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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Dec 14. 2017

성실함이 고리타분한가요?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

[엄마의 도쿄]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니었다. 엄마와 나는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엄마는 자신이 걸어온 삶을 사랑했고, 좁고 허름한 가게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겼다. 


엄마를 위해 은 묵주를 하나 샀다. 은은 자주 만져주지 않으면 금세 녹이 슨다. 은 묵주를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매일 만지며 성모 마리아를 찾는 사람에게 필요한 선물이다. 엄마는 냉담자였지만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내가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엄마에겐 지킬 것이 있었다.

"



살림이란 단어에 얼마나 많은 행위가 들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고작 3년 정도 살림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집안일이고, 알면 알수록 복잡한 게 주부의 역할인 기분이 듭니다. 며칠 전 제가 브런치에 쓴 글인 '전업주부 씨, 명함 좀 주세요'가의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왜 그런가 보니 한 채널에 전업주부가 쓰는 용돈도 눈치가 보인다는 분위기의 제목이 많은 분의 클릭을 유도한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단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역시 많은 주부들이 화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과 가치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살림이란 단어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중에서 오늘 해보고 싶은 이야기는 '나만 아는 성실함'에 관한 것입니다. 혼자 양파를 까고, 청소기를 돌리며 늘 하는 생각은 '참 외롭다'이면서, 동시에 '나 참 부지런하다'는 뿌듯함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고 스스로 제가 할 일을 찾아 하는 것이니까요. 직장에선 회사 책상에서 혼자 외롭게 페이퍼를 작성했을지라도 뿌듯함은 잘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상사가 시킨 일이니까 딱, 그만큼의 수고스러움을 들였지만 지금은 제가 집안의 오너가 되어 이것저것 일을 지시하고 그것을 따르는 직원이 되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살림이지만 성실하게 이뤄냅니다.


모든 일은 태도에서 결정된다는 말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는 살림을 하면서 저 또한 참 저를 많이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이건 무가치한 일이 아니라는, 숭고한 희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부 공동의 생존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사명감을 살짝 얹기도 했습니다. 아마 저 스스로 끊임없이 이런 태도를 새롭게 갖고 유지했기 때문에 제 삶의 한 부분인 지금을 소중히 여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전업주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약간 차가운 것 같습니다.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는 직장인에 비해 하는 일이 뭐가 있냐고. 나도 회사 안 다니고 집안일만 했으면 좋겠다.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아냐. 애는 돈만 있음 그냥 큰다."라는 말들.

매체, 혹은 일상에서 심심치 않게 들어본 말일 것입니다. 따가운 말들에 상처받겠지만 또 왜인지 통쾌하게 반증을 날려주지도 못한다는 게 더욱 속상합니다. 아마 맞는 말도 있기 때문일 겁니다. 회사 생활의 답답함, 불안함, 스트레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가장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직접 들어보지 않아도 다 알게 되는 것이 부부니까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와 느낌으로 집안 곳곳에 나의 성실함을 떨어뜨려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산된 돈으로 가장 효율적인 소비를 고민하고, 아끼고 또 아끼면서 돈을 조금씩 부풀려 가는 건 부부가 함께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주부의 직접적인 업무이기도 합니다. 에어컨비와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혼자 있을 때는 더운 것과 추운 것을 묵묵히 견디는 우리가. 그저 편하게만 보이시나요? 

우리에게도 물론 짜증스럽고 복잡한 날들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홀로 어디론가 숨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치워도 치워도 티도 안나는 집안일을 계속 해내려면 나만이 붙잡고 버틸 것이 필요합니다. 녹슬지 않도록 은 묵주를 계속 돌립니다.


각자의 신에게 부지런히 은 묵주를 돌리며 기도합니다.


남편과 아이를 위해 정성스러운 음식을 차리고, 철 지난 이불을 빨고 정리하며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삶을 위해 성실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 여름의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와 매주 다가오는 분리수거는 너무도 귀찮은 일이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힘들게 일하고 온 배우자가 해야 할 일임을 알기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 몸을 움직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될 것이라는 어린 나의 꿈에서 멀어졌지만 불행하지 않은 삶을 소박하고 소소하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성실 속에는 부지런한 움직임 속에 자기 통제의 역할도 들어 있습니다. 불편한 타인의 시선을 마주하며 나의 가족과 집의 수명을 이어 나갑니다. 또한 나의 생활을 책임지고, 더 나아가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만듭니다. 성실과 노력. 정말 진부한 말이지만 결국 인생은 이 고리타분한 단어 위에서 더욱 단단해지기 마련입니다. 삶을 알아가는 데는 화려한 수식어구가 아니라 소박하고 평범한 단어에서 출발한다는 것.


살림을 하면서 알게 된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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