 아이들에게 순종을 가르치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요령껏 이리저리 빠져나오려고 할 때 나의 내면은 아이들을 말과 힘으로 복종시키려 한다. 그 양날의 검-순종과 복종사이-은 살아 있는 가정교육을 시작하기 앞서 아이들의 존재와 나의 책임에 대해 망각하게 만든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아이들은 공적으로 위탁된 존재, 즉 나는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 그 것이 내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것임을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