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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May 02. 2019

졸혼이 유행인가요?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요 며칠 남편에게 화를 냈다. 회식인걸 뻔히 알면서도 술 마시는 그가 싫었고, 그를 불러내는 상사가 미웠다. 엄연히 퇴근 후 보내는 개인적인 시간에 굳이 전화하는 상사, 마지못해 나가는 남편이 미워 참다 참다 틱틱 성질을 내고 외롭다고 징징거렸다.


결혼을 결심하기 전,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한 케이스가 바로 나다.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음 하나로 여태껏 살아왔다. 하지만 막상 살아 보니 불쑥 생기는 여러 상황을 제어하지 못하면 과연 우린 부부인가, 룸메이트인가 헷갈린다. 기껏 살림을 합치고 으쌰 으쌰 살아보려는데 밥도 따로, 잠도 따로 자는 날이 많고 주말에서야 한 방향으로 앉아 TV를 보면 부부 같은 룸메인 듯 느껴진다. 이렇게 사는 게 나쁘단 뜻은 아니지만 이럴 거면 뭐하러 굳이 식장에서 사랑의 서약을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을 공표했는지 싶다. 조용히 둘이서 연애하며 살아도 충분했을 텐데..


결혼은 연애의 연장이라고 해도 그보다 훨씬 무게가 깊다. 법적 효력을 기반으로 부양, 책임, 신뢰가 얹어지고 그 곁다리에 양가 가족이 자리 잡으면 알싸한 사랑보단 전투 속 동지애가 서서히 피어오른다. 사랑만큼 서로의 신뢰가 두터워지고 '우리 함께' 마인드가 실천되어야 유지 가능해지는 것이다.


엄마는 아빠와 싸우고 난 뒤 소파에 쪼그려 자는 아빠에게 꼭 이불을 덮어 주셨다. 몇 번 그 모습을 바라봤던 나는 이상했다. 그렇게 서로 못 잡아먹을 듯이 싸웠는데 왜 이불을 덮어주지? 난방을 확 꺼버려도 모자랄 판에?


결혼을 해서 보니 아주 희미하게 당시 엄마 마음을 알 것 같다. 그건 사랑해서가 아니라 어쨌거나 함께 삶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인류애 때문인 것을. 내 마음 제일 몰라주는 무심한 남편이지만 딸에겐 한 없이 다 퍼주고, 내 가족 밥 굶기지 않겠다 일하는 가장의 굽은 등을 가진 아빠였다. 죽을 만큼 싫어도 어쩔 수 없는 안쓰러움이 남는 사람. 마주 볼 땐 으르렁 거려도 뒤돌아서면 서로를 보호하는 동지일 수밖에 없는 사람. 엄마에겐 그런 게 부부였다.


부부는 감정의 끝과 끝을 달리는 사이다. 한 없이 냉정 해지는 남이 되다가, 또 한 번 끓어오르면 데일만큼 가까워지는 관계여서 단단하면서도 실로 깨지기 쉽다. 부모 자식 관계면 어느 한쪽 마음이 쏠려도 아쉬울 게 없지만 부부는 다르다. 한쪽만 희생을 쏟으면 결국 바닥을 보인다. 어차피 남으로부터 출발한 사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는 태생부터 이렇게 복잡한 듯 단순하다.


한창 카피라이터를 꿈꾸던 시절, 이외수 님의 책을 읽고 필사를 할 정도로 좋아했다. 그런데 문장으로 느꼈던 작가의 모습은 TV에서 볼 때완 너무도 달랐다. 뒤에서 묵묵히 30인분의 밥을 늘 짓고 있었던 아내. 머리 빗기고 입히고 먹이고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아내의 케어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 같다.

'삶과 글이 다를 수도 있구나.'





[우먼센스- 이외수 부부 졸혼 기사 중 전영자 님 인터뷰]


Q. 다 행복했고 다 지겨웠다.

가난했고, 술에 취해 있었고, 다른 세상 사람이었고, 혼외자까지 있었어요.

그럼에도 헤어지지 않았던 이유가 있나요?


A. 아마도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또 남편이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어요.

그때는 누구도 이외수를 알지 못했고, 너무나 가난했죠. 그래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혼외자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도, 이 사람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였어요. 남편을 죽이고 싶다가도 아이가 이왕 태어났으니 명석하고 잘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위의 인터뷰 글을 읽으며 얼마나 가슴이 답답했는지 모른다. 이혼을 원했지만 결국 졸혼을 합의했다는 이 여성의 삶을 과연 텍스트만으로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옆에서 우리 엄마가 저렇게 살고 있으면 난 어땠을까, 과연 나는 부부란 이름으로 어디까지 인내할 수 있을 것인가. 남편이 가 있는 술집 마담에게 호탕하게 대응하는 아내의 마음을 한 번쯤이라도 생각해 보았더라면, 예술가란 직업을 등에 업고 저 혼자 잘난 맛에 사는 남편을 끝까지 참고 보듬어 살아가려 한 아내의 마음을 알고자 했다면 인연은 이어졌을까. 모든 걸 운명이라고 생각했다는 아내 분의 태도가 산처럼 크게 보였다가, 한 편으론 무너져 내린 자존심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제라도 홀로서기에 나선 전영자 님에게 큰 응원을 보낸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억지로 이해하려 하면 모든 사람에게 인정은 받을지 몰라도 나 자신은 투명해지는 법이다. 졸혼이 유행이냐 빈정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길을 찾겠다 나선 용기에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런 와중에도 40년 이상을 한 몸같이 지낸 남편이기에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터뷰 글이 괜히 슬프다. 죽도록 싫지만 또 불쌍해 보이고, 나에게 다정한 면모도 있는 사람이지만 그게 지겨울 때도 있는...


연애와는 아주 다른 부부라는 감정. 서로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눈 끝을 겨눌 때 가끔 이혼을 생각해 본다.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때를 잊어버리고 감정적으로만 몰입하다 보면 우린 너무도 쉽게 타인이 된다.


결혼 생활에서 중요한 걸 꼽으라고 한다면 '낄끼빠빠'를 말하고 싶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라는 은어에서 '낄 때 끼어야'한다는 게 포인트다. 우린 가족이니까 말 안 해도 대충 알겠지, 부부인데 뭐 어때, 애 엄마가 혹은 애 아빠가 다 알아서 하겠지라고 빠지기만 하면 부부는 별 수 없다. 낄 때는 반드시 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는 당신의 이런 점이 좋고, 반면에 어떤 점은 못마땅하고, 싫고, 고쳐 줬으면 좋겠다. 당신도 내게 그런 점을 말해다오.'


우리 부모님을 봐도 낄 때 잘 안 껴서 의사소통이 잘 안 되신다. 하지 말아야 할 말만 죽어라 하고 꼭 해야 할 말은 삼키니 나중에 진심을 말해봤자 와 닿을 리 없다. ‘평생 내 맘에 못된 말로 못 박아 놓고 이제 와’란 서운함만 그득한 걸 보면 분명 뭔가 잘못됐다.


이왕이면 결혼 생활을 오래 기분 좋게 지속하고 싶다. 힘든 상황이 오면 유연하게 잘 견뎌내고, 기쁠 땐 둘이 얼싸안고 맘껏 즐기고 싶은 바람이다. 보호자가 아닌 동등한 사람 대 사람으로 삶을 공감하고 여유 있게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툴툴거린 이후로 남편은 퇴근 후 전화를 꺼놓고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같이 운동도 가준다. 본인 딴에는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런 진심이 느껴지기에 나도 마음을 풀고 공감을 확장시킨다. 상사니까 어쩔 수 없겠지, 본인도 싫겠지만 밥 굶지 않고 살려니 해야지 어쩌겠나.. 안쓰러울 때가 있다.

그저 앞으로도 뭉근하게 살아가고 싶지만 평생 이혼 안 할 자신은 없다. 긴 레이스다. 우리 둘 사이에 거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떨어지기도 하고 다시 가까워지기도 또다시 멀어지게도 놔두고 싶다. 이혼이면 어떻고 졸혼이면 어떤가. 부부란 결국 사람의 문제이지 형식의 문제가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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