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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Dec 06. 2017

밥은 먹고 다니니?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밥상에 정성을 들이는 일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땐 그냥 쉽게 먹을 수 있던 집밥이 결혼을 하고 나니 더욱 그리워지고 소중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주말엔 남편이 거의 밥을 차려주기도 하지만 평일엔 오롯이 집이 직장인 저의 몫이 됩니다. 


밥을 함께 먹는 사이. 식구라고도 하지요. 아이가 없으니 늘 남편과 저. 식탁에 둘 뿐입니다. 한 명이 일이 있어 앉지 못하면 혼자 덩그러니 혼밥을 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혼밥은 좀 더 쉽고 간편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밖에서 수고스러운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먹는 밥은 조금 더 정성스레 준비해 주고 싶습니다. 재료를 손질하여 국을 끓이고 밑반찬 하나 , 메인 반찬 하나 정도를 만듭니다. 개수가 얼마 되지도 않은데 시간은 후딱 잡아먹는 신기한 밥상입니다. 맛은 보장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잘 먹어주는 남편 덕분에 밥을 챙겨주는 일이 수고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부 관계를 가장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 자부하기도 합니다.


부부 사이는 참 이상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만나 각자의 부모님보다 오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요. 점 하나에 따라 '남'이 되고 '님'이 되기 때문일까요? 부부의 거리는 참 가깝기도, 멀기도 하여 오묘합니다. 좋을 때는 먼지 한 톨도 안 둘만큼 가깝다가도 싸우기라도 한 날엔 우주만큼 멀고 낯선 존재. 몇십 년을 함께 살아도 그에 대해 전부 알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알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겠지요. 당신의 노동을 이해하고 다른 점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면 순탄한 결혼 생활이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흔히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지만 로맨스가 없는 생활은 팍팍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싱거운 국에 소금으로 살짝 간을 맞추듯 두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소소한 애정 표현은 얼마든지 일상의 즐거움이 됩니다. 이는 좀 더 풍부한 결혼 생활을 지속시키지 않을까요?




"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평소 어머니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후배가 미리 약속도 없이 집에 찾아왔다. (중략) 결혼생활이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무언가 조언과 위로의 말을 청하러 왔기에 우선 가서 집안 식구들 밥을 해주어라 하며 보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그분의 결혼생활이 파경이 났다는 말을 듣지 못했고 훌륭하게 제 일과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가끔 그 생각이 나곤 한다. 어머니의 준엄한 말씀.

"가서 밥을 해주어라"

주변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남의 탓을 하면서 내 할 일을 하기 싫을 때 그 말씀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리게 된다. 

"




결혼을 하고 남편과 크게 싸운 날. 저는 화장실에 들어가 쪼그려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왜 그는 몰라줄까. 우린 너무 달라.'라는 생각을 하며 멍하니 있었습니다. 마침 막 저녁을 준비하던 중 싸우게 된 거라 해동되는 돼지고기, 소금에 절여지는 오이도 속이 타고 있었죠. 원망스러운 마음만 소란스러운 사이, 어디선가 위의 책 구절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서 밥을 해주어라' 저도 그때 왜 그런지는 몰랐지만 그 문장이 가슴에 퍼지면서 묘하게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하던 밥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남편에 대한 미움이 잠시 멀어졌습니다. '그냥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계속 이렇게 울어봤자 나한테 도움될 게 뭐 있어.'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길로 화장실에서 나와 오이로 소박이를 만들고 돼지고기는 삼겹살 구이로 만들어 서재에 있던 남편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화해의 제스처도 아니었고 먹고 떨어지란 화남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삼겹살을 구웠으니 먹어봐라는 아무 감정과 의미 없는 행동이었죠. 그런데 이게 어떤 마법을 부린 건지 남편의 마음을 수그러들게 한 뭔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격렬하게 싸우고 밥을 챙겨 오는 아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무서움? 의심? 이라기보다는 괜한 미안함과 머쓱함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밥을 챙기는 공간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의 밥을 챙겨주는 관계. 부모-자식 간이 아닌 다음에야 저절로 자연스럽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무와 강요가 섞여 있더라도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 살아갈 부부라면 꼭 지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에 당연한 관계는 없습니다. 요즘에는 부모-자식 간에도 유산 문제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남남이 만나 가정을 이뤘다면 서로 더욱 노력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먼저 잘 하면, 상대방도 노력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직접 상대방에게 말해야 합니다. 아무리 천생연분이라도 한 쪽만 잘하고 노력해서는 완전한 합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차근차근 서로의 리듬을 맞추고 합을 짜야 합니다. 부부란 팀워크로 공동의 가정을 함께 꾸리고 확장해 나가야 하는 동료입니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갖는 당연한 순서를 잠깐 비껴 나 두 사람만의 적당한 거리와 긴장감으로 건강한 부부 관계를 구축해 두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하면 다 그냥저냥 살게 돼 있다고 쉽게 말하지만 정작 얼굴 보고 사는 부부에게는 새롭게 알아가야 하고, 맞춰야 하고,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 때문에 사는 부부에게 어떤 가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타인의 시선으로 끌려가기보다는 우리 부부가 중심이 되어 결정적으로 가정을 이끌고 지켜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합니다. 배우자가 파트너로서 함께 해줘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부부 공동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를 정하고, 부부 각자의 삶의 목표도 함께 응원해 준다면 분명 팀워크력이 한 단계 올라갈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함께 숟가락을 들고 밥을 뜰 때 공유할 수 있습니다.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 앞에서 부부는 오늘도 조금 더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숨을 쉬며, 우주 속 작은 공간에서 서로의 노고를 나눕니다. 

결국, 결혼도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한 끼라도 반드시 챙겨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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