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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석 Hyunsuk Ji May 02. 2023

아이들을 방해하는 것

어떤 식으로 부모들은 자녀들이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는가?

우리가 답하는 질문은 샬롯메이슨의 살아있는 교육 1 '9세 이하 어린이들의 훈련과 교육 가정교육'의 질문을 바탕으로 부부간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 작성되었다. 


Question.

복음서 교육법전의 세가지 명령은 무엇인가?







 :: Father 현석 :: 


    아이들을 방해하는 행동 중 첫째는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예수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걸 막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명한다. 아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골칫거리로 여겨지던 당시의 모습에는 지극히 당연한 제자들의 행동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창조주를 알아가도록 디자인 되었다. 그들은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요?"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답하지 어려운 질문이 바로 이 "왜요?" 라는 질문이다. 그런데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계속 이 질문을 듣게 되면 나중에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많은 경우에 철학이나 신념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원래 그런 거니까." 이런 답변은 사실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질문은 생명의 근원으로 이어지며 이는 세상을 디자인한 조물주의 섭리에 대한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철학을 기반으로 할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 대해서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런 그들에게 어떻게 답해야 하겠는가? 이는 부모들이 가진 사상과 이 세상을 이해하는 세계관의 프레임에 대해서 스스로 자문하도록 한다. 과연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사상과 철학이 아이들의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어줄까 한번 생각해보자. 유물론이라는 세계관은 모든 현상을 물질의 상호작용의 원리로 이해한다. 형이상학적인 것이 없으며 모든 현상이 물질이 과학 법칙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의 한계는 우리가 느끼는 사랑, 관용, 이타심과 같은 아름다운 가치를 설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가감없이 질문한다. 왜 동물은 서로 먹고 먹히지만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나요? 이런 질문 앞에서 유물론의 세계관으로 설명하는데에는 많은 한계에 봉착한다. 태초에 세상이 생기기 전 조물주의 철학과 디자인이 없었다면 세상의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설명이 가능할까? 세상을 창조한 신이 하나님이던 그 다른 신이던 세상을 우리가 느끼 듯이 아름답게 만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 Mother 수빈 ::  


    요즘의 기독교인들은 물질만능주의자들이 많다. 다 그런건 아니지만 내가 어린 시절 다녔던 교회 중직을 맡고 있던 분들은 대개 기복신앙과 감투로 인한 허세 등 물질만능주의의 대표적인 삶을 살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기독교인들도 많지만, 그런 잘못된 신앙관을 보며 살아온 내게 아이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방해가 될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이 다분히 있다. 



    기독교적인 삶이란 겉으로 보여지는 경건한 삶이 아닌 자연스런 삶이다. 사람들이 곤궁에 처할 때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도 신을 찾고자 하는 본능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샬롯 메이슨의 글에서는 아이들은 꽃이 해를 향하는 것처럼 자연스레 구원자와 하나님을 향한다라고 말한다. 일부러 기도의 자리, 경건한 말씀이란 시스템을 적용하지 않아도 그것이 삶이 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하나님께 향하는 존재지만 부모의 역할에 따라서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가령 아이에게 책을 읽어라고 말만 하고 정작 책을 읽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책읽기를 힘들어하는 것처럼. 기도와 하나님과 관련된 일에 대한 토론들이 지루하게 느껴지면 안된다. 뭐든 억지로 하면 탈이 난다. 그건 나도 경험해서 아는 바이지만, 부모의 신앙이 곧 아이의 신앙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 것은 좋은점 보다 안좋은 점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아이들이 가는 길을 적어도 막아서는 안된다.



    어른들이 영적인 불꽃을 붙여줄 마음이 될 때까지 아이는 영적인 삶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낮은 평가도 방해의 요인이다. 모든 면에서 아이들의 가치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단적인 예로 아이들의 지능이 뛰어난 부분들을 미디어에서도 보았지 않은가. 그것은 뛰어난 아이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아이들의 가치는 어른이 생각한 것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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