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집한 든든한 말
심심하면 툭 읽는 취미가 예전에 쓴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매일 짤막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십 년 다이어리를 사용하고 있어 별로 어렵지도 않은데 유독 작년의 칸칸에는 '힘들다, 우울하다, 그만두고 싶다, 불안하다, 가슴이 뛴다, 이게 공황장애 증상인가?'하고 쓴 내용들이 많았다.
마음에서 시작된 지옥 같은 하루를 견디고 집에 돌아와 한숨으로 내뱉는 말들이었는데 이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머리와 가슴에 안개처럼 남는 하루의 불안들을 쏟아낼 수 없었다.
날마다 그런 일기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지금은 회사를 그만둔 팀장 때문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가 나에게 큰 잘못을 한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에는 그가 말하는 모든 말들과 숨소리, 눈빛 또한 상처였다. 아마 내가 그를 너무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은 행동하나에도 크게 반응했던 것 같다. 그런 상처를 하루 종일, 그리고 일주일 내내 갖고 있다가 억지로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눌러 몸과 마음속에 꾸역꾸역 소화시키는 일이 많았다.
사무실에서 조용히 일하다가도 가슴은 한 번씩 이유 없이 쿵쾅거렸다. 설렘이 아닌 불안으로 인한 두근두근 떨림이었다.
무심히 건네는 일반적인 인사에도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단 1분이라도 같이 있기 싫어 지하철역에서 시간을 보내다 출근하는 때도 있었다. 나아질 거라고 스스로 가스라이팅을 하며 지내다가 어떤 날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점심 먹은 걸 화장실에서 다 게워내었을 때에는 휴가를 냈다.
그렇게 작년 여름은,
거대한 벽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점프 실력이 없어 제자리에 뱅뱅 돌고 있는 게임 캐릭터가 된 것 같았다.
도망.
유일한 동아줄
한 달에 한 번씩 내는 연차는 말하자면 '도망'이었다.
그쯤 스스로에게 가장 실망했던 포인트가 ‘그만둘 용기가 없다'는 사실이었는데 직장생활을 끝내고 챙겨야 할 경제적인 목록에 미리 압도당해 버린 나는 '나만 참으면 된다'라고 설득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휴가를 내고 마치 퇴사한 것처럼 하루를 살다 왔다.
퇴사하면 보낼 하루를
미리 살았어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뉴스 좀 보다가 남편 출근을 배웅하고 아침 해가 점점 차올라 햇빛이 동서향에 닿은 서재에 가득 찰 때쯤 책과 기도문을 읽으며 오늘 하루를 잘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서는 밥과 된장찌개로 아침을 먹고 오전 9시, 도서관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집에서 내려온 라테 한잔을 텀블러에 담고 아이패드를 챙겨 3층 도서관 열람실에 들어오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풍경을 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의로 아침 일찍 자신만의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을 보는 일은 하루를 시작하는데 많은 용기와 영감을 준다.
아차, 늦었구나 싶어 디지털 열람실로 발을 재촉한다. 이곳은 책 읽기는 안 되고 DVD 영화를 시청하거나 인터넷만 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인데 노트북으로 각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결연하다.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부터 중년의 아저씨들까지. 이 사람들 틈에 끼어 나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선 아이패드를 연다.
쓰다 만 나의 작은 세계를 지으러.
소설 쓰는 작가지망생으로 사는 하루
회사를 그만두면 살고 싶은 하루하루가 바로 이런 모양이었다. 최대한 돈을 아끼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작가지망생의 하루를 보내는 것.
어떤 날은 음악이 흐르는 풍경 좋은 카페에서 글을 쓰고 싶기도 하겠지만 어떤 모양을 갖추든 일을 그만두고 당장 보내고 싶은 하루는
'하고 싶은 일이지만 큰돈은 못 벌고,
열심히 해보지만 단기적으로 성취감은 못 느끼고,
거의 무용에 가까운 일일지라도
티끌의 죄책 감 없이 순수하게 해보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이었다.
이 마음이 뭘까 골똘히 생각해 봤다.
단순히 '도망'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정말 맞나?
앞뒤 상황 재지 않고 있던 자리에서 이탈해 버리는 이기심에 가까운 심정일까?
아직 정확한 표현은 찾지 못했지만 나는 저때의 시간을 스스로 연출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삶을 꾸릴 수 있는가를 테스트해 본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막연하게 회사를 그만두면 불행하기만 할 거라는 굳은 믿음을 뒤로하고 퇴사 후에도 충분히 좋은 날을 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어보는 일이었다.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불행을 진짜로 믿지 말고, 지금 내가 하는 행동과 보내는 시간을 믿어보자고 조심스럽게 점쳐보는 시간이었던 거다.
형님, 저는 내일 세상이 망해도 괜찮아요.
제가 너무 빠른 시간에 인기와 명예를 얻었거든요.
그래서 번아웃도 굉장히 빠르게 왔어요.
아마 제가 역대 최단기 번아웃을 맞았을 거예요.
근데 언제 일이 다시 즐겁기 시작했냐면 잘 때 문득 든 생각이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 아니야?’
그러면서 내일 망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내일 일이 망해도 할 게 있어요. 저는 소방관 준비할 거예요.
과감하게 떠날 수 있는 장치 하나를 마련해 놓으니까 이게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닌 거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을 열심히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후회 없을 만큼 모든 걸 쏟겠다는 거지. 그리고 떠날 때 한 점의 미련 없이 가겠다, 뭐 이런 마음인 거죠.
<인생 84 유튜브, 인생취미반 중 덱스님의 말에서>
아, 나는 도망이라고 생각한 일을 덱스씨는 ‘과감하게 떠날 수 있는 장치‘라고 표현했구나. 우리는 비슷한 소망을 가지고 이렇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네.
내일 망해도 된다는 생각은
벼랑 끝에서 떨어져도 촘촘함 그물망에 안착하는
안전장치 같은 마음이었다.
여기서 망해도 다른 일을 하면 된다는 마음은
단순한 낙관도 아니고 무책임한 자세도 아니고 오히려 건강한 거리감과 자존감이 만들어낸 마인드라고 느껴졌다.
물론 그 다른 일이 나와 맞냐 안 맞냐를 따지는 건 또 다른 문제지만 인생의 선택을 앞둔 시점에서 따져 볼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직업을 내 세계의 전부라고 착각해 자꾸 쪼다처럼 이 일에만 매달리면서 잘 되게 안달복달하는 마음을 거둬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리에겐 언제 망해도 상관없다고 용기를 주는, 심적으로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이 일에 실패해도
나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며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은 사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열심히는 하되 망했다고 끝은 아닌 자세.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라 안 되면 다른 삶도 있다는 여유를 품는 마음.
역설적이게도 이런 마인드가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더 오래, 그리고 끈질기게 잘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지금의 노력도 덜 무겁고,
실패도 덜 치명적일 거다.
그동안 저축해 놓은 돈이 많다면 계좌 잔액이 비빌 언덕이 되겠고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던 취미를 더 디깅해 볼 수도 있는 거고, 나처럼 최소한의 생활비를 쓰면서 도서관에 앉아 글을 쓰며 사는 작가의 삶을 미리 체험해 보는 것도 여하튼 비벼볼 언덕이 된다.
나는 내가 살고 싶은 하루를 미리 살아봤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내일 망해도 괜찮다는 믿음이 생겼다. 왜? 나는 미래를 미리 살아봤으니까.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없어도, 당장 고정비가 저금에서 뭉텅이로 빠져나가더라도, 단 일주일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삶의 모양이 있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기 마련이라서.
우리에겐 마음이 필요하다.
내일 망해도 괜찮다는 믿음.
나는 어떻게든 살아내고야 만다는 절대적 믿음.
당연히 회사를 그만두고 보내야 할 하루들은 연차로 지낸 며칠처럼 달콤하지만을 않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날들을 비빌언덕으로 생각해 용기를 내보고 싶다.
여기를 떠나거나,
여기를 더 지켜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