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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Mar 04. 2022

열심히 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막바지 겨울을 부단히 지나는 중이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슬그머니 봄이 느껴진다. 정말 저번 주말은 생각보다 따뜻해서 얇은 옷 위에 패딩만 둘러 입고 오랜만에 스타벅스로 책을 읽으러 나갔더니 마음이 울렁거렸다.


봄이 온다. 드디어 오고 있어.


글쎄 봄이 좋은 이유는… 코끝 시렸던 겨울, 호떡을 사 먹은 겨울. 뽀드득뽀드득 밟았던 눈 내린 겨울. 출근할 때 보았던 휘영청 밝은 달도 모두 겨울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소중한 장면들이지만 어김없이 봄을 알리는 향이 어디선가 날아오면 마음이 스르륵 녹고 만다. 그래서 좋은 이유를 딱히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그냥 봄이 지닌 특유의 냄새만으로 그동안 참고 있던 숨을 쉬이 내보일만해서. 그래서 나에겐 겨울의 아쉬움보다 봄의 반가움이 훨씬 클지도 모르겠다.


3월은 봄과 참 잘 어울리는 달이다. 새 학기, 새 학년, 새직장처럼 ‘시작’과 짝이 맞고 ‘설렘’과 ‘기대’가 한 세트처럼 따라온다. 물론 재수, 재취업, 퇴사를 앞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봄은 그 모든 걸 덮고 새롭게 시작해 보려는 의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여서 끝에 서 있어도 끝이 아니길 느끼는 유일한 계절이다.


봄. 그리고 3월이 되었다.  


코로나는 스타벅스의 풍경도 바꿔 놓았다. 비교적 다닥다닥 붙어 있던 공간을 띄워 여럿이 앉는 큰 테이블을 줄였고 한때 도서관처럼 보였던 스타벅스의 분위기는 잠시 들렸다 떠나는 라이트한 카페의 풍경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 옆 자리에는 도수 높은 안경을 낀 남자분이 마스크 때문에 간간히 쉬어지는 숨이 답답하지도 않은지 이마를 찡그리며 열심히 어떤 기출문제집을 풀고 있었는데 지우개로 뭘 열심히 지웠다가 또 꾹꾹 눌러 샤프로 문제를 푸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떠올랐다.



나는 ‘열심’과 ‘공부’ 단어에 환상이 있다. 그래서 나를 자극하는 여러 영향 중 하나는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공부는 열심히 글을 쓴다거나, 열심히 컴퓨터를 하고 있는 일의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야말로 치열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읽고, 쓰고, 외우는 전형적인 공부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체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도서관에 가면 많이 볼 수 있고, 그런 이유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을 구경하려고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했던 나다.


나태하고 게으른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해야 할 공부도 없으면서 일단 도서관에 갔다. 한국어 능력시험을 준비할 때는 그들 속에 끼어서 함께 외우고 적으며 문제를 풀었고 설렁설렁 책을 읽을 때면 옆에서 메모하며 신문을 읽던 노부인의 옆모습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면 내 마음엔 무언가가 불끈 올라왔고 그것은 나의 게으름에 자극이 되어 미루고 있던 자소서를 쓰게 하거나 하기 싫던 토익을 접수하게 만들었다. 아마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직장인이 되는 시간은 몇 년이나 더 걸렸을 것이다. 열심히 쓰고 지우는 그들 덕분에 2011년 취업준비생의 봄은 도서관에서 가장 바쁘고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다.



가장 건전한 방법으로 자극시키는 게 바로 공부였다. 술, 담배, 클럽 같은 유흥이 자극제가 되기엔 내가 너무 유약했고(여전히 글 쓰는 여자의 담배 연기는 매우 흥미롭지만…)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영역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으니 공부는, 적어도 공부만큼은(비록 못했어도) 어찌어찌 따라 해 볼 만한 그런 종류의 유혹이었던 거다.


특히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의 얼굴, 손, 몸을 보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좋았다. 진지한 얼굴로 책에 파묻혀 골똘히 그 세계에 머무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차가 쌓여 여러 기술을 습득한 공부의 고수는 높낮이 독서대와 공책, 색색의 형광펜을 두루 갖추고 스톱워치 시계를 각 정렬로 자리 잡아 자신의 영역을 견고히 만들기도 했다. 고독하고 조용한 싸움이 펼쳐지는 전장을 보기 위해서는 개인실보단 한 책상에 6명씩 빼곡히 앉아 공부하는 열람실이  더 좋았는데 칸막이가 있는 곳은 좀 더 은밀히 각자의 세계에 머무는 외로운 곳인 반면 열람실은 전혀 모르는 타인과 같이 공부하고 있는 분위기만으로도 압도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실 치열하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부는 못해도 그 학구열 분위기에 취하고 싶었던 나는 다른 이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훔쳐볼 수 있는 열람실이 참 좋았더랬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조용한 희망>을 봤다. 밤새 그 많은 시리즈를 다 보고 잘 정도로 재밌었고 다 보고 난 뒤 유독 마음이 뛰었던 건 알렉스가(여주인공) 남편의 정신적 학대를 피해 집을 나온 뒤 청소부를 하며 아이를 어렵게 키우지만 그 속에서도 잃지 않은 희망이 ‘공부’란 점이 너무 좋았다. 아마 누구나 예상 가능한 플롯이었다면 알렉스는 화장실 청소계의 대모가 되어 청소업체로 성공한 CEO로서 결말을 맞았겠지만 그녀는 끝내 공부를 놓지 않았고 대신 곧 입학할 대학교가 있는 동네로 이사 가면서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조용한 희망을 품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계가 어려울 때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게 학업이다. 먹고사는 일 앞에서 학문은 사치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구나 일단 돈을 벌고 그다음에 학업의 길을 따르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생계의 현장에서 결코 공부를 놓지 않는 사람. 더 나아가 공부로 성공해서 삶의 현장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 도대체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 환경에서도 공부로 승부를 보려는 걸까?


노동의 가치는 즉각 돈으로 환산되어 그걸로 밥 먹고 공과금도 내는데 공부의 가치는 너무도 장기적이고 불투명해서 당장 배고프고 포기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건 자신의 인생을 거기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처절함이 있고 어떻게든 지금 현실에서 한 단계 도약하려는 건전한 야심이 있다.


모범적인 방법으로 성공을 꿈꾸는 일.


내가 공부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 것 같다. 꾀부리지 않고 치사하지 않고 야비하지 않은 방법으로 성공을 꿈꾸는 것.


부정입학, 학력 조작 등의 단어가 공부의 본질을 흩트리고 공부하는 사람의 의욕을 꺾어놓는 이 시대에 어떤 종류의 공부든 결국 자신이 서 있을 세계에 가 닿기 위한 욕망과 의심, 인내를 견디는 과정이 대단함을 넘어 힙해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 <소년 시절의 너>에서도 왕따 첸니엔은 친구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와서도 방에서 공부를 했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도망치는 방법은 청소년이 흔히 저지르는 탈선과 방황일 법도 한데 첸니엔은 공부를 선택했다. 그 방법이 얼마나 놀랍고 신선한지. 그녀가 속한 위태로운 세상에서 공부는 꽤 모범적으로, 그곳을 탈출할 유일한 희망이자 간신히 붙들어야 할 간절함이었다.


이렇듯 공부의 의미는 모두에게 다르다. 누군가에겐 성공을 위한 기도이자 노력이고, 또 누구에게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삭이려는 무심한 방법이기도 해서 그저 열심히 해내야 할 시기에, 해야만 하는 이유를 마음속에 담고 꿋꿋이 버텨내는 사람들이 있다.


끝까지 공부하는 사람들이 대단한 이유는 공부가 희로애락의 여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목표가 있더라도 어찌 기쁨과 즐거움만 있겠는가. 그보다 더 큰 슬픔과 화도 있겠지. 그러나 결국 그것들을 헤치고 간 길 끝에 서 있을 모습은 어떤 형태로든 아름다울 것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사람들이니까.



3월이라 그런가? 요즘 열심히 공부하고 싶단 생각을 자주 한다. 루틴처럼 매일 쳐내는 업무 말고 진짜 공부 같은 공부 말이다. 인수분해를 처음부터 제대로 배워보고 싶기도 하고 수능 영어를 다시 시작해보고 싶기도 하고. 시험을 목표로 둔 공부는 아니지만 순수학문의 열기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굉장한 용기와 체력,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하얀 종이를 빽빽하게 연필로 쓴 흔적, 순수한 공부에서 얻는 위로와 기쁨이 뭔지 알기에 다시 한번 그때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이 열정을 조용히 시작해 보려는 바, 유튜브에서 <뉴욕 라이브러리>와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을 검색하며 공부 시동을 걸고 있는데 영 몸이 안 따라준다. 역시 도서관에 가야 부스터가 제대로 걸릴 텐데. 아니 이것은 핑계. 결국 마음 준비가 한참 모자란 것일지도…




그냥, 그런 날이 있지 않나요?

열심히 하고 싶은,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무언가를 하고 싶은 때가. 그런 때가 있잖아요.

저에게는 3월, 이 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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