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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우 Jul 20. 2024

무엇을 읽는다는 것의 진심

어제도 읽었고, 오늘도 읽고 있고, 내일도 읽게 될 것이다.

계속적으로 일상의 삶에서 "읽기의 생활"을 꾸준히 하는 중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실행력이 높은 것이 이 "읽기"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쉽게 바꿀 수 없는 환경 가운데,

서서히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일상의 덧없는 시간들 가운데,

일단 몸의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 "홈트"와 "노르딕워킹"을 하고

마음의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 "읽기"를 한다.

(독서라는 말보다 읽기라는 이 행동주의적 표현이 더 좋다)


<지난 2주간 읽었던 책들>


<지금 새롭게 읽고 있는 책>


"다시 책으로"라는 책의 본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유전적으로 결정된 읽기의 청사진은 없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흔히 읽기가 타고난 것이어서 아이가 적정시간에 이르면,

언어와 마찬가지로 '온전한 형태'로 발현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근본적이고 엄청난 착각 때문에 전 세계의 아이와 교사, 부모가 숱한 불행을 겪게 되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대다수는 이 비자연적인 문화적 발명의 기본 원리를 배워야만 합니다."


- 다시 책으로(매리언 울프 지음/전병금 옮김/어크로스)

  두 번째 편지: 커다란 서커스 천막아래, 읽는 뇌의 구축 중,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어린 아이가 말을 배울때  "엄마~"하는 것처럼

읽기의 부분이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말을 들어야 그 말을 하나하나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처럼,

"읽기"의 부분도 그 실행의 부분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야 점점 발전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의외로 선천적인 부분으로 알려져 있는 "읽기"의 본질이다.


그렇다.

읽기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반복과 노력의 결과이다.


<읽기의 중요성을 망각함으로 어느덧 우리는 문해력의 후퇴라는 재앙을 만나게 되었다>


순간의 릴스와 쾌락의 일상화,

그리고 사유와 철학이 없고

"읽기"의 느린과정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지금,


읽기가 사라진 사회는

급격하게 생각의 빈곤과 질문의 빈곤이 더해진다.

결국 그 후폭풍은 사회의 모든이들이 감당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온갖 갈등과 이런저런 이슈들을 살펴보자. 그 원인이 무엇인가!


맞다. 본인도 그것이 참으로 두렵다.

스스로도 생각의 빈곤과 질문이 사라지는 삶을 살게되면,

똑같이 그리 되어질 것이기에......


그렇기에 지금 읽기에 최대한 집중하는 이유가

그리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읽기에도 진심어린 읽기란 느낌적 표현이 있을까>


무엇을 읽는다는 것의 진심을 깊이 생각한다.


결국,

어제도 읽었고,

오늘도 읽고 있고,

내일도 읽게 될 것이다.


그 읽기의 숭고하고도 인간에게 주어지는 후천적이지만 높은 가치를 절대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어마한 장마비 가운데서,

이해할 수 없는 직장에서의 고달픈 노동 가운데서,

외로움과 고독의 연속인 일상 가운데서,

"읽기"의 후천적이지만 이 높은 가치를 계속 이어갈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읽는다.


"나는 읽기의 고유한 본질이 고독 속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비옥한 기적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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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후천적인반복과노력의결과

#나는오늘도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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