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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Nov 03. 2019

숨은 오타 찾기

질투라는 이름을 숨기고

 지인이 책을 냈다고 연락이 왔다. 글 쓰는 걸 본 적도 없고 평소엔 굉장히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이 무슨 책을 냈을까 의아하던 차에 어느 북클럽에 가입하여 소규모로 책을 출판했다고 알린 것이다. 생각도 못한 소식에 나는 책의 궁금함 보단 질투가 제일 먼저 났다. 평소 책을 내고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내가 브런치에 몇 편의 글을 발행하고 있을 때 그분은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책을 냈다는 사실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 상대로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람에게 달리기를 추월당한 것 같은 패배감이 내 마음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곧 보자는 연락을 마치고 그 몇 주간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다. 무슨 이야기를 썼을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잘 팔리려나..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결국 근본적인 물음은 '얼마나 잘 썼을까'에 있었다. 문학적 소양은 갖추었는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문장이 있을지에 대한 원초적인 시샘이었던 것이다. 얼른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과 읽어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부딪혔다. 매우 궁금하긴 하지만 막상 읽으면 정말 내가 놀랄 만큼 잘 썼을까 봐. 일도 잘하면서 글까지 역시 잘 쓰는 베스트셀러의 작가 반열에 오를까 배가 아팠음을 고백한다. 나도 참 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그런 내가, 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우리는 약속을 잡고, 만나자마자 서로의 안부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가방 속에 흘끗 나온 책머리가 자꾸 신경이 쓰이면서 드디어 책을 건네받았다. 얇은 에세이 형식의 책이었는데 표지가 깔끔하고 제목이 신선했다. 평소 지인이 좋아하는 책 속의 캐릭터에 대해 쓴 글이었다. 짧은 단편 위주의 글이었지만 그동안 지인이 고심했던 문제를 솔직하게 담아냈다. 사랑과 결혼, 일상의 단조로움, 운명에 순응하는 태도를 그만의 시선으로 고백하는 모습은 어쩐지 나와도 닮아 있어 읽는 동안 편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 나에게 괜한 머쓱함도 밀려들었지만 아마 진정 내가 재밌게 읽은 이유는 그 책의 숨은 오타를 찾아내며 어떤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맥락에 맞지 않은 문장과 주어와 술어의 불일치를 몇 개 찾아내며, 그의 부족한 실력을 확인한 안도의 마음이랄까? (저의 찌질함을 인정합니다ㅠ)


 책을 쓰며 많은 걸 배웠다는 지인의 말에 나만 제자리에서 도태되고 있는 건 아닌지 많이 불안했지만 숨은 오타를 찾아내며 아직 진정으로 책을 내기엔 우리 함께 멀리 있다는 안심이 들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진짜 이 글을 쓰면서도 나란 인간이 너무 치졸해 보여도 내 마음이 이렇게 생겨 먹은걸 솔직히 말해야겠다. 그래도 일하면서 퇴근 후 글을 다듬고 책인 물성을 만들어 낸 그가 멋있어 보였고 글을 쓰며 스스로가 많은 치유를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선 나보단 그가 확실히 몇 걸음 더 앞서 걷고 있겠지만 그걸 인정하니 나도 앞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겠노라 자극이 된다. 일상을 살아내다 보면 이 자극은 또다시 옅어지겠지만 어쨌든 이 소식에 이렇게 서둘러 글 하나를 써보는 시간을 가졌다. 자극은 내 마음을 뾰족하게 찌를 때도 있고 그 감각의 깊이만큼 어설프게나마 나의 무엇을 만들게도 한다.


안 해 본 건 쉬워 보인다.



 아마 책을 출판해보지 못해서 그의 능력을 쉽게 질투했을지 모르겠다. 표지 디자인을 고르고, 목차를 수정하고, 글의 분위기와 채도를 조절하는 수많은 과정을 보지 않아 책 자체만 평가하는 일이 쉬웠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충격을 건강한 자극으로 체화하기 위해 떠오르는 단어를 수집하고 몸이 떨리는 문장을 필사한다. 그 문장에 오래 머무르며 나는 언제쯤 그런 필력에 도달할 수 있을지 헤아려 보고 훗날 손에 쥘 나의 책을 상상해본다. 결코 생각만 해서 될 일은 아니기에 옆에 있는 건강한 자극들을 모으고 그 힘으로 서투른 말을 적는다. 자극은 늘 내 옆에 있고 내 삶의 여러 오탈자를 고치는 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그에게도 내 책을 소개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의 숨은 오타를 찾아 오늘도 성실하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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