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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Apr 30. 2022

여기 책임자가 누구야? 당장 나오라 그래!

제작 PD로 살아남기 ③ : 현장 출동 경찰관과의 조우

드라마 촬영을 하다 보면 다수의 인원이 한 공간에 모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소음은 물론이요,

완벽한 한 씬을 촬영하기 위한 도로 및 사람 통제로 인한 민원 발생이 필수적으로 발생하긴 한다.

그런 민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스태프들에게 (특히 야간에 촬영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되도록 소음을 발생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기도 하고,

일반 시민분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통제도 효율적으로 -때론 대안 통로를 만드는 등 -

진행하기 위해 각종 노력을 기울이는데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 어찌 뜻대로 될 수 있으랴.

촬영을 하다 보면 간혹 인근 주민들의 고성과 욕지거리를 듣는 것은 부지기수요,

늘 다니던 길을 막았다며 현장에서 스탭을 붙잡고 육두문자를 내뱉으시는 시민들도 왕왕 만나기도 한다.

(길을 막은 스탭이 무슨 죄겠냐만은.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그럴 때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여기 책임자가 누구야? 당장 나오라 그래!"


그럴 때면 어김없이 현장의 제작 PD인 나는 시민분에게 죄송함도 전달하는 한편,

촬영을 최대한 빨리 끝내겠노라 약속하며 시민분의 노여움을 풀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만큼 촬영이 딜레이 되며 버리는 시간이 더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작 PD의 숙명이랄까.


그런 민원이 자주 발생하는 곳 중 하나는 바로, 부잣집 동네로 자주 촬영하는 동네인 '평창동'이다.

우리나라 드라마 중에서 부잣집 설정의 집으로 평창동을 안 거쳐 간 드라마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자주 촬영을 하는 동네이면서도, 동시에 인근 주민들의 불편이 가장 많은 동네이기도 할 것이다.




아침드라마를 촬영할 당시였다.

우리는 고정 장소인 평창동에서 야간 촬영을 진행할 때였다.

주인공의 집 앞을 찍기만 하면 그날 스케줄은 모두 끝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 한 스탭이 나한테 다가와서는 "저기 이상한 아저씨가 있으니 한 번 가봐라."라고 말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니 한 아저씨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서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닌가.


야구방망이에 한 번, 소리에 두 번 놀라서 움찔거리고 있는데, 가까이 가서 들으니

"자기 딸이 올해 고3 수험생인데 드라마 팀이 시끄럽게 하는 바람에 공부가 되질 않는다. 서울대 목표로 공부 중인데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느냐?"는 것이 민원의 주된 내용이었다.

이도 저도 못하고 있던 와중에 나보다 조금 더 연륜이 있는 조연출이 아저씨에게 다가가 잘 달랬고, 아저씨는 내키진 않지만 분이 좀 가라앉은 채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는 줄 알았는데,

잠시 후, 저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그냥 지나가는 순찰차인 줄만 알았던 경찰차는 우리 현장 입구에서 딱 멈추는 것이 아닌가.



본 사진은 실제 상황과 관련이 없습니다.


"여기 책임자 분 계십니까?"


경찰차는 현장의 책임자를 찾았고, 촬영은 잠시 일시 중단됐다.


오, 이런.

이대로 나는 경찰서로 연행되는 것인가.

내 인생 3n 년만에 첫 인생에 스크래치가 생기는 것인가.

부모님께는 뭐라고 연락을 드려야 하지.

회사에도 얘기해야 하는 건가. 등등,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긴장되는 마음을 부여잡고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경찰관에게 다가갔다.

그중 연륜이 있어 뵈는 경찰관 분이 나에게 말했다.


"현장 책임자 분 되십니까?"

"아, 네, 그런데요."

"촬영 관련 소음 문제로 신고가 접수되어서 왔습니다. 뭐 여기 촬영 오래 걸립니까?"

"저희 한 30분 정도면 끝납니다. 금방 촬영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큰 문제는 없지요? 가급적 조용히 촬영 끝내주도록 하세요."


그러더니 다른 젊은 경찰관이 나의 인적사항을 적어갔다.


그리고 며칠 후, 다음 주 어느 날.

우리는 또다시 평창동으로 촬영을 갔다.

그때 일이 또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 반 우려 반 섞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때보다 조금 조용하지만 조금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또 들려왔다.

'설마 우리인가?' 하는 슬픈 예감은 어김없이 맞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 왔던 경찰 조 분들이 그대로 온 것이 아닌가.

미운 정(!)도 정이라고, 익숙한 얼굴을 또 보니 이제는 무서움을 넘어 반갑기까지 했다.


들어본즉,

지난주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왔던 분이 촬영팀이 오자마자 다시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신고를 받은 이상 무조건 출동을 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민원인에게 전달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경찰관 분도 야구방망이 아저씨가 그 동네의 나름 유명인사(!)라는 말까지 해줬다.


같은 분에게 받는 고충이 이해가 되자,

어쩐지 경찰 분과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만 같았다.


나는 우리 때문에, 또는 야구방망이 아저씨 때문에 야간 출동을 해야만 했던 경찰관 분께

힘내시라고, 고생 많으시다고 시원한 음료수 하나씩 건넸다.

경찰분들은 괜찮다며 음료수를 정중히 사양하셨고,

더불어 우리에게도 고생 많다고, 나중에 드라마가 방영되면 잘 챙겨보겠노라는 약속까지 하고 현장을 떠났다.


현장을 떠나는 경찰차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가는 경찰차를 한참이나 배웅하고 있었다.



그것이 날카로운 첫 경찰과의 추억이었다.



PS. 그때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왔던 아저씨의 따님은 대학은 잘 가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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