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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Jul 29. 2019

생활인의 집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결혼 후 첫 살림살이. 텅텅 빈 냉장고에 뭘 넣을지 몰라 물, 콜라, 계란 한 판을 채웠다. 냉동고에는 멸치 똥을 딴 소분한 국물용 다시팩과 얼음 몇 개를 넣었던 것 같다. 살림이라는 걸 정확히 몰랐던 시절, 엄마 냉장고엔 늘 뭐가 가득 있었는데 어쩐지 나의 냉장고는 허연 입김만 푹푹 뿜는 가난한 곳이었다. 뭐가 필요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랐던 음식 재료와 주방용품이 점점 멀어지면서 살림 흥미를 당긴 건 인테리어였다. 허전한 벽을 액자로 꾸미고, 예쁜 선반에 아기자기한 것을 올려놓는 일은 냉장고를 채워 넣는 일보다 쉬웠고, 생존 살림보다 꾸밈 살림이 재밌던 때였다.  

분명 집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생활공간이지만 어쩐지 연출만 잘하고 싶었던 신혼 초기. 계절마다 소파 쿠션 커버를 바꾸고 꽃과 화병을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 방충망을 뚫고 들어오는 초파리 하나도 용납 못했던 그 시절. SNS에 업로드할 '있어 보이는 집'을 만들어 낼 동안 행복하고도 버거웠던 순간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강박으로 쓸고 닦으며 계절에 따라 변화를 줘야 한다는 주부의 역할이 지나쳤을까? 블로그와 인스타에선 밥 한 끼를 먹어도 그릇이 완벽히 세팅되어 있고, 옷걸이도 화이트로 통일, 옷마저 비슷한 색감이 촤르르 걸려 있었다. 사진으로 보는 건 참 쉽고 예뻤지만 막상 내가 직접 하려니 귀찮았다. 해볼 데까지 하다가 애초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걸 인정했더니 집이 훨씬 편안해졌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효율성을 따지게 된다. 일일이 손으로 딴 멸치 다시팩 대신 마트에서 산 조미료가 놓여 있고, 냉장고엔 호박, 버섯, 두부, 샐러드용 채소같이 내 손에 익숙한 재료가 채워져 있다. 쓸 줄 몰라 어정쩡했던 재료와 물건이 착착 제자리를  찾아가고, 버겁다 느낀 요리의 과정을 과감하게 줄인다.


그러는 사이 나는 생활인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바닥에 깔린 먼지는 주말에 몰아서 치우고 화장실 청소도 수줍은 핑크빛 곰팡이가 얼굴을 내밀랑 말랑할 때 시작한다. 그래도 식물에 물 주는 날은 잊지 않고 달력에 동글뱅이 치면서 내 딴에는 정성껏 집을 돌본다. 베란다의 결로, 장마 기간에 어김없이 일어나는 벽지의 울퉁불퉁한 얼굴, 틈새가 맞지 않은 방충망은 늘 걱정거리지만 그것 또한 여름 풍경 중 하나로 바라보면 아름다운 집의 민낯이다.


결혼을 하고 생긴 첫 집이어서 애정이 과했을까? '생활'이란 밋밋한 일상보단 '로망'이란 필터를 켠 집에 완벽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욕심이 앞선 것 같다. '있어 보이는 것들'을 집 안에 둠으로써 내가 마치 뭐라도 된 사람인마냥 좋아했으니까. SNS용 사치와 허영이 깃드는 반짝이는 순간이 분명히 필요한 시절이었지만 지금의 집이 더 좋은 이유는 나만 아는 ‘집의 분위기’가 나를 안정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저기 양말 벗어 놓은 거실에 오후 5시에 들어오는 햇빛은 마음을 간지럽히고, 조붓한 화장대 옆 작은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 곳은 하루를 시작할 묵직한 힘을 준다. 아직 포기하지 못한 곳곳에 나의 로망 포인트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생활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고졸한 멋이 있는 집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배수구마다 뿌려진 치약과 뜨거운 물의 화한 냄새가 온 집안을 훑고 다녀도 그런 우리 집이 이제는 편하다. 싱그런 디퓨저 향기보단 비 오고 난 뒤 꿉꿉한 냄새가, 오랜 시간 방치한 에어컨 필터 냄새가, 식초 넣고 푹 삶는 행주 냄새가 생활인의 집을 더욱 사람답게 만들고 착착 해결하는 느낌이 좋다.


집 안에서 외부로 눈 돌릴 때면 생활의 냄새가 더욱 짙어진다. 귀 따갑게 왕왕대는 매미 소리와 단지 초입 좁은 곳에서 피어난 쨍한 빨간 장미가 이뻐 보이는 주변도 세탁소에서 바지 찾아오는 길에서 보는 생활의 힐링 공간이 되어버렸다.  


케렌시아가 특별할 건 없다. 바닥먼지 슬쩍 옆으로 비껴 놓고 선풍기 틀어 이불 깔고 비스듬히 누우면 세상 행복한 여기. 어제 먹은 생선 냄새가 빠지지 않은 부엌 아일랜드에서 브런치 글을 열심히 쓰는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지면 충분하다.


사진에 담기지 않고 옆으로 비켜나 있는 공간에서 밀린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담는 나도 괜찮다. 어쨌든 여기는 나의 케렌시아니까.





[도쿄 일인 생활, 부엌과 나]


어쩔 수 없는 공간에서, 어쩔 수 없는 살림살이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그렇게 지쳐 있던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것이었던 세간을 지키는 것. 그리고 그 유일함과 소중함.  




이렇게 편하게 오기까지 4년이 걸렸다. 아직도 생활과 로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 때문에 집은 계속 변하고 있지만 확실히 예전보다는 생활에 안정감이 있다.


샷시 공사를 계획하고 가스 검침 숫자를 카카오 페이에 입력하는 일. 식 가위와 택배용 가위를 분류하고 필요한 물품을 정리하는 일. 이런 것들을 해치우면  점점 살림에 최적화된 기능적 인간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 집을 집으로서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뿐인데 이게 결국 나를 인간으로, 또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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