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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Nov 28. 2017

거꾸로 페미니즘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삶에서 몇 번인가 마주치는 중요한 단계에서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개의 사이트가 있습니다. 취직을 준비할 땐 구인 사이트를 제일 많이 들락날락거렸고, 직장을 다닐 땐 미용, 뷰티 관련 사이트를, 결혼 준비할 땐 예비 신부들이 공유하는 카페를 수시로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저는 살림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살림 블로거가 있는지 몰랐고, 다들 어떻게 이런 살림을 할 수 있을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예쁜 주방 도구, 없어도 되지만 왠지 꼭 있어야 할 것 같은 인테리어 소품들은 몇 컷의 사진 안에 담겨 저의 마음을 살랑살랑하게 만들어 주었죠. 아마 저 같은 사람이 꽤 많나 봅니다. 국내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리빙' 섹션이 따로 있어 개인의 홈 인테리어를 적극적으로 소개하여 여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합니다.


손수 유기농 잼을 만들고, 손바느질로 행주를 만드는 삶은 그 행위 자체는 소박해 보이지만 언뜻 느끼기엔 명품 가방을 드는 것과 같은 럭셔리의 분위기가 나는 건 왜일까요? 분명 미혼일 땐 몰랐던 것들이 저의 살림을 꾸리면서 묘하게 빠져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왕이면 예쁘고 깨끗하게. 예전 우리 엄마들이 했던 것처럼 이 아닌 더욱 적극적으로 살림을 살리는 것. 요즘 젊은 주부들의 트렌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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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와이프 2.0]

LA에서 잘 나가던 여성 변호사, 직장 때려치우고 근교 작은 텃밭을 일구며 행복하게 사는 이유는?

뉴욕에서 잘 나가던 커리어우먼이 모든 것을 접고 시골로 내려와 수제잼을 만들고 뜨개질을 하며 소소한 용돈을 버는 삶을 선택한 이유는?


전통의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이 밖으로 나가 일하기 위해 이뤄졌던 것에 비해, 요즘의 페미니즘은 현대의 여성들이 전통의 여성 역할을 지금 시대에 맞게 수정하고 보완하여 따뜻한 집을 만들기 위한 여성의 노력을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하우스 와이프 2.0세대 블로거들은 이 시점에 가사가 화려하게 부활하는 데 있어 독특하면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전통적인 여성의 일을 <멋진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포틀랜드에 사는 블로거 린은 <내가 어릴 때에는 가정주부만큼 우습게 들리는 단어는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굳이 말 안 해도 누구나 다 아는 <살림살이는 하찮은 일이다>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제는 거기서 한 발 앞서 나가서 <여성의 일은 소중하다> 시기가 왔어요. 나는 나의 블로그도 그런 목소리를 낸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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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던 책입니다. 결혼 후 초기 전업주부로서 엄청난 자존감 하락으로 매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궁리를 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제목이 특이해 빌려 본 책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습니다. 주부들이 스스로 살림에 <멋진> 수식어를 붙여준다니. 특이하지 않나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바꾸려는 페미니즘이 아닌,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되 좀 더 멋지고 폼나는 주부의 일을 표현하는 삶. 과연 인생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 달라진다더니. 이것이야말로 제가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지향점이었습니다.


 특히 블로그라는 매체는 주부들이 이런 생각을 몸소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 특별한 통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만 알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통해 직업적 성취를 대체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요즘 젊은 주부들은 대부분 직장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직업 성취욕이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직업을 그만두고 집안일을 책임져야 한다면 이런 성취욕이 충족되지 않으니 블로그로 소통을 하면서 자신이 멈추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는 다른 종류의 성취욕을 맛볼 것입니다. 그러면서 살림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든 것들을 보여주고 무가치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주로 방문하는 블로그는 단연 살림 블로그입니다. 그곳에는 직접 차린 정갈한 밥상과 반듯하게 다려진 옷들, 제 자리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주방의 모습 등 전반적인 집안의 모습이 보입니다. 때론 그 안에서 건진 하루의 성찰, 소소한 이야기 등도 함께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제가 하고 있는 집안일이 참 예뻐 보입니다. 일단 보기에 예쁘면 정성스럽게 느껴지고 가치가 올라갑니다. 베이킹소다를 풀어 뜨거운 물에 행주를 삶아 그 행주를 탁탁 털어 뜨거운 햇볕 아래 잘 말리는 일이 근사하게 보입니다. 바로 이런 게 살림의 재미겠지요.


이는 적극적으로 우리 주부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우리가 스스로 또 다른 자존감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애쓰다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라고 합니다. 비슷한 말로는 버둥거리다, 수고하다, 노력하다, 공들이다, 매진하다, 진력하다 등이 있지만 어쩐지 살림이란 단어에 잘 어울리는 단어는 '애쓰다'인 것 같습니다. 언뜻 보이기엔 쩔쩔매며 안 되는 것을 꾸역꾸역 하는 모습이 연상되지만 집안일이라는 게 아무리 사진 안에서는 예쁘게 보일지라도 결국은 수고스러운 노동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가정을 살피고 집 안을 다스리는 게 우리 주부 일의 목적입니다.


물론, 애쓰는 삶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는 것이 진정한 살림의 행복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블로그에 올릴 예쁜 사진을 찍는 것, 또 다른 누군가는 청소 후 마시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또 누군가는 필요한 살림 용품을 사는 것.

애쓰는 삶이 예뻐 보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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