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PD로 살아남기 : 비 오는 씬에서 살아남기
온 지구에 7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만큼, 세상엔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담아내는 드라마 장르도 다양하고,
또한 그 장르를 표현하기 위한 세상의 다양한 장면들도 존재한다.
그런 장면들을 볼 때면 시청자로서는 감동과 재미를 느끼는 한편, 인생의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드라마가 몇십 년 넘도록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동을 주며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살아남아 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왜 또 비가 내린대?"
드라마 대본을 보던 연출부와 제작부는 일제히 탄성 섞인 야유를 내뱉었다.
"드라마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고조시켜주는 장치로 비 내리는 것만큼 효과적인 건 없잖아."
하지만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번 주 촬영 분량에서 골칫덩이가 하나 더 늘어났다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비 내리는 장면 자체는 촬영하기 그렇게 어렵지 않다.
'살수차'라고 불리는 대형 물차를 불러서 장면 앵글에 맞게 뿌려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촬영을 할 때와 하고 난 이후가 문제다.
촬영을 할 때는 배우와 장비들이 홀딱 젖기 때문이다.
살수차 밖에서 촬영하는 앵글일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배우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촬영하는 앵글일 때는 약간의 애로사항이 생긴다.
고가의 촬영장비와 촬영 인력들이 물에 홀딱 젖기 때문이다.
촬영장비는 실제로 억대에 해당하는 초고가 물건이기 때문에 물에 젖게 되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기는 하지만, 수리하는 기간이나 혹여 수리가 불가능하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 촬영장비가 물에 젖지 않게 롤 비닐이나 우비를 준비해야 한다.
우비나 롤 비닐은 한번 정도 임시적으로는 물에 젖는 걸 막아주기 때문에 아주 효과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미세 물방울이 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물기를 닦아줄 수건도 준비해놓으면 좋다.
뭐 이 정도는 크게 어렵다 생각 안 했는데, 갑자기 연출부에서 급하게 달려온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이 신을 찍으면 배우가 홀딱 젖게 되는데 배우가 옷을 갈아입고 몸을 말리는 장소가 급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럴 줄 알고 촬영 전에 현장 근처에 가장 가까운 모텔을 알아봐 놨다.
아무래도 배우는 알려진 연예인이다 보니 아무 곳이나 덥석 덥석 잡아줘서는 안 될 일이었다.
행여 얼굴이라도 알려진 사람이 망신살이라도 당하면 괜한 구설수가 발생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불똥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레디! 큐!"
감독님의 큐 사인에 맞춰 살수차에서 물이 분사된다.
쏴아아- 소리가 마치 수영장에 있는 대형 샤워기 같기도, 소방차에 있는 소방호스 소리 같기도 한다.
그때 마침, 투둑 거리며 하늘에서 진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이거 뭐야? 다들 대피!"
촬영팀은 비를 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지붕이 있는 곳 밑으로 신속히 대피했다.
다행히 비 씬을 위해 준비한 우비와 롤 비닐, 수건이 있어서 그런지,
제작부에서 나눠준 수건으로 촬영팀과 배우팀들은 손쉽게 젖은 몸을 닦아내느라 분주했다.
비도 오고 그래서, 어쩐지 또 눈물이 나서,
비가 내리는 씬에 비가 와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상황에서 우리는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쉽게 그칠 비는 아닌 듯했다.
하. 집에 가야 하는데.
본 시리즈는 실제 에피소드와 상상을 적절히 섞은 이야기이며,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 및 촬영 사진들은 모두 예시이며 실제와는 다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