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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Mar 18. 2022

아무도 읽지 않는 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는 것

아무도 읽지 않는 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는 건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난 뒤에는 늘, 오늘 하루 몇 분이나 내 글을 읽어 주셨나 본다. 여기의 글은 개인의 일기가 아닌 다른 이와 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쓴 글이니 통계나 라이킷 수가 은근 신경 쓰이는 것이 사실인데 아마 브런치의 모든 작가님이라면 어플에 들어가 보이는 왼쪽 상단의 옥색 동그라미를 제일 반가워하실지 모르겠다. 그건 누군가가 내 글에 공감을 해줬거나 댓글을 달아줬다는 표시이니까 ^^

물론 브런치팀에서 글을 쓴 지 오래됐다고 말해주는 일도 허다하지만 ^^;;


여하튼 이곳에 글을 쓴다는 건 참 기대되면서 한편으로는 외로운 일이다. 글 쓰는 것 자체가 고독과 기대를 한 마음에 붙인 채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잇는 것과 같아 글을 쓸 때면 다음 포털사이트나 브런치 메인에 글이 뜨지 않을까 마음껏 기대하며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반면, 쓰는 내내 외롭고 고독한 마음이 드는 것도 피할 수 없다. 뭘 쓰면 인기글이 될 거라는 조언도 구하지 못한 채 그저 나의 머리와 손만을 움직여 고독한 긴 항해를 떠나야 한다. 어두컴컴한 바다를 등대의 불빛도 없이 운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렵게 한 편을 쓰고 나면 몇 번이나 중얼거리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대략 3~4일 숙성시킨 뒤에야 발행 버튼을 누른다. 그 순간만큼은 내 글이 멀리멀리 퍼져 이 이야기가 필요한 분들께 위로로 가 닿기를 바라는 심정인데 공부하러 가는 자식을 멀리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애틋하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뭐 그렇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발행할 때도 있고, 잠들기 전 보내 놓고 다음날 아침 라이킷 수와 통계부터 찾아보는 날도 있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꼭 하루 이틀은 라이킷에 집착을 하며 공감을 눌러준 독자님들께 감사한다고 되뇌고 점차 내 글을 잊는 패턴이 반복되어야 한 편의 글 발행을 완전히 끝마친 기분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나와 글 사이에 놓인 불편한 감정에 둘러싸여 자책만 늘어놓기 일쑤다.


“왜 이렇게 썼지?"

“이 문장 너무 못 썼네.”

“역시 사람들이 잘 안 읽은 이유가 있었어ㅠㅠ”


단 한 번도 나의 글에 만족할 수 없었지만 요즘 들어선 그 증상이 더욱 심해진 것 같다. 몇 년째 글을 쓰고, 책도 읽는데 하나도 나아지지 못한 내 글과 꽤 자주 보이는 비문에 굉장한 실망을 하고 통계는 한숨만 나온다. 하루에 10명. 아니, 열 손가락을 채 구부리지 못하는 숫자가 내 눈앞에 떠다닐 때면 제일 먼저 맥이 풀려버리고 만다.


나 글 왜 써?


저 말을 매일 마음에 담고 살았다. 데이터도 아깝고, 저장소도 아깝고, 자연에 전혀 득 될 게 없는 나의 글을 누가 읽는다고 굳이 쓰고 앉아 있는 건지. 스스로도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해 어영부영 시간이 지난 틈에 나는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앉아 있다. 심지어 오늘은 3월 9일 대통령 선거날이고 늦춰진 출근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나와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이걸 한다고 해서 돈 10원을 버는 것도 아닌데 고생이라면 고생을, 쓸데없다면 이 쓸모없는 짓을 워드 파일에 지금의 이야기로 채우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글 쓰는 사람이 그렇게 멋져 보였다. 카피라이터의 동경부터 시작해 문학에 몸담은 여성작가(박완서 작가님)로까지 존경의 영역이 넓혀지더니 생각하면 닮는다고 했던가. 비록 출간 한번 하지 못한 무명작가지만 브런치 덕분에 작가 타이틀을 가지고 이런 글이라도 쓸 수 있어 어쩌면 그들의 발가락 때 정도만큼은 닿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쓴다는 건 참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슬픈 일이어서 기대나 희망을 버려야만 간신히 이 작가 활동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이런 마음이다 보니 글 쓰는 환경도 돌아보게 된다. 훌륭한 목수도 가끔은 연장 탓을 한다고 하니 나도 우리 집 연장 탓을 해보자면, 집에는 서재가 하나 있지만 서재로서의 쓸모보다는 자전거와 폼블러, 요가 매트가 떡 하니 주인 노릇을 하고 있고 그마저도 방치되어 겨울에는 난방도 제대로 틀지 않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물론 이것 말고도 일단 와이파이가 잘 끊기고, 허리디스크용 의자를 써야 하는데 1년이 지나도록 사야 한다 생각만 하고 사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런 까닭에 나의 글 쓰는 주 공간은 부엌 옆 높은 서랍장 위에 휴대폰을 고정시켜 놓고 브런치 앱을 켜서 서 있는 상태로 글들을 적는데 이마저도 가만히 서 있는 것이 허리에 무리가 될 때 있어 몇 문장을 쓰고 나면 뻐근해진 허리를 부여잡고 잠시 침대로 가 누워 있다 온다. 그래서 글의 흐름은 시도 때도 없이 끊기고 호흡이 가뿐하지 못한 문장이 많다. 과연 이 연장이 정말 누구도 읽지 않는 나의 글에 대한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단지 쓰고 있다는 행위에 집중하자치면 특별한 이유도 되지 못한다.


오랜만에 워드 파일을 켜니 좀 더 글다운 글을 쓰는 느낌이다. 아이폰 X로 브런치 앱을 켜서 글을 쓰다 보면 기껏 쓴 문장 하나가 화면에는 3~4 문장으로 길게 보여 서둘러 글을 마치는 기분이 없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이제야말로 아이패드 프로를 사야 할 때가 온 것인가. 멀쩡한 노트북을 옆에 두고도 부팅 시간이 느리단 이유로 자꾸만 엉뚱한 아이패드로 눈을 돌린다. 마치 그것만 있으면 아름답고 치명적인 소설 한 편은 뚝딱 써낼 수 있는 미모의 작가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물론 다들 핑계란 걸 눈치채셨을 거다. 아이 셋 낳아 기르며 기막히고 코 막히는 멋진 글을 쓰는 작가들도 많고 무려 박완서 작가님은 마흔의 나이에 작가 데뷔를 하셨는데 내가 뭐라고 이런 어쭙잖은 변명이나 늘어놓다니. 그러나 이런 핑계도 없으면 아무도 읽지 않는 내 글을 나마저도 품어줄 수 없다. 못나든 잘나든 내 마음에서 나온 글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아이들의 생명이 다한 것은 아니다. 언제든 내가 읽고 그 말들에 위로를 받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꾸준한 대화 같은 것이어서 나는 이들을 놓을 수 없다. 일기와 다르게 비교적 정제되고 통일된 문장으로 공개되어 타인에게 평가받는 글이라 사랑만으로 긴 호흡을 이어갈 수 없는 게 아쉽지만 이것이 브런치 글의 숙명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든 안 읽히든 물리적으로는 지구 상에 한 점의 데이터로 기록되어 있을 뿐, 그 후의 일은 글이 가진 운명대로 나아간다.



아무도 읽지 않은 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일은 나의 열등감을 적나라한 맨 얼굴로 마주하게도 한다. 라이킷 10개를 넘지 못하고 하루 10명도 읽지 않는 이 못난 글의 실체를 똑바로 보면 나의 부족한 점이, 파도처럼 휩쓸려 사라져 버린 자신감 없는 내가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일상과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평범한 내가 바라봐진다.

어찌 보면  슬픈 일이지만 다른 속성을 통해 나를 있는 그대로   있다는   나쁘지만은 않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만날  있다면 못난 점을 발견하고 자책하기 위해서아니라 되려  부분을  예뻐해 주고 안쓰러워해   있는 연민을 가질  있으니까. 이런 팍팍한 세상에서 나만큼은 나를   아껴주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본래의 나였으면 한동안 의기소침해서 브런치와 글을 멀리했을 것이다. 속상하고 화난 마음에 이미 발행된 글을 읽고  읽으며  아무도  보냐고 했을 텐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순응도 아니고 포기도 아닌 아무렇지도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조회수에 흔들리지 않고 그냥 다른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고 그저 시간을 보내는  다른 방법이라고 여겼다.


아무도 읽지 않으면 어때


이런 마음이었던  같다. 읽히든  읽히든 나는 계속  내려갈 뿐이고 이렇게 시간을 버리고 다고.


사는  힘들고 버거워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면 아이러니하게 뭐라도 하고 있어야 내게 주어진 시간을 빨리 보내 버릴  있다. 아아 시간을 죽여야만 생존할  있는 아이러니함을 어찌 설명할  있을까. 누군가에겐 축복처럼 여겨지는  시간을 나는 마구 낭비하고 흘려보내고만 싶은  못난 마음을. 언제부턴가  살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않은  평범한 인생을 버티는 방법은 빨리 시간을 써버리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무슨 일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누군가는 허무주의라 불렀고  다른 이는 그런 생각은 위험하다 했지만 나에게 이런 태도는 의외로 외부로부터 당할 물렁한 마음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어 어쩌라고 식의 성격을 닮게 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적용되진 않아도 적어도  가지 일들에 대해서는  쉬고 도망갈  있는 여유를 주었기 때문에 허무주의여도 좋으니 웬만하면 인생에  의미를 두지 말자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무도 읽지 않으면 어떠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쓴다.



지금도 우울한  출근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마저 어플을 켰다.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뭉쳐서 이것을 재료 삼아 썰고 다듬으며 나의 이야기를 지지고 여러분들에게 내놓는 글이다.

부디 나처럼 홀로 글 쓰는 일이 외롭고 고독한 분이 계시다면 우리 계속 써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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