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읽지 않는 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는 건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난 뒤에는 늘, 오늘 하루 몇 분이나 내 글을 읽어 주셨나 본다. 여기의 글은 개인의 일기가 아닌 다른 이와 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쓴 글이니 통계나 라이킷 수가 은근 신경 쓰이는 것이 사실인데 아마 브런치의 모든 작가님이라면 어플에 들어가 보이는 왼쪽 상단의 옥색 동그라미를 제일 반가워하실지 모르겠다. 그건 누군가가 내 글에 공감을 해줬거나 댓글을 달아줬다는 표시이니까 ^^
물론 브런치팀에서 글을 쓴 지 오래됐다고 말해주는 일도 허다하지만 ^^;;
여하튼 이곳에 글을 쓴다는 건 참 기대되면서 한편으로는 외로운 일이다. 글 쓰는 것 자체가 고독과 기대를 한 마음에 붙인 채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잇는 것과 같아 글을 쓸 때면 다음 포털사이트나 브런치 메인에 글이 뜨지 않을까 마음껏 기대하며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반면, 쓰는 내내 외롭고 고독한 마음이 드는 것도 피할 수 없다. 뭘 쓰면 인기글이 될 거라는 조언도 구하지 못한 채 그저 나의 머리와 손만을 움직여 고독한 긴 항해를 떠나야 한다. 어두컴컴한 바다를 등대의 불빛도 없이 운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렵게 한 편을 쓰고 나면 몇 번이나 중얼거리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대략 3~4일 숙성시킨 뒤에야 발행 버튼을 누른다. 그 순간만큼은 내 글이 멀리멀리 퍼져 이 이야기가 필요한 분들께 위로로 가 닿기를 바라는 심정인데 공부하러 가는 자식을 멀리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애틋하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뭐 그렇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발행할 때도 있고, 잠들기 전 보내 놓고 다음날 아침 라이킷 수와 통계부터 찾아보는 날도 있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꼭 하루 이틀은 라이킷에 집착을 하며 공감을 눌러준 독자님들께 감사한다고 되뇌고 점차 내 글을 잊는 패턴이 반복되어야 한 편의 글 발행을 완전히 끝마친 기분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나와 글 사이에 놓인 불편한 감정에 둘러싸여 자책만 늘어놓기 일쑤다.
“왜 이렇게 썼지?"
“이 문장 너무 못 썼네.”
“역시 사람들이 잘 안 읽은 이유가 있었어ㅠㅠ”
단 한 번도 나의 글에 만족할 수 없었지만 요즘 들어선 그 증상이 더욱 심해진 것 같다. 몇 년째 글을 쓰고, 책도 읽는데 하나도 나아지지 못한 내 글과 꽤 자주 보이는 비문에 굉장한 실망을 하고 통계는 한숨만 나온다. 하루에 10명. 아니, 열 손가락을 채 구부리지 못하는 숫자가 내 눈앞에 떠다닐 때면 제일 먼저 맥이 풀려버리고 만다.
나 글 왜 써?
저 말을 매일 마음에 담고 살았다. 데이터도 아깝고, 저장소도 아깝고, 자연에 전혀 득 될 게 없는 나의 글을 누가 읽는다고 굳이 쓰고 앉아 있는 건지. 스스로도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해 어영부영 시간이 지난 틈에 나는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앉아 있다. 심지어 오늘은 3월 9일 대통령 선거날이고 늦춰진 출근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나와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이걸 한다고 해서 돈 10원을 버는 것도 아닌데 고생이라면 고생을, 쓸데없다면 이 쓸모없는 짓을 워드 파일에 지금의 이야기로 채우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글 쓰는 사람이 그렇게 멋져 보였다. 카피라이터의 동경부터 시작해 문학에 몸담은 여성작가(박완서 작가님)로까지 존경의 영역이 넓혀지더니 생각하면 닮는다고 했던가. 비록 출간 한번 하지 못한 무명작가지만 브런치 덕분에 작가 타이틀을 가지고 이런 글이라도 쓸 수 있어 어쩌면 그들의 발가락 때 정도만큼은 닿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쓴다는 건 참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슬픈 일이어서 기대나 희망을 버려야만 간신히 이 작가 활동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이런 마음이다 보니 글 쓰는 환경도 돌아보게 된다. 훌륭한 목수도 가끔은 연장 탓을 한다고 하니 나도 우리 집 연장 탓을 해보자면, 집에는 서재가 하나 있지만 서재로서의 쓸모보다는 자전거와 폼블러, 요가 매트가 떡 하니 주인 노릇을 하고 있고 그마저도 방치되어 겨울에는 난방도 제대로 틀지 않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물론 이것 말고도 일단 와이파이가 잘 끊기고, 허리디스크용 의자를 써야 하는데 1년이 지나도록 사야 한다 생각만 하고 사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런 까닭에 나의 글 쓰는 주 공간은 부엌 옆 높은 서랍장 위에 휴대폰을 고정시켜 놓고 브런치 앱을 켜서 서 있는 상태로 글들을 적는데 이마저도 가만히 서 있는 것이 허리에 무리가 될 때 있어 몇 문장을 쓰고 나면 뻐근해진 허리를 부여잡고 잠시 침대로 가 누워 있다 온다. 그래서 글의 흐름은 시도 때도 없이 끊기고 호흡이 가뿐하지 못한 문장이 많다. 과연 이 연장이 정말 누구도 읽지 않는 나의 글에 대한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단지 쓰고 있다는 행위에 집중하자치면 특별한 이유도 되지 못한다.
오랜만에 워드 파일을 켜니 좀 더 글다운 글을 쓰는 느낌이다. 아이폰 X로 브런치 앱을 켜서 글을 쓰다 보면 기껏 쓴 문장 하나가 화면에는 3~4 문장으로 길게 보여 서둘러 글을 마치는 기분이 없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이제야말로 아이패드 프로를 사야 할 때가 온 것인가. 멀쩡한 노트북을 옆에 두고도 부팅 시간이 느리단 이유로 자꾸만 엉뚱한 아이패드로 눈을 돌린다. 마치 그것만 있으면 아름답고 치명적인 소설 한 편은 뚝딱 써낼 수 있는 미모의 작가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물론 다들 핑계란 걸 눈치채셨을 거다. 아이 셋 낳아 기르며 기막히고 코 막히는 멋진 글을 쓰는 작가들도 많고 무려 박완서 작가님은 마흔의 나이에 작가 데뷔를 하셨는데 내가 뭐라고 이런 어쭙잖은 변명이나 늘어놓다니. 그러나 이런 핑계도 없으면 아무도 읽지 않는 내 글을 나마저도 품어줄 수 없다. 못나든 잘나든 내 마음에서 나온 글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아이들의 생명이 다한 것은 아니다. 언제든 내가 읽고 그 말들에 위로를 받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꾸준한 대화 같은 것이어서 나는 이들을 놓을 수 없다. 일기와 다르게 비교적 정제되고 통일된 문장으로 공개되어 타인에게 평가받는 글이라 사랑만으로 긴 호흡을 이어갈 수 없는 게 아쉽지만 이것이 브런치 글의 숙명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든 안 읽히든 물리적으로는 지구 상에 한 점의 데이터로 기록되어 있을 뿐, 그 후의 일은 글이 가진 운명대로 나아간다.
아무도 읽지 않은 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일은 나의 열등감을 적나라한 맨 얼굴로 마주하게도 한다. 라이킷 10개를 넘지 못하고 하루 10명도 읽지 않는 이 못난 글의 실체를 똑바로 보면 나의 부족한 점이, 파도처럼 휩쓸려 사라져 버린 자신감 없는 내가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일상과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평범한 내가 바라봐진다.
어찌 보면 참 슬픈 일이지만 다른 속성을 통해 나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만날 수 있다면 못난 점을 발견하고 자책하기 위해서만 아니라 되려 그 부분을 더 예뻐해 주고 안쓰러워해 줄 수 있는 연민을 가질 수 있으니까. 이런 팍팍한 세상에서 나만큼은 나를 좀 더 아껴주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본래의 나였으면 한동안 의기소침해서 브런치와 글을 멀리했을 것이다. 속상하고 화난 마음에 이미 발행된 글을 읽고 또 읽으며 왜 아무도 안 보냐고 했을 텐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순응도 아니고 포기도 아닌 아무렇지도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조회수에 흔들리지 않고 그냥 다른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고 그저 시간을 보내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여겼다.
아무도 읽지 않으면 어때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읽히든 안 읽히든 나는 계속 써 내려갈 뿐이고 이렇게 시간을 버리고 있다고.
사는 게 힘들고 버거워 이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면 아이러니하게 뭐라도 하고 있어야 내게 주어진 시간을 빨리 보내 버릴 수 있다. 아아 시간을 죽여야만 생존할 수 있는 아이러니함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겐 축복처럼 여겨지는 이 시간을 나는 마구 낭비하고 흘려보내고만 싶은 이 못난 마음을. 언제부턴가 잘 살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않은 이 평범한 인생을 버티는 방법은 빨리 시간을 써버리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무슨 일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누군가는 허무주의라 불렀고 또 다른 이는 그런 생각은 위험하다 했지만 나에게 이런 태도는 의외로 외부로부터 당할 물렁한 마음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어 어쩌라고 식의 성격을 닮게 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적용되진 않아도 적어도 몇 가지 일들에 대해서는 숨 쉬고 도망갈 수 있는 여유를 주었기 때문에 허무주의여도 좋으니 웬만하면 인생에 큰 의미를 두지 말자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무도 읽지 않으면 어떠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쓴다.
지금도 우울한 이 출근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마저 어플을 켰다.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꽉 뭉쳐서 이것을 재료 삼아 썰고 다듬으며 나의 이야기를 지지고 볶아 여러분들에게 내놓는 글이다.
부디 나처럼 홀로 글 쓰는 일이 외롭고 고독한 분이 계시다면 우리 계속 써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