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내년 다이어리를 꺼냈어
2026년도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사실 11월에 미리 사두어 일찌감치 여러 글들을 끄적여 놓았다. 왜 꼭 11월만 되면 다음 해의 다이어리가 갖고 싶은지 모르겠다. 나이 먹는 건 그렇게 싫어하면서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내 나이는 상관이 없나 보다. 미리 한 해의 계획을 세워두는 스타일도 아니고 어떤 목표나 다짐 같은 걸 적어두지도 않는 편이다. 혹 있다면 나의 생일 정도만 표시할 뿐. 그 정도로 다이어리는 스케쥴러의 역할보단 그냥 내 마음대로 적는 일기장과 공책 같은 것이다. 손에 잡히면 뭐든 쓰고 마는.
이번 2026년 다이어리는 처음 들어본 브랜드의 것을 골랐다. 일본 제품의 호보니치윅스다. 그동안 살면서 몇몇 개의 다이어리를 써보니 내가 어떤 재질의 종이를 좋아하고 어떤 필기구의 궁합을 맘에 들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종이가 얇아 한 면에 빼곡히 볼펜으로 글을 적어 다음 장으로 넘기면 오돌토돌하게 튀어나오는 촉감을 좋아했다. 앞장과 뒷장의 글이 맞닿아 종이 한 장이 너덜너덜해지더라도 그 엉망진창의 모습이 이뻐 보이는 사람이었다. 무엇을 휘갈겨 쓰던 어떻게든 종이와 펜의 감각이 물 흐르듯 이어지고 한 권의 다이어리를 다 적으면 종이가 펜의 부감을 안아 두툼해지는 촉감을. 그것을 사랑했다.
그런 면에선 호보니치윅스는 꽤 잘 맞았다. 어떤 펜을 쓰느냐에 따라 종이는 그의 세계를 온전히 내어주기도, 일부만 허락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궁합 좋은 펜을 빨리 만나 여태껏 즐겁고 신나게 기록의 세계에 머무르고 있다.
호보니치윅스를 사고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쓰고 있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탐색해 보았더니 한 권씩 쓰는 종류를 다르게 해 치열하게 적는 사람도 있고, 구분 없이 그저 한 곳에 모든 걸 빼곡히 기록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찾아볼수록 너무 궁금했다. 다들 뭘 그리 열심히 쓰는지.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 걸까?
왜 사람들은 굳이 손으로 펜을 쥐고 종이 위에 적는 걸까? 간단하게 키보드를 쓰면 톡톡톡 빠르게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데. 적고 틀리면 다시 수정 테이프로 지우거나 볼펜으로 지익 그어 표시하는 일을 정성스럽게 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은 무엇일까?
명상 음악을 들으며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자세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손으로 펜 끝을 눌러 적는 행위는 자신을 점검하면서, 동시에 내면으로 더 내면으로 에너지를 불러오는 건강한 수행법이 되었다. 그날의 기분, 일어났던 사건, 느꼈던 감정, 유일하게 들었던 좋은 말, 아니면 반대로 하기 싫었는데 내뱉었던 말들을 머리에서 꺼내 손으로 적고 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풀린다.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빼곡히 적는 마음도 좋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하지 못할 말을 쓰는 것도 좋다. 이 모든 일들은 쓰면서 몸과 마음을 종이 위로 끌어들여 스스로 치유하는 공짜 명상이 된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리고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는 도시인들의 수행법이다. 혹은 기도가 될 수도 있겠다. 바라는 바를 적고 다짐하면서 머리와 몸에 새기는 일이니깐.
종종 책이나 잡지를 읽다가 글 쓰는 사람들의 루틴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들은 글 쓰는 일의 장점을 너무도 명확히 말했는데 공통적으로 몰입의 순간을 황홀하게 경험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글이든 쓰다 보면 그 시간에 매몰되는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있다고 격려하며 현대인들이 왜 자기 성찰과 반성의 의미로 글을 써야 하는지 설득한다.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또한 반대의 감정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되려 글을 쓸 때마다 나를 어떤 경계에 자꾸 데려다 놓는 기분이 들어서다. 뭐랄까. 쓰려고 마음먹을수록 오히려 글 밖을 서성이면서 기록의 세계에 들어가기 어려운 마음이랄까. 경계는 늘 아슬아슬하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남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 사이를 오가며 감정이 흐트러진다. 그러나 결국 그 경계는 기록하는 행위를 더욱 가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음을 다이어리에 적으며 알았다. 결국 종이에 무엇을 남기는 행위는 경계를 서성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모호한 감정에 선을 긋고 자만했던 행동에 경계를 다시금 지어주는 일들이 기록하는 손끝에서 이루어졌으며 썼던 글을 다시 고치는 마음도 경계를 허물었다 다시 그으며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이었음을. 직접 써보며 알았다.
나의 다이어리에는 해야 할 일을 적는 스케줄러와 책 읽고 남은 감정을 적는 독서 노트, 사사로운 일기장이 짬뽕되어 있으며 개인적으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재테크 공부 기록까지 더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종류별로 따로 빼서 더 자세하게 적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귀찮은 성격이 큰 몫을 했다. 어느 장에는 기도 구절을 적고 그 아래줄엔 내년에 관심 있게 보고 싶은 주식 종목을 적었다. 그리고 또 맨 뒷줄엔 브런치 글감목록을 쓰고 갑자기 그날의 일기로 마무리. 누가 보기라도 하면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인간인가’ 할 정도로 내용이 뒤죽박죽이지만 어쩐지 이 모든 걸 기록하는 일은 나를 더 깊이 알게 되는 퀴즈쇼 같다는 느낌이 든다. 기도하는 사람도 나이고 주식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도 나이며, 브런치에 말랑말랑한 에세이로 빵 터뜨리고 싶은 사람도 결국은 나다. 십자말 풀이를 하듯 질문하고 정답을 적는 기록의 세계에서 스스로에 대해 편견 없는 퀴즈를 푸는 것이다. 자신의 일관성과 모순성을 발견하고 그 지점에 대해 끝까지 고민하는 것. 거기서 자기 성장이 일어난다. 성장은 외부 자극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내 힘으로 일궈내야 하는 부분이 상당한데 가령 인내심, 결단력 같은 것들이다.
현대인들에게 현재 가장 결핍된 게 이 자기 결정력이라고 한다. 요즘엔 많은 콘텐츠와 영상, 숏폼을 보며 정보를 얻지만 그걸 자신의 상황에 활용하는 능력은 한참 떨어진다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언어로 치환하지 못해 남들이 말하는 것을 마치 자신의 정답인 것처럼 여긴다고 하는데 뭐든 빨리 습득하고 이해하고 결정함으로써 생기는 결핍인 것이다.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거나, 실패한다. 거기에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이 망할 놈의 세상’하며 인생을 후회하는 게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에게 묻고 답하고 또 질문하고 또 대답하고, 그것에 대해 적고 또 적으며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기록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자신의 언어를 획득할 수 있다. 나의 언어를 갖는다는 건 세상이 지닌 결을 훨씬 다채롭게 들출 수 있는 자격을 갖는 뜻이며, 들춘다는 건 다양하게 바라보고 해석하며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능력을 획득하는 것과 같다. 이 능력은 지금 시대에 어마무시한 힘이다. 우리는 이 능력을 만들어야 한다. 다만 시간이 걸리고 인내가 필요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동영상 스킵처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손과 펜을 들어 적자. 모두에 대하여, 모든 일과 나 자신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